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정부가 탈석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연료전환’이 아닌 ‘설비전환’을 강요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구체적인 대책 없이 20~30년의 수명이 남은 석탄 설비까지 LNG로 교체하라는 정부 정책은 대규모 좌초자산만 낳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단지 내 열병합발전의 탈석탄을 둘러싸고 정부 정책이 현장의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단지 열병합 발전사 한 관계자는 “정부가 말하는 연료 전환은 사실상 기존 설비를 뜯어내고 새로 짓는 설비 전환”이라며 “정부 말처럼 석탄 설비를 히트펌프나 LNG로 바꾸라는 건 연료만 바꾸는 게 아니라 발전소 설비 자체를 다시 만들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형 석탄 설비를 조기 폐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좌초자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 민간 석탄발전소의 경우 통상 1GW급 설비를 짓는 데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설비는 건설비만으로도 수조원대 규모에 이르며, 최근 준공된 발전소들도 가동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잔존가치 역시 대부분 남아 있는 상태다.
업계는 이러한 대규모 설비가 아직 정상적인 회수 기간에 진입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기 폐쇄나 연료전환을 강제할 경우, 손실 규모가 그대로 좌초자산으로 남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는 발전사뿐 아니라 금융권 및 투자자 전반에 연쇄적인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수명이 충분히 남은 설비에 조기 전환을 요구하면 동일한 자산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산업단지 공정 안정성과 기업 경쟁력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탈석탄을 요구한다면 최소한 현실적 전환 수단을 열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가 남은 수명이 20~30년 이상인 설비 수명까지 기존 연료 사용을 허용하든지, 아니면 조기 폐쇄 시 잔존가치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계는 기존 석탄 설비를 간단히 개조해 사용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 탄소중립 연료로 인정받는 바이오매스가 산업단지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연료전환 수단이라고 강조하지만 정부가 바이오매스에 대한 REC 가중치를 축소해 현재는 경제성 문제로 사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REC 가중치가 최소 1.0~1.5 수준은 돼야 전환이 가능하다며, 현재처럼 가중치를 사실상 ‘0’으로 만든 구조에서는 어떤 사업자도 바이오매스를 선택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한편 정부는 탈석탄 전환에 대한 산업현장의 우려를 인식하고 있지만 구체적 정책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초기 검토 단계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단지 석탄 열병합 설비의 좌초자산 우려와 바이오매스 활용을 위한 제도 개선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구체적 방향을 정한 단계는 아니며 현재 준비 중인 ‘열에너지 혁신 로드맵’에서 연료전환·전환 부담·바이오매스 활용 등을 함께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이번 탈석탄동맹(PPCA) 가입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 장치가 없는 신규 석탄발전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현재 가동 중인 60여기 중 40기를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 가입국이며, 실질적으로는 최초로 석탄발전 감축을 국제무대에서 약속한 국가로 평가된다. 나머지 20여기 석탄발전소는 경제성·환경성 등을 고려한 공론화 절차를 거쳐 폐지 시점을 확정할 예정인 가운데 구체적인 정부 이행 계획이 부재해 비판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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