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설치된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실제로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산업계에서 심화되고 있다.
설비 용량 중심 빠른 보급 속도에 비해 전력망, 저장 장치, 인력 등 후방 인프라 정비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병목현상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또한 최근 보고서에서 “숙련 기술 인력 부족과 송전망 제약이 향후 에너지 전환의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힌 가운데 향후 대책 마련이 주목된다.
IEA가 11월 발표한 ‘World Energy Employment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에너지 산업 고용은 2024년 기준 약 7600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 대비 390만 명 이상 증가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전기 관련 분야(발전·망·저장)에서 나왔다.
특히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태양광, 풍력, 배터리 부문은 지속적 일자리 확대를 이끌고 있는 반면 핵심 설비 유지·연결·운영에 필요한 기술 인력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 사정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산업통상부와 전력거래소 등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소 상당수가 계통 연계 지연으로 인한 가동 차질을 겪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산에 따라 전력망 연계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기존 송전망 인프라로는 이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전력공사 송전망 건설사업 중 상당수가 지자체 인허가, 주민 반대, 환경영향평가 지연 등으로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설비는 빠르게 설치되지만 막상 전기를 송전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토로가 나온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도 정책 목표를 밑돌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발전량 간헐성과 불규칙성이 커 생산된 전력을 저장해 수요 시점에 공급하는 ESS 인프라가 핵심으로 꼽힌다.
그러나 국내 ESS 시장은 과거 잇단 화재 사고 이후 위축됐고 안전성 확보와 수익성 구조 미비로 인해 신규 설치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민간 중소 사업자의 경우 설치비 부담과 인증 기준 충족 어려움으로 인해 ESS 도입을 꺼리고 있다.
숙련 인력 부족 역시 현장 애로사항 중 하나다.
IEA는 보고서에서 “많은 국가에서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를 확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제약은 인력 수급”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전력망 구축, ESS 설치, 풍력·태양광 설비 유지보수 등 실무 분야는 고도 기술 역량을 요구하지만 관련 전문 인력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에서도 정부 차원 기술 인력 양성 계획은 마련돼 있으나 실질적인 훈련생 유입과 취업 연계는 미미한 수준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인프라 제약이 설비 중심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6%로 확대하겠다는 계획 아래 태양광·풍력 등 설비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후방 체계가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기 공급 확대는 오히려 전력망 병목과 출력 제약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발전량이 계통 수용 한계를 초과, 전력이 폐기되는 사례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는 단순히 많이 설치한다고 해서 사회적 가치가 실현되는 구조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발전소를 지은 이후 계통에 안정적으로 연계하고 필요한 시간에 전력을 저장·공급할 수 있어야 진정한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탄소중립은 속도가 아닌 체계의 문제다. 용량 확대에 치중한 현재 정책 구조로는 발전과 수요, 송전과 저장 간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라며 “재생에너지 시대 핵심은 건설량 증대보다 인프라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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