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에 불거진 일련의 스캔들이 한국 연예계를 뒤흔들었다. 당사자들은 의혹이 불거지자, 며칠 만에 은퇴 또는 프로그램 하차 결정을 내렸다.
개그맨 박나래와 조세호, 그리고 베테랑 배우 조진웅을 둘러싼 의혹은 각각 다르다. 직장 내 괴롭힘부터 미성년자 시절 범죄 이력, 조직폭력배와의 연관성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대중에게 친숙한 얼굴로 자리매김했던 이들이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한국에서 공인, 그중에서도 특히 연예인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했다.
어떤 일 있었나?
한국 최고 인기 여성 코미디언 중 한 명인 박나래는 지난주 전 매니저 두 명이 그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하고 집안일 등 사적인 일까지 떠맡았다고 주장, 약1억원 규모의 부동산 가압류를 신청하고 소송을 예고하면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들은 지난 9일 박 씨를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또 전 매니저들은 박 씨가 집에서 불법 의료 행위를 받았으며, 회사 자금을 전 남자친구 등에게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등 횡령을 저질렀다고도 주장했다.
박나래 측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하며 그들을 공갈 미수 혐의로 맞고소했다.
박 씨는 지난 8일 SNS를 통해 이들과 만나 오해와 불신을 풀었다면서도 "프로그램과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되기 전까지 방송 활동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논란에 휩싸인 또 다른 코미디언은 조세호다.
지난주 SNS에는 한 사용자가 조 씨와 조직폭력배 간 친분이 있다는 내용의 폭로성 글을 올렸다. 조 씨가 조직원의 사업을 홍보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조 씨가 출연 중인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과 '1박 2일'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비판이 강해지자, 조 씨 측은 결국 하차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조폭 사업과의 연관성이나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조 씨는 SNS를 통해 "제기된 의혹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서도 "프로그램과 팀 전체에 불필요한 부담을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하차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배우 조진웅의 은퇴 선언이다. 그는 지난 6일 배우 활동을 접겠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발표는 지난 5일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그가 고등학생이던 1994년 기준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강도·강간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았다고 보도한 뒤 나왔다. 또 매체는 그가 성인이 된 후에도 동료 배우에게 폭행을 가하고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정지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조 씨의 소속사는 그가 청소년 시절 잘못을 인정했지만, 성폭행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방송사들은 조 씨의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그가 내레이션(해설)을 맡은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재녹음이 진행됐고, 그가 주연으로 나오는 인기 드라마 후속작인 '시그널2'의 운명은 아직 불투명하다.
'캔슬컬처' 논쟁
한국에서 연예인이 학교폭력, 음주운전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물러나는 사례는 반복됐다. 그때마다 연예인을 향한 도덕적 잣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여러 의혹에 휩싸인 이들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특히 배우 조 씨의 경우 이례적으로 소년 시절 보호처분 기록이 문제시되면서 이를 둘러싸고 인터넷상의 익명 이용자들뿐만 아니라 법조인들과 정치인들까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애초에 언론이 이러한 기록을 보도해서는 안 됐으며, 이러한 행태는 결과적으로 비행 청소년들의 갱생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SNS 이용자는 "(조진웅이) 왜 은퇴해야 하나"라며 "왜 못난 과거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SNS에 "소년 시절의 상처를 다시 파헤쳐 도덕의 이름으로 재판정에 세웠고, 그가 쌓아 올린 모든 성취를 단숨에 무효로 만들었다"라며 "이것이 정의인가. 아니다. 이것은 집단적 린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그가 성인이 된 후에도 문제적인 행동을 해왔다는 의혹을 강조하며, 그가 연예계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면 관련 피해자들에게는 큰 고통을 주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한 소셜미디어 사용자는 "젊을 때 누구나 실수한다고 조 씨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누구나 이런 수준의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라고 썼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아직 실체가 전부 드러나지 않은 수사 중인 사안에 있어서 가해자나 범죄 혐의자에 대한 섣부른 옹호나 비난은 어떤 형태로든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라면서도 "가해자를 용서할지 말지는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라고 글을 남겼다.
이번 연예계 스캔들은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연이어 터지면서 정치적 연관성에 대한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가 한국인들이 연예인에게 요구하는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학교 폭력 가해자로 밝혀진 신인 아이돌이 활동을 중단하거나, 열애설이 불거졌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화 평론가 김성수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대중은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바로잡기를 기대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여론을 형성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경향에) 정확하게 노출되는 사람들이 연예인입니다. 연예인은 대중이 주는 인기와 평판을 먹고 사니까요…이들이 (연예인을) 퇴출시키고자 하면, 얼마든지 퇴출시킬 수 있는 구조인 거죠."
그러면서 "(연예인의) 학교폭력 등의 문제가 정치인과 재벌의 범죄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다뤄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캔들 당사자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반성하겠다"고 약속한 지금, 대중도 연예인에 대한 도덕적 잣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세호와 박나래 하차에 반대한다는 한 X 이용자는 "온라인 여론전에서 '연예인'들만을 대상으로 어떤 흠결을 잡아 하차시키는 반복적인 행태"를 단순히 "도덕적 논란"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며 "익명의 다수가 모이는 커뮤니티에 대해 한국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됐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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