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키친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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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키친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엘르 2025-12-11 00:00:01 신고

CHRIS GOSNEY FOR MAGEN H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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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 PERRIAND, UNITÉ D’HABITATION KITCHEN(1952)

‘살기 위한 기계’ 속에 이토록 인간적인 주방이 숨겨져 있다니. 샤를로트 페리앙이 유니테 다비타시옹 안에 설계한 주방은 당대 주방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을 기계로 보았다면, 페리앙은 그 안에 온기를 심었다. 이전까지 주방은 늘 집의 가장 안쪽, 벽을 따라 숨듯 자리 잡은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페리앙은 조리대를 거실 쪽으로 열어 주방을 집의 중심으로 끌어왔다. 이로써 거실과 다이닝 공간, 주방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진다. 단순히 배치를 바꾼 수준이 아니라, 가족의 삶을 한 장면으로 엮는 구조에 대한 실험이나 다름없었다. 페리앙은 차갑고 효율적인 공간 속에 알루미늄 조리대와 목재 손잡이, 밝은색의 도어 패널로 따뜻한 질감을 더했다.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요소는 격자처럼 배열된 컬러 패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조리대, 수납장, 선반, 벽면 등을 서로 다른 색으로 입힌 것이다. 덕분에 기능이 명확하게 인지되고 주방은 생기를 얻었다. 삶의 중심으로 들어온 주방, 효율과 감성이 공존하는 주방. 어쩌면 이후의 모든 모던 키친은 여기서부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COURTESY OF BOFFI

COURTESY OF BOFFI


JOE COLOMBO, MINI KITCHEN(1963)

급격한 도시화로 소형 아파트가 늘어나던 1960년대 밀란에서 조 콜롬보는 자문했을 것이다. ‘왜 주방은 움직일 수 없을까?’ 그가 보피(Boffi)를 위해 디자인한 ‘미니 키친(Mini Kitchen)’은 조 콜롬보가 긴 시간 동안 탐구한 ‘컴팩트 리빙(Compact Living)’의 결정체다. 플라스틱 몰드로 제작된 미니 키친은 놀랍도록 미래적이면서도 실용적이다. 작은 정육면체 안에 주방의 모든 핵심 기능을 통합한 이 이동식 유닛은 서랍형 수납공간, 접이식 조리대, 빌트인 쿡탑과 싱크, 냉장고까지 모두 90cm 남짓한 박스에 담겨 있다. 바퀴까지 달린 덕분에 주방은 더 이상 어딘가에 고정될 필요가 없게 됐다. 주방의 정의를 완전히 비틀고, 오늘날 모듈형 키친과 이동식 아일랜드, 캠핑카의 조리 시스템을 탄생시킨 이 급진적인 ‘미니 키친’은 뉴욕 MoMA, 밀란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 소장돼 있으며, 지금도 보피의 대표작 중 하나로 생산되고 있다. ‘미니 키친’에 이어 같은 해 콜롬보는 모듈형 이동 선반 ‘콤비 센터(Combi-Center)’를, 1972년엔 생활의 모든 기능을 하나의 구조에 통합한 ‘토털 퍼니싱 유닛(Total Furnishing Unit)’(1972)까지 선보이며 공간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기능이 응축된 장치로 바라보는 실험을 이어갔다.



COURTESY OF RIETVELD SCHRÖDER HOUSE

COURTESY OF RIETVELD SCHRÖDER HOUSE


GERRIT RIETVELD & TRUUS SCHRÖDER, RIETVELD SCHRÖDER HOUSE(1924)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외곽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험한 집이 등장했다. 건축가 헤리트 리트벨트와 트루스 슈뢰더가 그려낸 리트벨트 슈뢰더 하우스다. 수평과 수직이 만들어낸 기하학적 질서, 실내외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가로로 긴 창, 원색의 명료한 대비 등 데 스틸(De Stijl)의 미학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것이 특징. 두 개의 층을 가로지르는 가변형 공간 구조가 거실과 침실, 사적 공간과 공용 공간을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연결한다. 주방은 당시 보편적 개념이 아니었던 동선의 효율과 기능, 위생을 중심으로 설계된 것. 이곳엔 식기세척기와 유리 미닫이 수납장뿐 아니라 아래층에서 준비한 음식을 위층으로 올리는 승강기가 있었다. 접이식 테이블과 다이닝 체어 벽, 일체형으로 설계된 수납장 등 모든 가구를 리트벨트가 디자인했다. 건축과 가구, 생활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완성형 주거로서, 그 실험성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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