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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인공지능(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리더십 역량이 무엇인지 질문받을 때가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AI를 잘 이해하는 기술 역량’을 떠올립니다. 물론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AI 시대의 리더십은 새로 배우는 것보다, 과거에 배웠던 ‘성공 방식을 먼저 내려놓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언러닝(Unlearning)의 핵심입니다.
언러닝은 과거의 지식을 삭제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과거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판단 기준, 조직 관성, 행동 패턴 중에서 오늘의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를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리더십 과정입니다. 그래서 언러닝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가 “나는 나의 무지를 알고 있다”고 말했듯이, 리더는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확신을 의심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심리적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패턴과 감정’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마주하면 과거 경험에 의존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패턴 인식’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특정 경험과 연결된 감정까지 더해지면, 리더는 새로운 정보 앞에서도 과거 해석 틀을 고집하게 됩니다. 예전에 내가 성공했던 방식은 이번에도 통할 것이라는 착각이 생기기 쉽습니다. AI 시대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과거 방식이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자기 확신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러닝은 ‘비움학습-재학습-전환’이라는 사이클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비움학습 단계에서, 리더는 기존 판단 기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재학습 단계에서 새로운 관점과 지식을 채웁니다. 마지막 전환 단계에서 조직의 정체성과 방향을 다시 설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업의 재정의’입니다. 애플이 PC 제조업을 넘어 사용자 경험 기업으로 스스로를 정의한 것처럼, 언러닝은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묻는 과정입니다.
전환의 대표적 사례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라는 과거 성공 모델을 스스로 버리고 스트리밍 기업으로 전환했습니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이 아니라 AWS 중심의 글로벌 플랫폼 회사가 되었습니다. 구글은 ‘검색 회사’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고 AI-퍼스트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중심 사고를 버리고 클라우드 퍼스트 전략으로 조직문화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테슬라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업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과거 공식을 ‘지우는’ 선택을 먼저 실행했습니다. AI 시대의 본질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정체성 경쟁입니다.
AI 시대가 리더십에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빨리 익히는가가 아닙니다. 얼마나 빨리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질문하는 사람인가, 이것이 리더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AI가 많은 영역의 판단과 분석을 대신한다면, 리더에게 남는 역할은 결국 질문, 방향 제시, 의미 부여입니다. 그래서 리더는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조직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리더십을 태도가 역할을 강화하고, 역할은 실행을 자극하고, 실행은 태도를 교정하는 사이클로 봅니다. 저는 이 중에서 태도를 가장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리더는 팀원에게 자극을 주어 시스템을 움직여야 합니다. 팀원은 지시가 아니라 의미에 반응합니다. 자극 단계에서는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합니다. 목표 달성은 리더십의 본질적 책임입니다. 그리고 전환의 마지막은 단정입니다. 단정은 단순한 정리정돈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입니다. 결국 리더십은 ‘선택과 집중’의 반복입니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결정력에서도 드러납니다. AI가 정보를 제공해도 최종 판단은 리더의 몫입니다. 그래서 리더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과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결정 역량은 AI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기술은 판단을 돕는 도구일 뿐입니다.
언러닝은 또한 조직문화 차원에서도 요구됩니다. 많은 기업이 여전히 통제와 보고 중심 문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자율·책임·실험이 강조됩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험하고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언러닝의 핵심은 실패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는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리더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러닝은 더 배우기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다시 배우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의 크기는 리더의 용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잘못 배운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가 리더의 성장을 결정합니다.
지금 리더에게 필요한 질문은 “무엇을 더 배울까?”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을까?”입니다. 언러닝이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AI 시대에 언러닝은 선택이 아니라 리더의 필수 능력입니다.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정의하는 기회’입니다. 리더는 이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열린 태도로 맞이해야 합니다.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갈 리더의 진짜 출발점입니다.
■문성후 대표 △경영학박사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 △연세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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