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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업계 생존 공식이 뒤바뀌고 있다. 한때는 대기업 계열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안전판'처럼 여겨졌던 건설사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미분양 누적 △금리 고착화 '삼중고(三重苦)'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다. 연간 수주 30조원을 넘기는 건설사가 있는 반면, 분기 적자만 1900억원에 달하는 곳도 동시에 존재한다. 같은 '대기업'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숫자들이 어느덧 정반대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건설사 생존 기준은 더 이상 '어느 그룹에 속했느냐'가 아니다. 이젠 '그룹 없이도 외부 수주와 이익, 현금흐름을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느냐'가 회사 존폐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 되고 있다.
기사에서 언급되는
'독립 생존군' 건설사는 단순 실적이 우수한 회사를 뜻하지 않는다. PF 위기와 미분양 적체, 고금리 장기화라는 '삼중 악재'에도 그룹 내부 물량 외에 외부 수주로 매출과 이익을 만들고, 브랜드·기술·현금흐름 등으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자생 가능한 건설사'를 의미한다. 위기가 닥칠수록 분명하게 드러나는 '시장형 체질'을 갖춘 기업인 셈이다.
올해 건설업계에서 독립 생존이 가능한 건설사로는 △삼성그룹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E&A(옛 삼성엔지니어링) △GS GS건설 △효성 효성중공업 △금호아시아나 금호건설 등이 꼽힌다. 이들 모두 '그룹 지원 부서'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내부 일감이 아닌
'그룹 밖에서 돈을 버는 독립 수익 산업'으로 수주와 이익을 이뤄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재계 1위 후광 아닌 자체 경쟁력 …"리스크 통제하는 기술형 건설사로 진화"
삼성 – 공정거래위원회 2025년 기준 재계 1위
삼성물산 – 2025년 시공능력평가 1위
삼성E&A – 2025년 시공능력평가 36위
Ⓒ 삼성물산
대기업 내 건설사 대부분 역할은 오랫동안 '내부 투자 집행 창구'에 가까웠다. 그룹 반도체·전자·화학·바이오 등 주력 산업이 이익을 책임지는 대신, 건설사는 공장·연구소·물류센터·사옥 등을 짓는 지원 부문 성격이 강했다.
삼성 건설계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이후 전략을 '외부 수익 산업'으로 재정의하면서 현재 '구조적 독립 생존'이 가능한 형태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실제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은 전통적으로 반도체 공장, 디스플레이 라인, 바이오 생산시설 등 그룹 핵심 제조라인 구축을 전담하는 '내부 시공 축'에 가까웠다. 그룹 투자가 커질수록 실적도 함께 커지는 구조였다. 이에 따라 외형은 나날이 커졌지만, 본질적으로는 '내부 투자 집행 조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환점은 2010년대 후반 이후다. 단순 내부 지원이 아닌 '그룹 밖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독립 산업'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중동·동남아 초대형 인프라 △초고층 복합개발 △데이터센터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등 외부 시장 중심 포트폴리오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올해 삼성물산은 대형 프로젝트 공백 및 원가 부담으로 영업이익이 다소 감소했지만, 여전히 연간 1조원 안팎 이익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21년 2514억원 · 22년 8749억원 · 23년 1조340억원 · 24년 1조10억원). 여기에 △연간 신규 수주 10조원 안팎 △부채비율 100% 미만 △글로벌 신용등급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지표를 동시에 갖추며 단기 경기 변동과 무관한 '구조적 안정'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삼성물산이 자생 가능한 건설사로 거듭난 결정적 배경은 '브랜드와 기술력이 곧 금융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단계'까지 올라섰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삼성물산 신용도는 프로젝트파이낸싱 조달 조건에 직접 반영되고, 이는 다시 낮은 금융비용 → 수익성 안정 → 수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단순 시공을 넘어 개발·운영·투자까지 결합한 '디벨로퍼형' 사업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중동 신도시 인프라, 대형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 글로벌 데이터센터 개발 등은 단순 시공보다 중장기 수익과 현금흐름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사업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은 이제 그룹 안에서도, 그룹 밖에서도 동시에 '안전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건설사"라며 "올해만 보면 불안할 수 있지만, 재무·기술·신용도를 종합하면 시장 위기 국면에서 가장 구조적으로 안전한 건설사"라고 분석했다.
