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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는 연명의료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통화정책 당국인 중앙은행에서 열리는 행사로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함께 행사를 주최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연명의료는 회복 가능성이 없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효과 없이 생명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뜻한다.
이창용 총재는 “한은이 그동안 다양한 구조개혁 과제를 연구해 왔지만, 이번 연명의료 연구는 특히 준비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며 “‘생명의 존엄성’과 같이 민감한 주제를 건강보험, 재정 등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오해의 소지가 크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자칫 생명의 가치를 경제적인 부담으로 환산하는 것으로 보일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이 총재는 “고령화로 인해 우리 사회가 더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된 연명의료 문제가 초래할 거시경제적 문제들을 모른 척할 수만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연명의료는 환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 뿐 아니라 남은 가족에게는 심리적·경제적인 부담을, 사회 전체적으로는 의료 자원의 분배의 비효율성을 낳게 된다는 지적이다.
올해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생애 말기 의료와 연명 의료 등의 문제는 ‘죽음’과 가깝다고 꺼리거나 피해야 하는 금기가 아니라 마주 보고 준비해야 하는 과제에 가깝다. 현 추세대로라면 10년 뒤인 2035년 우리 인구의 40%가 65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인구 고령화와 의학 기술의 발전 속에 연명의료는 머지않은 미래에 나와 가족의 일이 될 수 있다. 이 총재 외에도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와 관계자들 중 다수가 장모님이나 어머님과 같이 가까운 친지의 연명의료를 두고 고민한 경험을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연명의료를 ‘받아야 한다’, ‘받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환자 본인이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합리적인 자기 결정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고,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적절한 상담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은정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센터장은 “현장에서는 장기요양 노인의 임종은 가족이 결정 주체가 될 확률이 크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이(연명의료) 절차와 의미를 이해하고 사전에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증후군’ 미국 의료계에서 쓰는 표현이다. 장기간 연락이 없던 가족 구성원이 임종 시기에 돌연 나타나 소원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연명의료 중단에 반대하면서 가족 간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와 미국은 가족에 대한 개념이나 죽음에 대한 문화가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이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은 어느 곳이든 비슷한 것 같다.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상황에서 어떤 끝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이 누구한테 있는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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