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전영선 기자] 범현대가(家)의 건설 명가 HDC그룹의 후계 시계바늘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차남 정원선(1994년생) 상무보가 최근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하며 그룹의 핵심 두뇌 조직인 'DXT(Digital Transformation)실'의 수장으로 올라섰다. 재계는 이번 인사를 단순한 직급 상승이 아닌 '포스트 정몽규' 시대를 대비한 명확한 후계 구도의 시그널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장남이 아닌 차남이 경영 전면에 나선 배경과 함께 대거 승진한 3040 젊은 임원진의 의미가 주목받고 있다. CEONEWS는 HDC그룹의 파격 인사 배경을 분석하고, 차남 승계가 유력해진 HDC의 미래 권력 지형도와 과제를 심층 진단한다.
■승계 퍼즐의 완성...학계로 간 장남 VS 경영 택한 차남
재벌가의 승계 공식에서 장자 승계는 불문율에 가깝다. 그러나 HDC그룹의 상황은 예외적이다. 정몽규 회장 슬하에는 준선, 원선, 운선 삼 형제가 있지만, 경영 전면에 나선 이는 차남 정원선 상무가 유일하다. 장남 정준선 씨는 일찌감치 다른 길을 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 출신인 그는 현재 카이스트(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총선 당시 여당의 영입 인재로 거론될 만큼 학계와 정계 쪽에 관심을 두고 있어 기업 경영에는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정운선 씨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대외적 행보가 전무하다. 결국 경영 수업을 착실히 받아온 이는 차남뿐이다. 정원선 상무는 2021년 HDC현대산업개발에 입사해 비전팀장 등을 거치며 조용히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이번 상무 승진과 DXT실장 선임은 그가 '대안'이 아닌 '유일한 후계자'임을 대내외에 공표한 상징적 사건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장남이 학문의 길을 택하면서 자연스럽게 차남 중심의 승계 구도가 굳어졌다"며 "정 회장이 차남의 역량을 검증하고 조직 내 입지를 다지도록 단계적으로 준비해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DXT실, 미래 전략의 사령탑, 디지털 혁신으로 체질 개선 주도
정 상무가 맡게 된 DXT실은 단순한 전산 지원 부서가 아니다. CEO 직속의 이 조직은 HDC그룹의 체질을 전통적 시공사에서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디벨로퍼로 바꾸는 혁신 컨트롤타워다. 재계에서는 후계자가 재무나 인사 부서가 아닌 미래 전략 관련 부서를 맡는 트렌드에 주목한다. 당장의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그룹의 장기 비전을 설계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며 자신의 색깔을 입히기에 가장 적합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 상무는 DXT실에서 건설업의 디지털 전환, 스마트시티 조성, AI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 등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직접 챙기게 된다. 이는 그에게 경영 능력을 검증받는 시험대인 동시에 조직 장악력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쥐어준 셈이다.
건설산업 전문가는 "디지털 전환은 건설업의 생존 전략이자 차별화 요소"라며 "후계자가 이 영역을 직접 지휘하는 것은 HDC가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3040 세대교체로 젊은 친위대 구축, 장기 포석
이번 HDC그룹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파격적인 젊음이다. 신규 선임된 임원 9명 중 5명이 40대 이하의 젊은 리더들이다. 이는 단순히 조직의 활력을 불어넣는 차원을 넘어 1994년생인 정원선 상무와 호흡을 맞춰갈 차세대 리더 그룹을 육성하겠다는 정몽규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노련한 가신(家臣) 그룹이 물러나고 정 상무와 동시대를 호흡하며 오랫동안 그를 보좌할 젊은 친위대가 전면에 배치되고 있다. 현재 HDC현대산업개발은 최익훈 대표이사 등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적 쇄신은 향후 정 상무가 대표이사직에 오르거나 그룹 회장직을 승계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세대 차이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해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30대 초반의 후계자가 50~60대 임원진과 일하면 소통과 신뢰 구축에 시간이 걸린다"며 "같은 세대 리더들을 미리 키워 향후 경영권 승계 시 안착을 돕겠다는 장기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의 그늘, 신뢰 회복이 급선무...안전과 혁신,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하지만 정원선 상무 앞에 놓인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HDC그룹은 2021년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추락한 브랜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당시 사고는 9명의 사망자를 낸 대형 참사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안전관리 부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법적 책임과 보상 문제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다. 분양 시장에서 HDC 아이파크 브랜드는 여전히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3세 경영인 정원선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관리형 리더십이 아니다. 첫째, 안전과 품질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DXT실장으로서 그가 추진할 디지털 안전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가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둘째, 사업 다각화의 성공이다. 주택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정몽규 회장이 추진해온 모빌리티, 레저, 인프라 사업을 어떻게 디지털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건설 넘어 종합 부동산·인프라 기업의 스마트 모빌리티그룹 지향
정몽규 회장은 취임 이후 HDC를 단순 건설사가 아닌 '스마트 모빌리티 그룹'으로 재정의해왔다. 아반떼 부동산, 레저 사업 확장 등이 그 일환이다. 정원선 상무가 맡은 DXT실의 역할은 이러한 다양한 사업 영역을 디지털 기술로 연결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시티 개발에서 건설, 교통, 물류, 데이터를 하나로 묶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다. 업계에서는 정 상무의 젊은 감각과 디지털 네이티브적 사고방식이 이러한 전환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실제 사업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있다.
■젊은 HDC의 항해가 시작됐다
정몽규 회장은 차남을 전면에 내세우며 '안정'보다는 '변화'를 택했다. 정원선 상무의 승진은 HDC그룹이 과거의 영광이나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제 막 경영의 전면에 나선 30세의 젊은 후계자. 그에게는 광주 사고로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고, 동시에 디지털 혁신으로 그룹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이중 과제가 주어졌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이는 3세 경영인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HDC그룹의 젊은 항해사가 이끄는 '디지털 HDC'가 과연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고 새로운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지, 재계의 시선이 정원선 상무의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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