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명령들

“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걱정속에 숨겨진 칼날

새벽 1시, 테이블 위에서 진동하는 휴대전화 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떠오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며, 얼핏 듣기에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듯하다.

늦은 귀가를 탓하거나 짧은 치마 길이를 지적하는 말끝에는 언제나 달콤하고 끈적한 꼬리표가 붙는다. “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이 문장은 듣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마취제와 같다.

상대를 위한 배려처럼 들리지만, 실상 그 안에는 타인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는 소유욕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사랑과 집착을 혼동한다. 미디어는 질투를 사랑의 증거로 포장하고, 구속을 관심의 표현이라 칭송한다. 그러나 걱정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본심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그것은 상대방의 안전을 위한 이타적인 마음이 아니다.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난 대상을 향한 불안, 그리고 그 대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방어기제일 뿐이다.

사랑한다는 명분 아래 행해지는 모든 간섭은 결국 상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독립적인 인격체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형으로 개조하려는 시도다.

이 글은 그 달콤한 속삭임이 어떻게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인간의 비겁한 본능이 무엇인지 해부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 익숙한 문장을 낯설게 바라봐야 한다.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검열이며, 사랑이 아니라 사육이다. 관계라는 이름의 감옥은 쇠창살이 아니라 걱정이라는 부드러운 실크 커튼으로 지어진다.

불안의 투사, 그들은 왜 통제하는가

인간의 뇌는 불확실성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특히 애착 관계에 있는 대상이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때, 뇌의 편도체는 비상경보를 울린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번식 파트너를 독점하려는 원시적인 본능인 ‘짝 지키기(Mate Guarding)’ 기제와 연결된다. 하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 이 본능이 날것 그대로 표출될 때, 그것은 폭력이 된다.

“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거대한 불안과 낮은 자존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상대를 붙잡아둘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무의식적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언제든 상대가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유기 불안은 그들을 미치게 만든다. 이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상대의 날개를 꺾어 자신의 곁에만 머물게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투사(Projection)의 심리다. “다른 남자들은 다 늑대야”라며 당신의 옷차림을 단속하는 그 사람은, 사실 자신이 늑대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남성들도 자신의 연인을 그렇게 볼 것이라 확신한다.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세상에 투사하고, 그 세상으로부터 연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통제한다. 이는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보하는 동시에 상대를 잠재적 피해자로 규정하여 무력화시키는 고도의 심리 전술이다.

그들의 걱정은 당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겪게 될 상실감과 괴로움을 미리 차단하려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예방 조치다. 그들은 당신이 다칠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에 흠집이 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의 메커니즘, 자발적 복종의 단계

이 통제의 화법이 무서운 이유는 피해자가 거부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 옷 입지 마”라는 직접적인 명령은 반발을 산다. 하지만 “네가 너무 예뻐서 다른 남자들이 쳐다보는 게 싫고 걱정돼서 그래”라는 말은 칭찬과 애정으로 위장되어 피해자의 판단력을 흐린다.

이것은 전형적인 이중 구속(Double Bind) 상황이다. 상대의 말을 거부하면 나는 그의 사랑과 걱정을 무시하는 나쁜 사람이 되고, 수용하면 나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반복적인 걱정 세례를 받다 보면 피해자는 서서히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 아껴주는데 내가 철없이 구는 건가?’라는 생각이 싹튼다. 이때부터 가스라이팅은 완성 단계에 접어든다. 피해자는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기 전에 그의 눈치를 살피고, 옷을 고를 때 그가 싫어할 만한 스타일을 배제한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지면 공포를 느끼고, 1분이라도 연락이 늦으면 과도하게 미안해한다. 이것은 평화가 아니다.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비굴한 타협이자 자발적 복종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자아는 서서히 소멸한다. 사회적 관계는 단절된다. “네 친구들은 너한테 도움이 안 돼”, “우리 둘만 서로 이해하면 돼”라는 말로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고립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세계에서 유일한 신이자 재판관이 된다.

이 폐쇄적인 생태계 안에서 폭력은 사랑으로, 억압은 보호로 둔갑한다. 피해자는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간수가 던져주는 관심이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시들어간다.

안전이라는 환상과 현실의 역설

통제광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늘 ‘세상은 위험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늦은 밤길이 위험하고, 술자리가 위험하고, 낯선 시선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세상에는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볼 때,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는 어두운 골목길의 낯선 괴한보다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것은 잔인한 역설이다. 그들은 당신을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자처하지만, 정작 당신의 자존감을 짓밟고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주체는 바로 그들이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독재 정권의 통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당신을 유리 감옥 속에 가두어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믿지만, 그 유리 감옥 안에서 산소는 고갈되고 있다.

진정한 안전은 통제에서 오지 않는다. 성인인 당신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책임질 능력이 있다. 위험을 감지하고 대처하는 능력은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그러나 파트너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차단해 버리면, 당신은 스스로를 보호할 근육을 키울 기회를 박탈당한다. 결국 당신은 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그들이 원하는 최종 목표다. 당신이 영원히 그들에게 의존하는 어린아이로 남는 것.

사랑은 상대를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들판에 서 있더라도, 그가 스스로 뿌리 내리고 버틸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넘어질까 봐 걷지 못하게 하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감금이다. 다리가 부러질지라도 혼자 걸어보게 하고,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모습이다.

쇠사슬을 끊고 광야로

이제 우리는 “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문장을 재정의해야 한다. 그것은 애정 어린 조언이 아니라, 당신의 목에 채워진 목줄을 당기는 신호다. 그 말에 담긴 저의를 파악했다면, 반응은 단호해야 한다. 걱정은 고맙지만 내 인생의 결정권은 나에게 있음을, 나의 안전은 내가 책임질 것임을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오랜 시간 길들여진 죄책감과 의존성은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를 떠나면 당장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 공포심조차 그가 주입한 허상이다. 당신은 그를 만나기 전에도 충분히 잘 살아왔고, 스스로를 지켜왔던 존재다.

누군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하고, 당신의 선택을 대신하려 든다면, 그것은 사랑이 깊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덜 자랐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인간이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당신을 숙주로 삼고 있을 뿐이다. 그 기형적인 공생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다.

문을 열고 나가라. 그가 말한 위험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차라리 바깥세상의 찬 바람을 맞는 것이, 따뜻한 감옥에서 질식하는 것보다 낫다. 당신을 숨 막히게 하는 그 다정함은 목을 조르는 비단 끈과 다르지 않다.

사랑은 서로를 마주 보는 것이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두어두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날개는 접어서 보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펴서 날아오르기 위해 존재한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당신은 당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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