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넘어 식품·주류·화장품으로…쌀 쓰임의 재창조에 나서야[only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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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넘어 식품·주류·화장품으로…쌀 쓰임의 재창조에 나서야[only 이데일리]

이데일리 2025-12-11 05:0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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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쌀은 남아도 걱정, 모자라도 걱정이다. 이것이 한국 쌀 산업이 안고 있는 역설이다. 최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53만 9000톤(t)으로 전년보다 1.3%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쌀 가격은 전년 11월과 비교하면 18% 넘게 상승했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사들여 가격을 지탱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쌀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유통업체들(RPC)까지 쌀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매입경쟁에 뛰어들면서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급 논리를 넘어선, 정부 개입과 시장 기대가 뒤얽힌 구조적 불안정 때문이다. 그 결과 소비자는 물가 부담을, 농가는 소득 불안을, 정부는 막대한 조절 비용을 떠안는 모두가 손해 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과잉생산된 쌀, 쌀 산업 전반을 억눌러

아이러니하게도 식량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국가 생존을 떠받치던 쌀이, 오늘날에는 남아서 쌀 산업 전반을 압박하는 현실이 됐다. 지난 30년간 1인당 쌀 소비량은 절반가량 감소했다. 그러나 논의 용도 전환이 어렵고 기계화율이 98.7%에 이르는 벼농사의 특성상 생산량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의무로 인해 연간 소비량의 16~18% 달하는 40만 8700t의 쌀을 해마다 수입해야 하는 것 또한 쌀 산업에 큰 압박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는 중이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시장격리 물량은 333만t,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비용만 9조원 이상이다.

남아도는 것은 쌀 전체가 아니라 밥쌀이다. 가공용·산업용 쌀은 글로벌 식품·주류 시장 확대와 함께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즉, 한국 쌀 산업의 경우 밥쌀은 과잉인데 가공용은 부족한 ‘용도별 수급 불균형’이라는 상황이다. 실제로 떡볶이 등 가공식품 수출 업체들은 떡을 만들 쌀이 부족해 생산에 차질을 빚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금 쌀 산업에 필요한 것은 생산 억제보다 새로운 쓰임의 창출이다.

이 점에서 일본과 이탈리아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일본은 우리보다 쌀 가격이 2배 이상 비싸다. 그럼에도 연간 10만t 이상을 주조용 쌀(사케마이)을 별도로 관리하며 고품질 주류 시장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왔다. 그 결과 사케 수출액은 2024년 435억엔까지 증가했다. 더 나아가 일본은 2050년 약 100만t 규모의 쌀 부족을 예상하며 초다수확 벼 개발과 프리미엄 시장 확장을 통해 ‘고부가가치 중심 구조’로 산업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프리미엄 리조또용 쌀 ‘아퀘렐로(Acquerello)’가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벼를 1년 이상 숙성하고 정밀 도정·배아 재통합 특허 기술을 적용해 품질을 극대화했으며, 금속 캔 포장 등 고급 브랜딩 전략을 도입해 1kg당 수만 원대에 판매되는 초고가 프리미엄 제품 시장을 형성했다. 이는 쌀도 기술·가공·브랜딩이 결합하면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이러한 해외 성공 경험들은 쌀 산업이 ‘식량’을 넘어 ‘산업 원료’로 그 영역을 확장시키며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쌀 산업, 밥상 중심에서 산업·수출 중심으로

한국 쌀 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은 글로벌 시장과 연결된 수요 설계 전략에 달렸다. K푸드 열풍은 이미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성공을 통해 한국 식품산업의 확장 가능성을 증명했다. 라이스 파스타 역시 글루텐프리(Gluten-Free) 트렌드와 결합할 경우 국제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핵심은 쌀을 밥상에서 산업으로 확대하는 관점의 전환이다.

라이스 위스키를 필두로 공략할 수 있는 프리미엄 위스키 시장은 연평균 두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 속에서 발효·증류·숙성 기술, 청정한 물, 고품질 쌀 등 위스키 생산의 필수 요소를 이미 갖추고 있다.

최근 국세청에서 한국산 쌀을 발아(發芽)해 주원료로 생산하는 ‘위스키 제조면허’와 쌀 위스키 생산 방식을 공식 허가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국 쌀이 세계 프리미엄 위스키 시장에 진입할 토대를 마련한 사건으로, 라이스 위스키는 한국 쌀 산업의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쌀은 이제 식량을 넘어 식품·주류·기능성 소재·바이오·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 가능한 산업 원료다. 특히 건강·친환경·글루텐프리 트렌드는 한국 쌀의 새로운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쌀 산업은 이제 밥상 중심에서 산업·수출 중심 구조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핵심은 생산 조절이 아니라 쓰임의 재창조, 재정 지원이 아니라 시장 수요 설계, 가치 중심의 산업화가 앞으로의 과제다.

농민이 마음 놓고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나라, 한국 쌀이 세계 시장에서 가치로 인정받는 나라. 그 미래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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