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주관사가 힐하우스 인베스트먼트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인수전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하루 만에 흥국생명의 강도 높은 문제 제기와 힐하우스의 대응이 이어지며 매각 절차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절차 공정성 논란에 중국 자본 문제, 그리고 앞으로 본격화될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까지 맞물리며, 이번 거래는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금융시장 신뢰와 규제적 판단이 교차하는 복합적 이슈로 확장되고 있다.
10일 힐하우스는 입장문을 내고 최근 제기된 의혹에 대해 규정 준수와 투명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힐하우스는 “이번 거래의 모든 절차에서 매각주관사의 기준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 왔다”고 밝히며, 향후에도 규제당국과 협력해 “투명하고 책임 있는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직접적인 개입 여부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문구 전반에서 그간 제기된 의혹과 선을 긋고 논란의 확산을 차단하려는 기조가 명확히 읽힌다.
또한 힐하우스는 이번 인수를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 성장 관점의 투자로 규정하며, “인내자본 공급이 원칙”이라고 명시했다. 이는 최근 시장에서 다시 부각된 중국 자본 논란을 의식해, 투기적 성격의 외국계 자본이라는 시각과 거리를 두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입장문에는 일본 삼티홀딩스(Samty Holdings), 호주·싱가포르의 대형 부동산·기숙사·물류 플랫폼 등 과거 투자 사례가 구체적으로 언급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부동산 운용 역량을 꾸준히 확장해 온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을 부각하는 내용도 담겼다. 계열사인 삼티 AMC가 일본에서 주거·호텔 기반 자산운용 플랫폼을 구축해온 사례를 소개하며, 이지스와의 결합이 이미 검증된 생태계를 기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인수의 산업적·전략적 타당성을 시장에 설득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대목이다.
절차 공정성 논란…흥국 강한 반발과 시장 신뢰 균열
앞서 흥국생명은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직후 공개 입장을 내고 매각 절차 전체가 공정하게 운영됐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흥국은 “본입찰 이전 주간사가 ‘프로그레시브 딜은 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설명했음에도, 결과적으로 특정 투자자에게 사실상의 재입찰을 요청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고가를 제시하고도 탈락한 배경을 절차적 비일관성에서 찾으며, 본입찰 금액이 힐하우스의 추가 제안에 기준점으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거론했다. 이는 단순한 경쟁사 간 갈등을 넘어, 주간사의 매각 구조 설계와 절차적 신뢰가 충분했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 문제 제기로 확장되고 있다.
이지스는 국민연금·행정공제회·사학연금 등 공적 자금이 크게 투입되는 플랫폼이다. 이 같은 특성을 고려하면 매각 과정에 요구되는 공정성과 투명성은 일반 민간 기업 거래와는 수준이 다르다. 해외 PEF와 국내 SI가 경쟁하는 복합 구조에서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거나 절차에 대한 오해가 생길 경우, 결과가 시장 신뢰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단순한 절차 시비를 넘어 ‘공적 자산 매각의 정당성’이라는 더 큰 문제와 연결된다.
업계에서는 힐하우스가 비교적 긴 분량의 입장문을 발 빠르게 발표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절차 논란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힐하우스가 규정 준수·책임성·투명성이라는 키워드를 반복해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입장문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에는 주주적격성 심사 등 필수 규제 절차가 뒤따른다’고 설명하며, 통상 2개월 이상의 서류 심사와 약 6개월 내외의 클로징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은 시장에 ‘아직 모든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이지스 인수전 최종 분수령
흥국과 힐하우스의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인수전의 진짜 분수령은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될 전망이다. 이지스는 국내 공적 자금과 부동산 금융 인프라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플랫폼으로, 당국은 형식적 요건을 넘어 자본의 성격, 실질 지배력, 지배구조의 안정성, 장기 투자 의지, 그리고 시장 신뢰 회복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힐하우스를 둘러싼 중국 자본 논란은 이번 심사에서 피할 수 없는 쟁점이다. 힐하우스는 싱가포르 본사 체제와 글로벌 LP 기반을 강조하지만, 창업자 장레이의 중국 시장 기반 경력, 중국 플랫폼 기업과의 초기 연계성, 일부 해외 언론에서 보도된 중국 고위층 인연 의혹 등은 국내 금융권에서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 한국 금융시장이 중국계 자본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배경을 고려하면, 당국은 단순 국적보다 자본의 실질적 성격과 지배 구조의 투명성에 더 높은 비중을 둘 가능성이 크다.
힐하우스가 입장문에서 “단기 수익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중시하는 장기 투자자”임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규제 환경을 염두에 둔 메시지로 해석된다. 심사 결과는 정상 승인에서 조건부 승인, 심사 장기화, 거래 구조 재검토 등 여러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으며, 절차 논란과 중국 자본 논란이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향방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수전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본심사의 출발점”이라며 “흥국의 문제 제기와 힐하우스의 대응 모두 금융당국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 신뢰, 자본 성격, 절차 정당성이라는 세 축에서 얼마나 명확한 기준을 충족하느냐가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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