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미국에서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한국영화배우협회는 유족과 영화인장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고 김지미는 지난 1940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고인은 유학 준비 중 김기영 감독에게 발탁, 1957년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비구니’ ‘길소뜸’ ‘티켓’ ‘너의 이름은 여자’ ‘아낌없이 주련다’ 등 수백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고 김지미는 빼어난 미모와 독보적인 분위기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렸으며,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대종상 등 유수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생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는 등 한국 영화계 발전에도 힘썼다. 특히 고인은 1980년대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하고 ‘길소뜸’, ‘티켓’ 등을 선보였으며, 2016년에는 은관문화훈장도 수훈했다.
고 김지미는 데뷔 직후인 1958년 영화감독 홍성기와 결혼했으나 1962년 이혼했다. 이후 1963년 배우 최무룡과 재혼, 슬하에 딸 한 명을 뒀지만, 1969년 갈라섰다. 1976년에는 가수 나훈아와 동거 소식으로 세간을 들썩였다. 두 사람은 1976년부터 1982년까지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나 결국 이별을 맞았다. 1991년에는 의사와 네 번째을 했고, 11년 뒤 또 한 번 이혼했다.
배우로서 마지막 작품은 1992년작 ‘명자 아끼꼬 쏘냐’이며, 현업에서 물러난 뒤에는 미국 LA에 거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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