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극장가는 유난히 애니메이션이 강했습니다. 흥행 순위를 기준으로 선정한 4편을 통해 올해 극장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차근히 살펴봅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연간 박스오피스 집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출처 : 애니메이션 공식 포스터
2025.08.22 개봉 / 관객 566만 2,688명
〈귀멸의 칼날〉이 여름 극장가를 무한성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무한열차, 유곽, 대장간 마을을 지나 마침내 상현의 본거지로 돌입하는 이번 편은, 극장 전용 하이엔드 애니메이션에 가깝습니다. 이번에도 칼날 효과, 파편 디테일, 광원 표현을 극한까지 밀어붙였고, 전투 장면은 이미 팬들 사이에서 작화 전성기 갱신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감정 밀도에 대한 평이 좋았습니다. 캐릭터들의 각기 다른 신념을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탄지로의 성장, 네즈코의 변화가 정면으로 맞부딪치면서 전투와 서사가 고조됩니다. 사운드 역시 극장을 위한 설계가 돋보였는데, 한 칼 한 칼이 객석 뒤편에서부터 휘돌아오는 듯한 입체감 덕에 OTT로 나와도 재관람하겠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팬덤은 물론 일반 관객층까지 넓히며, 2025년 한국 애니메이션 연간 흥행 1위를 확보했습니다. 결국 '귀멸'은 ‘이번에도 흥했다’가 아니라 ‘왜 흥하는지 다시 한 번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출처 : 애니메이션 공식 포스터
2025.09.24 개봉 / 관객 334만 9,702명
체인소 맨의 진짜 시작이라 불렸던 레제 아크가 드디어 스크린에 올라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TV 시리즈보다 어둡고, 잔혹하고, 심지어 더 슬픕니다. 폭탄 악마의 등장 장면을 시작으로 폭우 속 추격·수중 신·시가지 난투 등 ‘애니메이션 스태프가 야근을 갈아 넣은 것 같은’ 장면들을 쏟아냈습니다. 핵심은 단연 덴지×레제의 관계입니다. 설레면서도 불안하고, 가까워지지만 더 멀어지는 이 묘한 로맨스를 영화는 아주 섬세하게 잡아냈습니다. 첫 데이트 장면의 조명, 누워 바라보는 잿빛 하늘, 비가 내리는 골목을 건너는 순간 등 작은 디테일들이 감정선을 옥죄어 옵니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교차편집이죠. 2025년 9월 박스오피스에서 이 정도 파괴력은 의외였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체인소 맨은 항상 이 정도 인기를 보여주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주토피아 2
주토피아2/ 출처 : 애니메이션 공식 포스터
2025.11.26 개봉 / 관객 210만 6,908명
1편 이후 무려 9년 만에 귀환한 〈주토피아〉의 속편입니다. 디즈니는 이번에도 다정함과 풍자를 기가 막히게 섞었습니다. 이번에는 도시의 확장과 함께 더 많은 구역, 더 다양한 종(種)이 등장하고, 각 커뮤니티의 문화·관습·갈등을 드러내는 방식이 한층 더 세밀해졌습니다. 특히 실제 도시의 치안·여론·언론 환경을 반영한 사회적 코드가 강화되어, 가족 단위 관객뿐 아니라 20~40대 관객까지 폭넓게 끌어들였습니다. 닉과 주디의 호흡은 여전하고, 사건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액션 장면은 디즈니의 기존 질감보다 훨씬 더 리얼리즘에 가깝습니다. 이번 속편은 ‘주토피아만의 매력은 세계관이 아니라 캐릭터’라는 가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줍니다. 두 주인공의 신념·관점·감정이 얽히고 풀리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도시 전체를 밀어올립니다. 연말 극장가에서 가족·커플·팬층이 골고루 몰리며, 2025년의 마지막 대형 애니메이션 역할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건 극장가를 점령한 〈주토피아 2〉의 흥행 추이인데요. 현재 속도라면, 올해 최고 흥행작을 갱신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킹 오브 킹스
킹 오브 킹스/ 출처 : 애니메이션 공식 포스터
2025.07.16 개봉 / 관객 131만 7,345명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기반으로 만든 〈킹 오브 킹스〉는 예수의 탄생부터 사역, 십자가, 부활까지 이어지는 서사를 부담스럽지 않은 감정선으로 정제해 보여줍니다. 탄생 장면 역시 과장된 신비주의 대신, 마굿간의 고요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시작되는데요. 기적보다는 행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 집중하는 연출 덕분에 예수의 삶이 신화보다는 인간적인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작화 역시 디테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중동의 황토빛 풍경, 사막의 먼지, 나사렛의 일상적인 장면들을 따뜻한 색감으로 담아내며 시대적 배경을 부드럽게 묘사합니다. 특히 빵을 나누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장면들은 과한 기적 묘사 없이도 울림을 만들어냈는데요. 감정의 결을 살짝만 강조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종교적 메시지가 강한 장면에서도 자연스럽게 서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킹 오브 킹스〉는 신앙을 가진 관객뿐 아니라, 예수의 생애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도 자연스럽게 동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작품이었습니다. 2025년 극장가에서 종교 애니메이션이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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