ⓒ 삼성엔지니어링
'삼성그룹 내 또 다른 건설계열'인
삼성E&A는 과거 계열사 화학·정유 설비 시공을 담당하던 내부 EPC(설계·조달·시공) 조직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는 LNG·화공·수소 플랜트 중심 글로벌 EPC 기업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2025년 기준 삼성E&A 실적 구조는 업계에서 '극히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연간 △신규 수주 10~12조원 △영업이익 5000억원 안팎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으며, 주택 분양·PF와 구조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수익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발주 축소 여파로 과거와 같은 '초고속 성장' 국면은 아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 플랜트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분양 시장과 무관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E&A만의 생존 무기는 '기술력이 곧 신용'으로 직결되는 플랜트 EPC 구조다. 초고난도 공정과 대형 프로젝트 수행 경험은 해외 발주처 반복 수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안정적 수주 파이프라인과 현금흐름으로 되돌아간다.
또 하나 주목되는 변화는 '선별 수주 전략' 정착이다. 과거 외형 확대 시기처럼 무리한 저가 수주가 아니라 △원가 통제가 가능한 프로젝트 △대금 회수 안정성이 높은 발주처 △리스크 분담 구조가 명확한 사업 위주로 수주 전략을 운용하고 있다. 덕분에 최근 몇 년간 플랜트 업황 조정 국면에서도 수익성이 급격히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삼성E&A는 남궁홍 대표이사 사장 '3연임' 확정에 따른 조직 안정과 전략 연속성도 확보했다. 남 사장은 연임 이후에도 LNG·수소·저탄소 플랜트 중심 선별 수주 기조와 수익성 우선 경영을 유지하며, 외형 확대보다 현금흐름 및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둔 보수적 성장 노선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E&A는 이미 '외형보다 현금이 먼저 도는 구조'를 완성한 회사"라며 "외형 성장 속도는 다소 둔화됐지만, 재무 안전성·기술 경쟁력·현금흐름을 모두 갖춘 만큼 PF 위기와 무관하게 가장 정통적인 독립 생존형 엔지니어링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재계 10위권, 건설사는 업계 최강 수익 체질 "무너졌지만 가장 먼저 살아났다"
GS – 2025년 재계 10위
GS건설 – 2025년 시공능력평가 5위
Ⓒ GS건설
GS건설은 이번 PF 위기 국면에서 '가장 먼저 손실을 인정하고, 가장 먼저 구조를 바꾼 회사'로 꼽힌다.
PF 부실이 본격화되기 전인 2023년부터 고원가·고위험 현장을 대거 정리하고, 자체 사업 및 일부 지방 사업장 리스크를 과감하게 털어냈다. 당시 대규모 손실 반영으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시장 우려를 샀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빠른 실적 반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GS건설 2025년 영업이익은 4000억원대 중반 회복이 유력하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809억원으로 전년 대비 55.0% 증가했다. 원가율도 위기 이전보다 안정적인 수준까지 내려왔고, PF 우발채무 부담 역시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순차입금 규모도 감소세로 전환되며 재무 구조 전반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흐름이다.
수주 측면에서도 회복 속도가 빠르다. 올해 3분기 누적 신규 수주는 12조3386억원으로, 연간 가이던스(14조3000억원) 대비 86.3%를 채웠다. 이 가운데 도시정비 사업 비중이 크게 늘었다. 대형 재건축·재개발 수주를 중심으로 수도권 정비사업 수주가 이어지며 '자이' 브랜드의 실질 수주력 회복이 확인되고 있다.
플랜트와 해외 인프라 사업도 다시 살아나고 있다. 중동·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인프라·발전·정유 플랜트 프로젝트 수주가 재개되면서 주택·정비사업과 비주택 부문이 균형을 이루는 포트폴리오가 재형성되고 있다. 이는 과거보다 특정 사업에 쏠린 리스크를 낮춘 구조로 재편됐다는 의미다.
