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는 지난 4일 국제학술지 ‘독성학과 응용약물학(Toxicology and applied pharmacology)’의 부편집장으로 확정됐다. 한국인으로는 서영준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에 이어 두 번째다. 국내에서 독성학 분야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부족한 현실에서, 순수 국내파 연구자가 국제 학술지 부편집장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박은정 교수는 지난 5일 경희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이 저널에 논문 한 번만 내보고 싶었다”며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지난 6년간 활동한 것도 감사한 일인데 이제는 부편집장까지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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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덕여대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모두 마친 순수 국내파 연구자로, 42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 10년간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17년 경희대 교수로 부임했다. 해외 경험은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방문연구원으로 보낸 6개월이 전부로, 하버드대·예일대 등 출신의 해외 연구자들과 비교하면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평가로 유명한 미국 학술지에서 부편집장으로 선임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연구성과와 동료들의 신뢰 덕분이었다. 박 교수의 연구를 가까이서 지켜본 연구자의 추천이 결정적이었다.
박 교수는 6개월간 NIOSH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러시아 출신 독성학자 애나 쉐브도바(Anna Shvedova)와 인연을 맺었다. 쉐브도바 박사는 나노·호흡기 독성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쉐브도바 박사는 처음엔 방문연구자였던 박 교수에게 큰 기대를 두지 않았다. 계획된 시간이 6개월이었고, 영어도 매우 서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기 위한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팀을 설득하는 박 교수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기관의 규정상 방문 연구자 신분인 박 교수에게 기관에 출입이 허용된 시간은 12시간이었다. 박 교수는 쉐브도바 박사에게 “시험물질을 투여한 동물을 부검한 후, 각 동물에서 수지상 세포를 분리하려면 24시간 실험이 필요하다”며 시간 제한 해제를 요청했다. 쉐브도바 박사는 기관에 요청해 실험이 원활하게 마무리되도록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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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전, 쉐브도바 박사는 박 교수에게 “평생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너를 믿고 더 많은 실험 쥐를 할애하지 못한 것”이라며 그의 연구 열정을 인정했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가며 학문적 동료로 발전했다.
안과 의사였던 쉐브도바 박사는 연구자인 남편을 따라 40대에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박 교수와 공통점이 많았다. 박 교수는 장이 좋지 않은 애나를 위해 한국식 죽을 만들어 주는 등 인간적으로 교류했다.
2019년 쉐브도바 박사는 박 교수를 ‘독성학과 응용약물학’의 편집위원으로 추천했고, 박 교수는 이후 6년간 심사위원으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성실성과 전문성을 평가받아 올해 다시 부편집장으로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공식 확정까지는 까다로운 검증 과정이 있었다. 논문 중복성, 연구 진실성, 동일인 여부 등에 대한 세밀한 검토도 있었다. 편집위원장 추천 후 4개월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그는 출판사 심사에서 떨어진 줄 알았다. 박 교수는 “마지막에 출판사 요청으로 연구 실적을 담은 이력서와 함께 클래리베이트와 유럽 과학잡지에 소개된 인터뷰 기사를 함께 보냈다”며 “순수 국내파라 저를 소개할 수 있는 자료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부편집장으로 확정된 박 교수는 앞으로 3년간 논문 심사와 게재 여부 결정 등 주요 역할을 맡는다. 그는 “이 자리는 실험실에서 보낸 지난 시간에 대한 동료 연구자들의 격려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국내외 연구자들과 독성학 연구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박은정 경희대 교수는
△동덕여대 건강관리학과 학사 △동덕여대 약학대학원 석·박사 △현 경희대 의대 교수 △현 경희대 환경독성보건연구센터장 △산업기술통상자원부 국가참조표준센터 호흡기 안전성 데이터센터장 △지식창조대상(2015년) △클래리베이트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 연구자’(2016년~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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