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 학기를 앞두고 유아 사교육 시장이 또 다시 들썩이고 있다. 나이 별로 반 배정이 이뤄지는 유아 사교육의 특성을 감안한 영어유치원(이하 영유)·학원 신규 등록과 갈아타기 움직임이 올해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바쁜 사람은 엄마들이다. 유명학원 물색, 레벨 테스트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영유·학원의 갑질 행태, 등록이 아닌 테스트를 보는 과정에서의 대기와 비용 부담, 반 편성에 불만을 품은 항의소동 등 제3자가 보기에 선뜻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어학원 선착순 등록에 '알바 동원' 진풍경…학원 테스트 때문에 과외 받는 경우도 빈번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유미정(38·여·가명 씨는 요즘 들어 부쩍 바빠졌다. 내년에 4세(연 나이)가 되는 딸의 영어 학원 때문이다. 나이 규정이 '만 나이' 기준으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유아 사교육 시장에선 연 나이를 사용한다. 통상 영어유치원은 연 나이 5세부터 등록이 가능하지만 4세부터 영어 유치원과 흡사한 영어 교육 학원을 보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유명 영어유치원에 등록하려면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높은 경쟁률을 뚫거나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평가받는 등 과정 자체가 상당히 험난하기 때문이다.
4세 영어 교육 학원을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는데 경쟁률이 엄청나나 보니 등록 자체가 쉽지 않다. 일례로 Y기업 계열사인 A학원의 경우 학습 효과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같은 Y기업 계열사 G영유 등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등록 신청과 동시에 곧장 마감이 된다. 등록 대기자 번호도 세 자릿수가 기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인척을 전부 동원하거나 아예 등록 대행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유 씨는 "A학원 선착순 등록에 성공하려고 친한 지인까지 동원했는데도 대기번호가 너무 뒤로 밀렸다"며 "A학원 등록은 실패했지만 다른 학원을 보내면서 G영유 등록에 도전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G영유 등록률이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직접 상담도 받고 하느라 요즘 많이 바쁘다"며 "일단 놀이영어 프로그램이 있는 학원에 보내면서 과외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아이를 영유에 보내는 5세·6세 학부모들도 바쁘긴 매한가지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김정혜 씨(38·여·가명)는 내년에 6살이 되는 딸의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수학, 국어, 사고력 등 대부분의 학원을 6살부터 보낸 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미 유명 학원들은 등록 경쟁률이 바늘구멍 수준이다. 게다가 상당수 학원들에서 반 구분을 위한 사전 테스트를 진행하는 탓에 별도의 과외까지 알아보고 있다. 진도나 수업 분위기 등에서 아무래도 상위권 반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김 씨는 "내년 1~2월 개설되는 6세 반은 빠르면 11월, 늦어도 12월부턴 등록을 받는다"며 "대부분 테스트와 함께 등록을 진행하기 때문에 따로 준비를 안 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학원 정보를 알아보는 것부터 테스트 준비까지 전부 엄마 몫이다"며 "유아 교육은 학습과 놀이가 병행되는 경우가 많고 일찌감치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게끔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다 보니 조금 고생스럽긴 해도 꼭 보내야 겠다고 마음먹은 상태다"고 덧붙였다.
자격 테스트 응시료만 8만원, 영유 이전 일방 통보 후 이전 위치조차 안 알려주는 경우도
유아 대상의 유명 영유·학원의 경우 공급에 비해 수요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등록 또는 재등록 과정에서 흔치 않은 헤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일부 영유·학원의 갑질 행태, 등록이 아닌 테스트 과정에서의 대기와 비용 부담, 반 편성에 불만을 품은 항의소동 등이 대표적이다. 사교육업계 등에 따르면 일부 유명 학원의 경우 단순히 테스트를 보는데도 적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테스트를 보는 데에도 10만원 안팎의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이영주 씨(37·여·가명)는 "올해 5살된 아들을 영재학원이라고 소문한 곳에 보내기 위해 등록을 문의했는데 안내받은 시험 날짜가 3개월 후였고 시험 응시 비용도 8만원이었다"며 "결국 기다려서 돈 까지 주고 시험을 쳤지만 떨어졌는데 점수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학원 관계자가 아깝게 떨어졌으니 한 번 더 시험을 치르라고 권유해 결국 다시 돈을 주고 시험을 쳐서 합격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응시료 장사를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일부 영유에선 5세 때 입학 후엔 6세, 7세가 되더라도 다른 영유로 이동이 어렵다는 점을 노린 '갑질' 수준의 학부모 대응을 일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양은주 씨(39·여·가명)는 "올해 5살인 아이를 Y기업 계열의 P영유에 보내고 있는데 지난 11월 쯤인가 돌연 건물 이전 소식을 알려왔다"며 "그런데 이전 예정인 위치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12월부터 내년 학기 등록을 미리 받는다며 1개월 치 비용까지 요구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P영유를 선택한 이유가 집에서 가까워 따로 셔틀 차량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리트 때문이었는데 일방적으로 이전하면서 위치조차 알려주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집에서 멀어지게 되면 하는 수 없이 월 15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셔틀 차량까지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치를 모르니 다른 학원을 알아보기도 애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내년 6세반 등록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는 '갑질' 가까운 행위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게 너무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매 년 연말이 되면 더욱 뜨거워지는 유아 사교육 시장의 분위기에 대해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사교육 시장의 전반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최상위 학원들은 수요가 넘치는 상황이 '교육의 양극화'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마다 반복되는 유아 사교육 과열 현상은 단순한 교육열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들이 '조기 경쟁'에서 뒤처지면 학창시절 교육 전체에 차질이 생긴다는 불안심리가 만든 구조적 현상이다"며 "유아 사교육 과열은 중산층 부모들의 교육 불안을 자극하고 결국 계층 간 격차를 더욱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유아 사교육 시장의 과열 요소를 점검하고 최소한의 규범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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