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금융지주(이하 우리금융) 차기 회장 인선을 둘러싼 깜깜이 논란을 계기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금융지주 경영승계 투명성 확보 노력에 대한 '진정성 결여' 지적이 일고 있다. 말로는 금융지주 경영승계 투명성·공정성을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후보·비전·일정 등을 공개하지 않는 불투명한 회장 선임 절차로 논란을 빚는 우리금융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말 뿐인 각오'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깜깜이 인선 논란에 휩싸인 우리금융이 수많은 소액주주를 보유한 상장사인 동시에 국민연금의 공적자금까지 투입된 기업이라는 점에서 금감원 방치 논란은 더욱 거세지는 분위기다.
'대통령 오랜 인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금융지주 회장 인선, 투명성·공정성 문제 심각"
지난 8월 금융감독원 수장으로 취임한 이찬진 원장은 이재명정부 '실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64년생인 그는 이 대통령과 사법시험 28회,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데다 노동법학회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민간위원을 지냈고 참여연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2010년에는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재임 시절 '3대 무상복지사업' 추진 과정에서 경기도와 마찰을 빚었을 때 변호인단으로 참여했으며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재판에서도 변호를 맡았다.
그는 대통령과의 친분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 대한 상당한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 과거 2018~2022년까지 4년 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가 유독 관심을 갖고 있던 사안은 바로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였다. 그는 줄곧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에 있어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신념을 내비쳤다. 그 일환으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일관되게 주장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도입과 정착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가 낮은 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후보를 직접 주주제안하는 방안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장 취임 이후에도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에 대한 그의 신념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기업은 주주가치를 중심으로 공정한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주가조작이나 독점 지위 남용 등 시장의 질서와 공정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 원장의 신념은 과거부터 지배구조 개편 압박을 받아온 금융사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원장 취임 이전에도 금감원은 '은행권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발표하며 ▲CEO 선임·경영승계절차의 공정·투명성 강화 ▲이사회의 집합적 정합성·독립성 확보 등을 주문한 바 있다.
금융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 원장은 금융지주 지배구조, 그 중에서도 지배구조의 핵심인 회장 선임 절차의 불투명성을 계속해서 문제 삼았다. 이 원장은 지난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지주 회장이 되면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심어 참호를 구축하는 분들이 보인다"며 "이러면 오너가 있는 제조업체나 상장법인과 별반 다를 게 없어 금융의 고도의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작심 발언했다. 그는 지난 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금융지주 이사회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공공성이 요구되는 조직인데 구성이 균형 있게 돼 있나 의문이 든다"며 "연임을 하고 싶은 욕구가 만연해서 그 욕구가 과도하게 작동하는 문제, 이 부분들이 거버넌스에 염려되는 것이다"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불과 열흘 만에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불투명성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원장은 10일 금융지주 CEO와 은행연합회장을 만나 간담회를 열고 "CEO의 경영 승계는 금융지주 산하 모든 자회사의 중장기 경영 안정성과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다"며 "승계 요건과 절차는 보다 명확하고 투명해야 하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내·외부 후보 간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과 경영 능력에 대해 강화된 검증을 통해 리더십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달 중 업계, 학계 등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 TF를 가동해 개선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정보공개 부실 지적부터 출마 만류 의혹까지…불투명 일색 우리금융 회장 인선에 이찬진 '불똥'
최근 여론 안팎에선 이 원장의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 의지를 두고 '헛구호'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금융 차기 회장 인선을 둘러싼 깜깜이 논란이 이러한 반응의 트리거(방아쇠)로 작용했다. 우리금융 차기 회장 인선과 관련해 후보·일정·후보비전 등이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고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출마 만류 의혹 등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세 차례나 공식석상에서 내비친 금융지주 거버넌스 투명성 확보 의지가 말 뿐이었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금융권 등에 따르면 현재 우리금융 회장 인선은 현직 회장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임종룡 회장의 연임 유력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최종후보 발표 일정이나 외부 후보의 정체, 각 후보의 비전 등에 대해 전혀 알려진 바 없다. 기존에 알려진 최종후보 발표 시기는 '이달 말 쯤' 정도가 전부다. 또 최종후보 4인 중 임 회장과 정진완 우리은행장을 제외한 나머지 외부인사 2명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 임 회장이 처음 외부인사 신분으로 우리금융 회장에 도전했을 당시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당시 손태승 전 회장의 연임 포기 공식화 이후 공개된 숏리스트 명단은 내부출신 신현석 전 우리아메리카은행장과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 외부출신 이동연 전 우리에프아이에스 대표과 임종룡 전 위원장 등이었다.
후보가 알려지지 않으면서 외부 후보에 대한 유일한 평가 자료라 볼 수 있는 각 후보의 비전조차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앞서 임 회장은 최초 우리금융 회장 도전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손 전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사안들에 대한 해결 의지를 피력했다. 당시 그는 "우리금융 민영화나 통합 등 여러 가지 업무에 관여했던 사람으로서 우리금융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외부 전문가의 시각으로 (우리금융의 문제를) 한번 다뤄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금융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외부 인사로서의 객관적인 문제 접근 및 해결 능력 등을 어필했다.
이러한 우리금융이 수많은 소액주주를 보유한 상장사 지위를 갖추고 있고 게다가 공적자금까지 투입됐다는 점은 금감원 책임론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국민연금공단은 우리금융지주 주식 4874만895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로 따지면 6.56%에 달한다. 최근 주당가로 따지면 약 1조3500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민간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투자금은 국민이 노후 대비를 위해 지불한 공적자금이다. 즉, 무려 1조3500억원에 달하는 국민 노후 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회장 선임 과정이 필요한 정보조차 공개되지 않고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국민연금이나 금감원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금융 차기 회장 인선을 둘러싼 깜깜이 논란과 전·현직 임원 만류 정황 등 각종 의혹에서 비롯된 이 원장의 금융지주 거버넌스 투명화 시도에 대한 회의론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지주사의 투명한 승계 시스템 마련과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사회 마련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에서는 현재 우리금융지주 내에서 진행되는 회추위의 선정 절차 자체가 공정한지 여부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금감원 차원에서 현재 지배구조 개선 TF를 논의하고 있으며, 여기엔 지주 회장의 연임이 금융지주사의 중장기 전략과 일치하는지 등의 내용을 담아 검증을 강화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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