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남해안 반도체 국가산단 벨트, 지방선거 핵심이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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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남해안 반도체 국가산단 벨트, 지방선거 핵심이슈 되나

비즈니스플러스 2025-12-11 09:58: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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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기자는 지난해 산업단지를 개발 분양하는 사업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깜작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 인근에 최근 산업단지 분양을 성공리에 마쳤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을 분양받고 입주할 기업들을 찾아나서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대목은 바로 전력망 확보였다. 산업단지를 만들면 한국전력이 전기를 공급하는 데 9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자체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전력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공장을 돌리려면 이제 한전의 도움만으로 되지도 않는다. 기업들 스스로가 자체적으로 전력 공급망을 확보해야 하고 더 나아가 전력을 만들어 자체 공급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전기를 만들어도 보낼 수가 없다.

가령 강릉에코파워, 삼척블루파워, 삼척빛드림 등 동해안권 석탄화력발전소가 운전하는 8기 모두 지난해부터 사실상 가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전기를 생산해도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送電) 선로 건설이 수년째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 인근엔 전력이 넘치고, 정작 수도권에는 전력이 부족한 '전력 미스매치'가 한국경제의 고질병이 된 지 오래됐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쨌든 송배전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후보시절부터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을 제시했지만 실상은 만만치 않다.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은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산업 수요지를 연결하는 초대형 송전망 구축 사업이다. 핵심은 서해안에서 시작해 남해안·동해안까지 확장하는 HVDC(초고압 직류 송전망)을 통해, 해상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과 첨단 산업단지(반도체, 데이터센터 등)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같은 방안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지역 편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되었는데 HVDC, BESS(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 AI(인공지능)·빅데이터 기반 지능형 전력망 기술을 활용하고 '개방형 전력망' 정책을 추진해 누구나 생산한 전기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한전 독점 구조를 개편해 기업·가정이 직접 전력망에 참여가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요 송전선로 건설은 지난 2013년 발생한 밀양 송전탑 사건 이후 곳곳에서 분쟁이 지속되어 사실상 중단된 상태나 다름없다. 

한전은 송전선로 주변에서 암 환자와 가축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이며, 세계보건기구(WHO)도 전자계 장기 노출 때 암이 진전된다는 생체 작용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송전선 주변 주민들의 반대는 요지부동이다.

기존 석탄이나 원전 전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2년전에는 호남 지역 태양광 설비의 전력 생산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다.

◇수도권보다는 남해안에 반도체 벨트 방점, '인도인 IT인력 집단거주 단지' 추진하는 방안도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AI 시대,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를 주최한 자리에서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길을 돌려서 그 지역에서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듣고 "계획대로 다 지으려면 전력이 16기가쯤 필요하다고 하는데 원자력 발전소 10개 이상"이라며 "외부에서 생산된 전력을 공급받는 송전망 건설도 엄청난 문제고, 근처에 발전소를 짓는다 해도 LNG, 열병합발전소 수준인데 그걸로 할 수 있을지"라고 우려했다. 

그러니까 이 대통령의 발언은 앞으로 송전비용을 거리에 비례해 부담하는 시스템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용인 등에 반도체 산업단지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남부 해안 쪽으로 방향을 바꾸라고 우회적으로 권고한 셈이다. 

이날 김정관 산업통산부장관은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 2047년까지 약 7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현재 반도체 생산·연구 팹(공장)을 합해 21기인데, 16기를 추가해 37기로 늘리고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전력·용수를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 국비 지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반도체특별법에 관련 특례도 신설해 비수도권 연구인력에게는 52시간 근무조건에서 예외시키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금산분리를 일부 완화는 방안도 포함되는 등 파격적인 지원약속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가 전체 단위 입장에서 (SK그룹의) 600조 대규모 투자는 감사한 일이지만 수도권 집중 문제와 관련이 없지 않다"며 "그때 용인 반도체를 유치할 때 열심히 뛰어 놓고 지금 대통령되고 나니까 내가 왜 그랬지 그런 상황이다. 입장이 바뀔 수 있는 건데 그 문제가 고민이 된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한데 정부가 이날 발표한 내용을 보면 광주·구미·부산을 잇는 남부권 반도체 벨트를 조성해 무리하게 수도권으로 전력을 이동시키는 고속도로 건설은 당분간 보류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경기도 표심잡기에 일부 어려움이 있더라도 전남, 경남, 부산 등지에서 지역산단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울 것임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인력수급이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최남단은 충남 천안·아산의 패키징 공장까지 내려갔고 SK하이닉스는 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기지(M15X)가 충북 청주까지 확장되었지만 R&D 인력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남해안 벨트에 인도인 IT 인력을 대거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경우 2024년 기준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승인자의 약 71%가 인도 출신이다. 이들은 대부분  컴퓨터 프로그래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 IT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기업들이 인도인 인력을 대규모로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엄격한 이민제한 정책으로 이들 인도인 IT인력의 장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는데 이들 일부라도 국내에 유치하면 인력문제는 해결이 된다는 발상이다. 

