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더봄] 겨울 추위를 물리치는 지구촌 '따뜻한 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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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영 더봄] 겨울 추위를 물리치는 지구촌 '따뜻한 음식' 이야기

여성경제신문 2025-12-10 10:15:00 신고

겨울철 애타게 찾는 따뜻한 음식의 심리학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유독 뜨거운 음식에 끌린다. 이는 단순한 계절 취향이 아니라, 인류가 오래도록 추위를 견디기 위해 익힌 본능적인 식습관의 반영이다. 낮은 기온은 몸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고, 이때 뜨거운 국물과 칼로리 높은 음식은 즉각적인 위안을 제공한다.

각 나라의 사람들이 “겨울이면 생각나는 음식”을 떠올릴 때, 대부분의 기억은 따끈한 냄비와 김이 피어오르는 한 그릇에 담겨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뜨거운 음식들이 단지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까지 선사한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심리학자들은 “뜨거운 음식을 함께 나누는 행위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높인다”고 분석한다. 결국 겨울을 맛있게 만드는 것은 차가운 날씨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이 서로에게 건네는 온기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혹한과 풍습이 빚어낸 세계의 겨울 대표 음식

세계 곳곳에서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뜨거운 요리를 발전시켜 왔다. 일본의 닛코 유바나베는 두부껍질을 주재료로 삼아 은은하게 끓여 먹는 겨울 별미로, 에도 시대 사찰 문화 속에서 태어났다. 그 속에는 단백질을 조금이라도 아껴 먹으려 했던 당시 사람들의 지혜가 녹아 있다.

터키식 내장탕 이쉬켐베 초르바스(İşkembe Çorbası) /픽사베이
터키식 내장탕 이쉬켐베 초르바스(İşkembe Çorbası) /픽사베이

반면 튀르키예에서는 겨울철 이쉬켐베 초르바스(İşkembe Çorbası)라는 소나 양의 내장(곱창 등)으로 끓인 튀르키예식 해장국 또는 내장탕을 즐겨 먹는다. 항구 노동자, 상인, 야간 순찰대, 심야까지 일한 장인들은 몸을 데우기 위해 진하고 따뜻한 수프를 찾았고, 고단백·고열량이면서 값이 저렴한 내장은 그들에게 가장 실용적인 재료였다.

특히 라마단 기간, 해가 뜨기 직전의 식사(사후르, Sahur)로 내장탕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이겨내기 위해, 배를 든든하게 만들고 하루의 금식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즐겨 먹으면서 터키를 대표하는 겨울철 보양식으로 손꼽히고 있다.

뉴질랜드의 겨울철 전통 화덕 요리인 항기(Hangi)요리 /wikipedia
뉴질랜드의 겨울철 전통 화덕 요리인 항기(Hangi)요리 /wikipedia

남반구 뉴질랜드에서는 겨울마다 전통 화덕 요리인 항기(Hangi)요리가 등장한다. 땅속에 데운 돌 위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몇 시간 동안 천천히 익히는 방식은 폴리네시아 문화의 흔적이며, 한겨울 축제가 열릴 때마다 가족들이 모여 함께 나눠 먹는 전통이 지금도 살아 있다.

러시아의 겨울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혹독함을 자랑한다. 이런 환경은 ‘얼린 만두’라는 독특한 발상을 낳았다. 러시아의 대표 겨울 음식인 '펠메니(pelmeni)’는 고기와 양파를 다져 반죽 안에 넣고 빚은 뒤, 겨울 바깥 공기 속에 그대로 얼려 보관한다.

시베리아에서는 영하 40도의 날씨가 자연 냉동고 역할을 했고, 덕분에 펠메니는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다. 겨울철 사냥꾼들은 펠메니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다가 눈 덮인 숲속에서 즉석으로 끓여 먹었다고 전해진다. 현대의 식탁에서는 사워크림을 곁들이며 먹는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추위를 견딘 음식이 주는 묵직한 위안이 매력이다.

러시아의 대표 겨울 음식인 '펠메니(pelmeni)’ /픽사베이
러시아의 대표 겨울 음식인 '펠메니(pelmeni)’ /픽사베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은 겨울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쇼르파(shorpa)’다. 양고기와 뿌리채소를 큰 가마솥에 넣고 천천히 끓이는 방식으로, 유목민들이 이동 중 쉽게 조리하고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요리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유목민들은 겨울철 장시간 이동 중 체온을 유지하고 탈수를 막기 위해 뜨거운 국물을 필수적으로 챙겼다. 한 큰솥의 쇼르파는 마을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겨울의 행사’이자 공동체의 환대 문화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뜨거운 음식이 전하는 마음의 위로

오늘날은 난방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과거만큼 혹독한 겨울을 경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뜨거운 음식이 가진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뜨거운 한 그릇은 언제나 사람을 멈추게 하고, 숨을 고르게 하며,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게 만든다. 그래서 겨울의 음식은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뜨끈한 국물을 마시는 순간 몸 안에서 퍼지는 열기만큼이나, “누군가가 나에게 따뜻함을 건네고 있다”는 감각이 사람을 따뜻하게 한다.

지구 곳곳의 뜨거운 위안 음식들은 서로 다른 재료와 조리법을 가지고 있지만, 겨울이라는 계절 앞에서 모두가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다. 차갑고 긴 계절을 버티게 하는 건 결국 음식을 통해 연결되는 인간의 온기라는 사실을, 이 뜨거운 그릇들이 말없이 알려주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foodnetwor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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