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착 장애인 동포, 체류자격에 막혀 돌봄·교육·의료·생계 지원 제한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한국의 생활 인프라가 매우 잘 돼 있어서 혼자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은 없습니다. 전철도 혼자 탈 수 있어요. 하지만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게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최올가(48) '고려인 장애인 가족 모임' 인천지부 대표는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고려인 위기가정 및 재외동포 지원정책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꾹 눌러 담아온 현실을 꺼내놓았다.
토론회는 고려인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너머와 이용선·박수영·이재강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해, 국내 거주 재외동포들이 정착 과정에서 겪는 위기 상황을 공유하고 제도 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에서는 국내 정착 재외동포 중에서도 장애인·고령자 등 취약계층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최 대표는 1997년 스무 살 무렵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중증 장애를 입은 뒤 2019년 모국에 정착했다. 토론회를 마친 뒤 그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활동하고 싶지만, 취업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최 대표는 현재 인천 연수구 청학동 원룸에서 혼자 지낸다. 2016년 먼저 모국에 정착해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는 두 오빠가 충남 당진에 있어 도움을 받고 있지만, 생계를 장기간 의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집에서 부품 조립하는 부업으로 월세, 식비, 의료비 등 생계비를 모두 감당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의료보험 역시 감면 없이 지역 평균 보험료인 월 15만 원을 그대로 낸다. 그는 "고려인이지만 외국인과 동일하게 적용돼 사회보장 혜택에서 제외된다"고 토로했다.
장애인 등록증 덕분에 교통비·공공요금 감면, 콜택시 이용 등 일부 지원은 가능하지만, 장애인 가족들이 절실히 필요한 돌봄·교육·의료 지원은 '체류 자격의 벽'에 가로막혀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
특히 장애 아동을 둔 고려인 가정은 특수학교와 어린이집에 입학조차 막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많은 기관이 입학 요건으로 '장애인 등록증'을 요구하지만, 등록이 가능한 비자는 F-4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 장애인 가족 모임'에는 전국에서 135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70%는 장애 아동을 둔 가정이며, 인천 지부에는 25가구가 소속돼 있다.
그는 "많은 부모가 아이 돌봄 때문에 한 명만 일할 수 있는 구조이고, 한부모 가정은 더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린다"며 "장애인 등록을 해도 사실상 지원 프로그램이 없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대부분의 장애인 고려인이 합법적으로 일하며 살아가지만,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지원 접근성은 매우 제한적"이라며 "가장 큰 이유는 체류 자격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의사소통이나 사무 업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주민센터를 통한 구직 활동에서도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며 "장애가 있어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말에는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서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묻어났다.
최 대표의 사례는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장애인들이 마주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체류 자격 문제로 인해 장애인 교육·돌봄·의료·생계 지원에서 배제되고, 취업 기회 또한 극히 제한된 상황은 정책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계층일수록 제도 밖에 머물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시사한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사회가 최소한의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가 평등합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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