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회사인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반기를 들었다. 유력 인수자로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으나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우협이 되면서다.
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꼽은 우협은 중국계 출신이 모태로 알려진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다. 지난해 일본의 이지스운용으로 알려진 ‘삼티(Samty)를 인수해 기존 경영진을 유임시키며 주목된 곳이다.
현 경영진을 존중하는 듯한 선택에 로컬기업을 국제적으로 성장시키겠단 청사진은 이지스운용이 솔깃할 만한 부분이다. 다만 매각 절차가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았다며 흥국생명이 법적 대응을 시사한 만큼 변수는 있다.
흥국생명, 힐하우스 선정에 “강한 유감”
이지스운용 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힐하우스를 우협으로 선장하자 흥국생명이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했다. 매각 절차가 공정하지도 못했고 투명하지도 않았다는 게 흥국생명의 입장이다.
전일 입장문을 낸 흥국생명에 따르면 당초 주주대표와 매각주간사는 본입찰을 앞두고 소위 프로그레시브 딜(경매호가식 입찰)’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흥국생명이 이를 믿고 지난달 11일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이란 최고액을 제시하며 인수 의지를 내비친 배경이다.
하지만 매각 주간사는 본입찰 이후 우협 발표를 미루다가 힐하우스에 ‘프로그레시브 딜’을 제안하며 인수 희망 가격을 본입찰 최고가 이상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는 게 흥국생명의 설명이다. 그 결과 힐하우스가 낸 입찰가는 9000억원대에서 1조1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후 본입찰 실시 27일만에 힐하우스가 선정되자 흥국생명은 이의제기에 나섰다. 프로그레시브 딜이 예상과 달리 진행되자 본입찰에서 최고가를 높이기 위한 술책이 아니냔 의구심에서다. 더 나아가 흥국생명이 낸 입찰금액이 유출된 게 아니냔 의혹도 제기했다.
힐하우스, ‘일본의 이지스’ 삼티 인수 선례
창업자가 중국계 인물인 데다 PEF사인 만큼 힐하우스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엇갈린다. 업계에선 중국 자본의 공습이라며 기술 유출을 떠올리거나 단기 차익만 실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없지 않다.
다만 이지스는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 시각이다. 힐하우스가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부동산 투자 부문인 ‘라바 파트너스’를 통해 인수한 삼티를 보면서다. 힐하우스는 삼티를 경영권 인수 대신 공개매수(TOB)를 통한 상장폐지(비상장화)로 성장을 기다리는 방식을 택했다.
힐하우스 인수 하에 삼티 경영진은 그대로 유임됐으며 기존 대주주였던 다이와증권그룹과의 파트너십도 유지됐다. 또한 힐하우스는 상장폐지를 통해 매분기 실적 부담을 피해 5-1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호텔 및 주거 임대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두고 힐하우스가 삼티를 일본 로컬 기업에서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부동산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업계 평가도 나왔다. 이는 이지스운용이 지향하는 ‘아시아 블랙스톤’ 모델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인수 타당성을 높이는 근거로 활용된다.
중국계 자본 논란 넘겨도 변수는 흥국생명
힐하우스는 단순히 중국 자본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지난 2005년 중국계인 장 레이가 설립했지만 시드머니는 미국 예일대 기금에서 나와서다. 또한 지난달 말 기준 Preqin이 낸 자료에 따르면 미국·캐나다 지역 연기금이 전체 LP 중 93%를 차지한다.
실질적인 인수 주체인 라바 파트너스가 중국 본토가 아닌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독립 법인이기도 하다. 공동 대표인 조 개그넌도 미국 사모펀드 워버그 핀커스 출신의 미국인이란 점에서 중국회사라기보단 아시아 시장을 가장 잘 아는 글로벌 운용사로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함에도 힐하우스가 새 주인이 되는 건 강력 반발에 나선 흥국생명으로 인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흥국생명은 “이번 힐하우스로의 선정은 한국의 부동산 투자 플랫폼을 노린 중국계 사모펀드와 거액의 성과급에 눈먼 외국계 매각주간사가 공모해서 만든 합작품”이라며 “이는 매도인에게 부여된 재량의 한계를 넘어, 우리 자본시장의 신뢰와 질서를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흥국생명은 “이번 입찰 과정에서 주주대표와 매각주간사가 보여준 기만과 불법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입찰에서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서강대학교 김용진 경영학과 교수는 더리브스 질의에 “계약상 프로그레시브 딜 관련 명시된 부분이 있다면 더 문제가 될 것”이라면서도 “우협 선정에서 주주대표와 매각주간사 중 어느 쪽 의사가 더 반영됐는지도 알려져야 명확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 관계자는 프로그레시브 딜 진행과 흥국생명이 제시한 최고가 노출 여부에 관해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해당 건에 대해서는 디클라인드 코멘트(declined comment)하겠다며 답변을 정중하게 거절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leaves@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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