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중국이 최근 각자 발표한 주요 안보 문서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년 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을 협상 자리로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적 '생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북한이 여러차례 비핵화 조건을 제외한다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비핵화 언급을 축소하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최근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고려해 '핵 없는 한반도'라는 새로운 기조를 전면에 내세우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美, 비핵화 입장 견지하면서도 안보 전략서 생략…中, 군축백서 등서 언급 줄여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5일(현지시간)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그리고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발표한 NSS와 달리 '북한'과 '비핵화'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NSS는 행정부의 주요 안보 목표와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전략의 큰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트럼프 1기 NSS에선 북한을 17차례 언급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했고, 바이든 행정부의 2022년 NSS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제시했던 점을 감안하면 뚜렷한 기조 변화로 평가된다.
그간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행정부의 대북 정책 목표라는 입장을 확인해왔으며, 지난달 13일 발표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했다.
하지만 NSS에는 한반도 비핵화뿐만 아니라 이전 행정부가 꾸준히 목표로 언급해온 핵 비확산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우선순위가 낮아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신시대 중국의 군비 통제, 군축 및 비확산'이라는 제목의 백서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생략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 백서에 있던 '관련 국가들이 한반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등에서 비핵지대를 설립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이번에 발표된 백서에는 "중국은 조선반도(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정한 입장과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고 항상 한반도의 평화·안정·번영에 힘써왔으며 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관련 당사국이 위협과 압박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상을 재개해 정치적 해결을 촉진하며 한반도의 장기적 안정과 평화를 실현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기를 촉구한다"고 적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다른 공식 성명과 정책문서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에서 내놓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의 경우 이전 정상회의에 거의 매번 포함된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라는 문구가 담기지 않았는데, 이는 중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2019년 5차례 회담했을 때는 회담 결과문에 비핵화 관련 내용이 매번 포함됐지만, 두 정상이 지난 9월 만났을 때는 '한반도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 사라진 美中 안보전략…남북 관계 개선엔 오히려 '기회'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거의 동시에 비핵화를 생략한 것은 향후 북한과 대화 재개에 대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는 북한이 여러차례 '비핵화' 조건을 제외한다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단언하건대 우리에게는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을 포기시키고 무장해제시킨 다음 미국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세상이 이미 잘 알고 있다"며 "제재 풀기에 집착하여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 위원장과 회동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다시 만나러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을 볼 때 내년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우리 정부의 남북 대화 재개 전략에도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ND의 첫 단추인 '교류'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뉴욕 유엔본부 기조연설을 통해 교류(Exchange)·관계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이른바 'EN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 냉전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0일 통일부 워크숍에서 기자들을 만나 2026년을 한반도 평화 공존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선제적 평화조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지금부터 4개월이 한반도가 평화로 나아가느냐, 현 상태에서 머무르느냐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저라도 나서서 중국에 가고 역할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년 초 개최될 북한의 9차 당 대회를 언급하며 남북 교류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그는 "결국 2500만 (북한) 인민 생활을 확실히 바꾸려면 고립과 봉쇄로는 불가능하며, 바깥 세상으로 진출해야 한다"면서 "현재 (김 위원장도) 여러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와 협력하지 않으면 북한이 어떤 정부와 협력할 수 있겠나"라며 "중국과 협력이 복원되고 러시아라는 버팀목이 생긴 북한이 무엇이 무서워 남측과 협력하지 못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케빈 김 美대사대리 "한미정상, 팩트시트서 '비핵화' 의지 확인"
앤디김, '北비핵화' 빠진 美안보전략에 "한반도문제 경시 우려"
일단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 의지는 여전하다고 진화에 나섰다.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는 8일 박윤주 1차관과 비공개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NSS에 '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데 대해 "한미 정상은 팩트시트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그것이 현재 우리의 한반도 정책(Korea policy)"이라고 했다.
김 대사대리는 박 차관과 "한미가 여러 현안에서 어떻게 최선의 공조를 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며 "여기에는 양국 정상이 합의하고 확인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반면 앤디 김 미국 연방 상원의원은 NSS에 북한 및 북한 비핵화 언급이 빠진 데 대해 "한반도 문제를 덜 중요하게 취급한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10일 워싱턴DC의 연방 의회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전략 문서가 참담(abysmal)하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미국이 갖춰야 할 국가안보전략에 부합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가 매우 우려스럽다"며 "사실상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포기하려는 시도"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 전략이 한반도처럼 매우 중요한 지역에서 자원을 빼내어 잘못된 우선순위에 따라 잘못된 방식으로 재배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도 했다.
김 의원은 내년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에 대해 "지금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에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북한은 트럼프 1기 시절보다 미국과 대화할 유인이 훨씬 더 적어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를 통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보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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