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교역에서 밀린 것 같다. 충격이 크다."
최근 폴란드 잠수함 수주전에서 스웨덴에 밀린 상황을 두고 한 방산업계 관계자가 남긴 말이다. 기술력도 납기도 자신 있었지만 결정적 한 방이 부족했다.
폴란드 정부는 신형 잠수함 사업자로 스웨덴 사브를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르카 프로젝트(Orca Project)'로 불린 이 사업은 3000톤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폴란드 해군의 전략 사업이다. 사업 규모는 약 3조8000억원. 유지·운영비까지 포함하면 최대 8조원에 이른다. 한화오션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스웨덴의 방산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한화오션은 입장문을 통해 "국내외의 뜨거운 지원에 힘입어 전사적 노력을 다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캐나다·중동 등 다가올 글로벌 수출 사업에 뼈를 깎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전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납기, 기술력, 운영능력 모두 한국이 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패인은 결국 절충교역이 이유였다. 구매국의 입장을 꿰뚫어보지 못한 게 패인이 됐다.
절충교역이란 무기 등 외국 군사 물자를 구매할 때 기술 이전이나 국산 부품 역수출과 같은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교역형태를 말한다.
외신 등에 따르면 스웨덴은 폴란드가 A26 잠수함을 독자적으로 정비·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폴란드산 무기 구매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형 A26 잠수함이 인도되기 전까지 폴란드 해군이 훈련 및 운용할 수 있도록 기존 쇠데르만란드급(Södermanland-class) 잠수함 1척을 임시 제공하고, 양국은 발트해 수중 작전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키로 했다.
이제 시선은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으로 향한다. 캐나다 정부는 빅토리아급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최대 12척의 디젤잠을 도입할 계획이며 지난 8월 한화오션(KSS-III)과 독일 TKMS(Type 212CD)를 최종 공급 후보로 선정했다. 총 60조원 규모로 단일 계약으로는 한국 방산 역사상 최대 수출이 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 한국은 다시 도전 중이다.
최근 핵추진 잠수함 건조 허가를 받으면서 이번 수주전에서 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캐나다가 차세대 잠수함 도입 과정에서 핵잠수함 발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크리스토퍼 에르난데스-로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은 캐나다 현지 매체 'Policy Magazine'에 기고한 글을 통해 "한국이 신뢰할 만한 원자력 추진 기술을 입증할 경우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고, 캐나다가 한국을 고급 방위 파트너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캐나다 정부가 중기적으로는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을, 장기적으로는 재래식 핵 추진 잠수함을 혼합해 운용하는 방안을 고려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순 설계·가격·납기만을 놓고 판단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캐나다 현지 매체 'Policy Options'는 이번 잠수함 발주를 두고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잠수함 구매가 아니라 산업 투자, 기술 이전, 조선 산업 활성화를 포함하는 종합적 외교·산업 패키지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폴란드에서 배운 교훈을 캐나다에서 반드시 활용해야 할 이유다. 방산 수주는 더 이상 조선소 혼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 외교라인, 민간기업이 하나의 '원팀'이 돼야만 가능한 싸움이다. 절충교역의 디테일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양성모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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