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연명 의료에 대한 환자 본인의 결정권을 강화하고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사회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 연명의료, 거부감 높지만 실제론 증가세
한은은 10일 건강보험공단과 공동으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환자선호와 의료현실의 괴리, 그리고 보완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고령층의 거부 의향이 지배적임에도 연명의료를 경험한 환자 수와 65세 이상 사망자 대비 그 비중은 모두 증가하고 있다”며 “적지 않은 고령 환자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임종 직전까지 연명의료 시술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연명의료는 회복 가능성이 없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효과 없이 생명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뜻한다.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 본인의 거부감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이 상당한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
이인로 한은 경제연구원 차장은 “연명의료 과정에는 수술·삽관 등 고강도 침습적 의료행위가 수반될 수 있어, 환자에게 심각한 신체 손상과 극심한 통증이 동반될 수 있다”며 “가족은 이러한 고통을 지켜보며 심리적 괴로움을 겪고, 돌봄이 장기화될 경우 가족의 신체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 연구진이 자체적으로 산출한 ‘연명의료 고통지수’를 보면 연명의료 환자의 평균 신체적 고통지수는 35점으로, 단일 질환이나 단일 시술에서 경험하는 최대 통증(10점, 참을 수 없음)의 약 3.5배였다. 특히 고통이 심한 상위 20%에 해당하는 환자의 고통지수는 127.2에 달했다.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연명의료 환자가 임종 전 1년간 지출하는 ‘생애말기 의료비’ 평균은 2013년 547만원에서 2023년 1088만원으로 연평균 7.2%씩 늘어 약 2배가 됐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약 40% 수준이다. 환자 가족은 의료비 외에도 간병인 고용이나 환자 돌봄을 위한 휴직·퇴직 등으로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겪을 수 있다. 간병인 고용 비용은 월평균 224만원, 일자리 중단에 따른 소득 감소액은 한달 평균 327만원으로 조사됐다.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환자 본인이 원치 않은 연명의료는 구조적인 불균형을 낳는다는 게 한은 연구진의 지적이다. 연명의료 중심으로 생애 말기 의료 자원이 집중되면서 수요가 높은 △호스피스 △고통 완화 의료 △간병 지원 등의 돌봄 서비스에 투입될 자원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
◇ “자기결정권 강화 위한 제도적 보완 필요”
한은측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고 수요자 중심 의료 지원 정책을 펴기 위해 현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보완·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국내 연명의료 환자 수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6.4% 증가하고 있는데, 이 중 인구 고령화의 기여도는 약 60% 정도다. 나머지는 제도적·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구체적으로는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홍보와 온라인으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연명의료 중단 여부만 일괄 선택하게 돼 있는 현재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개인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어떤 시술을 받고 받지 않을지는 물론, 장기기증 의사와 의료 결정 대리인 지정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연명의료 중단이 의료 행위 단절이 되지 않도록 완화의료·심리상담·가족지원 등의 생애말기 돌봄체계 구축도 필요하다고 한은 연구진은 권고했다.
특히 생애 말기 돌봄 인프라 부족은 연명의료 중단 선택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호스피스 이용을 희망하는 비율(91%)과 실제 이용률(암 사망자의 23%)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025년 기준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103개소에 그치고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한은 연구에 따르면 현재 70% 수준인 연명 의료 시술 비율이 고령층 대상 설문결과에서 나타난대로 15%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2030년 기준 2조 7000억원, 2070년 기준 13조 3000억원의 건강보험 지출이 경감된다, 건보료 추가 인상 등이 없어도 사회적 자원을 환자들이 원하는 생애말기 돌봄에 재배치해 실제 수요에 맞는 의료 지원 정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 차장은 “연명의료 제도 개선의 목표는 연명의료를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의 마무리 방식을 미리 충분히 숙고할 수 있도록 돕고, 그에 대한 자기결정이 마지막까지 존중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