문제는 정부의 이같은 구상이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했던 한국인 전문 인력 구금 사건에서 드러난 바 있는 미국 현지 인력수급에 대한 갈등이 국내에서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투명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고객정보 대거유출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쿠팡이 IT 관련 고급인력은 중국 전문가들을 대거 채용하고 국내 인력은 배달업에만 종사시키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첨단 반도체 벨트에 인도인이 대거 채용되면 지역사회에서 일어날 갈등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탄소제로는 세계적인 추세, 재생에너지 활용은 장기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도

정부가 남해안 재생에너지 단지에 반도체 산업단지를 구성하려는 데는 지방균형발전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잠시 주춤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탄소제로 운동'의 큰 흐름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반도체 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제조 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은 "2040년까지 고객 업체를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ASML은 지난 11월 화성 송동에 '화성 캠퍼스'를 개관하면서 한국 기업들과의 협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중요한 회사이기 때문에 이같은 탄소제로 정책이 우리 기업들에게 줄 영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AI 기반 데이터센터 확장 경쟁을 벌이고 있는 MS는 탄소 배출 목표를 달성을 위해 주요 공급업체에 2030년까지 100% 무탄소 전기를 사용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MS가 요구하는 것은 바로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MS의 주요 공급업체인 삼성전자, 대만 리얼텍, SK하이닉스 등이 대상이 될 것"이라며 "다만 현재 이들의 탄소중립 목표 시기는 2030년 이후"라고 전했다. 반도체 장비업체 '램 리서치' 역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기 100% 달성을 목표로 내세운 바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2022년 1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국가풍력실증센터에 설치한 8MW 해상풍력발전기 전경 /사진=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가 2022년 1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국가풍력실증센터에 설치한 8MW 해상풍력발전기 전경 /사진=두산에너빌리티

물론 탄소제로(넷제로) 정책을 "사기극"으로 규정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MS 같은 기업의 넷제로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정권은 유한하고 넷제로 정책은 장기적인 과제이기에 무시할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한국의 경쟁기업인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는 2050년 재생에너지 100% 달성 목표를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으며, 2020년 덴마크 풍력 기업 오스테드와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대만 정부는 2년 전 재생에너지 비율을 2050년 최대 60%까지 높이는 '2050 탄소 중립 로드맵'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재생에너지 육성에 나선 상태다.

삼성전자의 경우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는 목표 시점을 2050년으로 세웠고, SK하이닉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량을 33%까지 높이기로 한 바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탄소제로정책에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계획이다.

MS는 '무탄소 전기'에 "신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 바이오매스, 수소, 지열, 탄소포집저장(CCS) 등을 포함한다"고 정의한 바 있어 공급업체들에게는 다소 숨통이 트이는 정책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정책은 아직 정확한 방향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이와 관련 전라남도 등 남해안 일대는 대한민국 재생에너지 전략 생산의 핵심 거점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태양광·해상풍력·조류(해양에너지) 자원이 풍부해 국가 에너지 전환과 반도체·첨단산업 전력 공급의 기반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결국 송전망 확충이다. 처음 석탄이나 원전 발전소 근처에서 시작한 송전탑 반대시위가 재생에너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펀드사인 블랙록은 전남 신안군 일대에 손자회사인 크레도오프쇼어를 통해 10조원을 투입해 국내에 초대형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불발됐다. 아무리 친환경 에너지를 만들어내도 전력을 보낼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월 전국 40여개 환경·시민단체와 주민대책위원회, 지방의회들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반도체 국가산단 건설 정책과 국가기간전력망 건설 정책을 이어받고 있다. 70개 노선의 고압 송전선(34만5천볼트)과 29개 변전소 등 3800㎞의 전력망을 건설해 전국에서 생산한 전력을 용인의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로 집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전력 생산이 없는 용인에 대규모 반도체 국가산단을 지을 것이 아니라 전력 생산이 풍부한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불필요한 고압송전망 건설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같은 분위기로 볼 때 첨단 반도체 단지는 앞으로 지방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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