GS건설만의 또 다른 강점은 계열 분리 이후 축적된
'완전 외부 시장형 생존 경험'이다. LG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내부 물량에 기댈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브랜드, 정비사업, 해외 인프라, 플랜트 역량을 동시에 키웠다. 이력 자체가 '그룹 보호막 없이 버텨본 회사'인 만큼, 이번 위기 국면에서도 강한 면역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GS건설은 PF 위기 충격을 가장 먼저 크게 맞았지만, 그만큼 가장 빠르게 체질 개선에 성공한 사례"라며 "2025년 기준 독립 생존력만 놓고 보면 가장 완성도 높은 모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재계 중위권이지만, 전력·중공업으로 '경기 무풍지대' 구축"
효성 – 2025년 재계 31위
효성중공업 – 2025년 시공능력평가 27위
효성그룹 본사. Ⓒ 프라임경제
효성중공업 생존 방식은 다른 건설사들과 결이 다르다. 출발은 그룹 내 전동기·변압기·전력 설비 제작과 공장·전력 인프라 시공을 담당하는 '제조 지원형 조직'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송배전·전력망·에너지 인프라를 축으로 한
글로벌 전력 인프라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효성중공업 올해 3분기 누적 실적은 △매출 4조2255억원(전년比 27.1%↑) △영업이익 4864억원(111.2%↑)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고도화, 데이터센터 증설 수요가 겹치면서 전력 인프라 교체 시장이 구조적으로 성장 구간에 들어선 점이 실적을 뒷받침하고 있다. 해외 수주 비중도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효성중공업이 독립 생존군으로 분류되는 결정적 이유는 주택 분양·PF와 수익 구조가 거의 완전히 분리됐다는 점이다. 분양 경기가 얼어붙고 PF 시장이 경색돼도 실적이 급락하지 않는 구조다.
경영 기조 역시 외형 확대보다 수익성과 현금흐름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선이다. 원가 통제가 가능한 고부가 송배전 프로젝트, 초고압 변압기, ESS(에너지저장장치) 연계 전력망 사업 위주로 수주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그룹 내 위상도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한때는 '설비 담당' 성격이 강한 사업부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그룹 전체 실적을 방어하는 안정적 외화 수익 창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효성중공업은 이제 건설사라기보다 전력 인프라 기업에 가까운 독립 생존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재계 순위에선 내려왔지만, 건설사는 살아남았다" 숫자로 입증된 턴어라운드
금호아시아나 – 2025년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지정 제외
금호건설 – 2025년 시공능력평가 24위
Ⓒ 금호건설
한때
금호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 공항·물류·교통·주거 인프라를 담당하던 전형적 내부 의존형 건설사였다. 그룹 외형 확장기에 성장을 거듭했지만, 그룹 유동성 위기 이후 내부 물량이 급감하면서 재무 불안과 유동성 위기가 곧바로 현실화됐다. 한동안 시장에서는 금호건설을 '구조조정 대상' 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이후 그룹 '금호아시아나'는 2025년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공식 제외되며 재계 순위표에서 내려왔다. 반면 금호건설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전환점은 외부 시장으로의 방향 전환이었다. 금호건설은 자체 개발·고위험 사업 비중을 줄이는 대신 △공공 SOC △민간 도급 주택 △도시정비 중심으로 수주 구조를 재편했다. 그 결과 2025년 현재 △영업이익·순이익 동반 흑자 전환 △연간 신규 수주 3~4조원대 회복 등 실적 개선이 눈에 보이는 수준으로 현실화됐다.
부채비율은 여전히 200%대 수준으로 낮다고 보긴 어렵지만, 과거와 달리 영업현금흐름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구조로 전환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단기 차입금 상환 부담이 과거보다 크게 완화됐고, 금융권 신용 평가 역시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금호건설 생존 전략은
철저히 '리스크 축소형'이다. 외형 확대보다 △공사 원가 통제가 가능한 공공·도급형 사업 △분양 리스크를 최소화한 정비사업 △자체 PF 비중 축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크게 벌기'보다 '확실히 버는 구조'를 선택해 내부 의존에서 벗어나 외부 시장형으로 전환하지 않았다면 현재와 같은 회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단순 회복을 넘어 '위기 탈출에 성공한 실전형 독립 생존 모델'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독립 생존군으로 분류된 건설사들의 공통 변화는 분명하다.
과거에는 그룹 지원 조직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그룹 외부에서 수주·이익·현금흐름을 스스로 만드는 자생 가능한 산업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위기 국면에서는 손실을 미루지 않고 구조를 바꾸는 선택을 통해 내부 의존 고리를 끊어냈다.
'대기업 계열사'라는 보호막이 더 이상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 시장에서 이들은 이미
'그룹 보호막'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 시장 상황 속에서 이들 건설사가 그룹 의존 없이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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