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또 한 번 논란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9일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충남 천안 타운홀 미팅에서 방산 비리 근절과 관련한 질의에 답하던 과정에서 “방위사업청은 대규모 무기 조달을 담당하는 곳인데 군사 기밀을 빼돌린 업체와 수의계약을 한다는 소리가 있다”며 “크나 작으나 비리는 비리인 만큼 잘 체크하라”고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에게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특정 업체명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2012년 해군 잠수함·지원함 설계도면 유출 사건으로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이 KDDX 수의계약 논란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사실상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수의·경쟁 놓고 엇갈린 시선
KDDX 사업은 해군이 운용 중인 KDX-I·II 구축함과 KDX-Ⅲ 이지스 구축함 사이의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6000톤급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약 7조8000억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이다. 지금까지 운용 개념에 맞춘 건조 방향과 범위를 정하는 개념설계를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2013년 10월 완료했고, 이어 건조를 위해 구체적인 설계안을 마련하는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2023년 12월에 마무리했다.
사업은 모든 설계 요소를 확정하는 상세설계 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통상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까지 수행한 관례에 따라 방위사업청은 HD현대와의 수의계약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한화오션이 HD현대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형사고발에 나서자, HD현대도 한화오션을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하면서 논란이 본격화됐다. 여기에 방위사업청이 지난 2월 양사를 모두 방산업체로 지정한 뒤에도 방위사업관리규정, 국가계약법 등 법령을 근거로 HD현대와의 수의계약을 추진하면서 KDDX 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방위사업청의 수의계약 추진 움직임에 한화오션은 강하게 반발해 왔다. 한화오션은 계약 대상 업체 외에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업체가 없을 때는 수의계약이 허용되지만, 이미 양사가 생산 능력을 인정받아 방산업체로 지정된 이번 경우는 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본설계 업체가 상세설계를 진행해야 한다면 위원회 또는 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현재 HD현대와의 수의계약은 2차례의 분과위원회에서 반대 의견이 나와 선정이 보류된 상황이다. 반면, 경쟁입찰·공동계약은 국가계약법, 방위사업법 등의 법적 근거가 있고, 가격과 기술 경쟁 등을 통한 예산 절감과 기술력 향상 등의 이점까지 있다고 한화오션은 주장해 왔다.
결국 방사청은 KDDX 사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기본설계를 수행한 HD현대와의 단독 수의계약, 양사의 공개 경쟁입찰, 양사가 공동 설계와 건조에 참여하는 공동계약 등 3가지 안을 놓고 올해 중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통해 최종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당초 18일에 방추위가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22일경으로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변수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다. 특정 업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공개 석상에서 군사 기밀 유출로 처벌을 받은 업체와 수의계약을 추진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만큼, 이를 둘러싼 해석과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과 제도에 따라 진행돼 온 KDDX 사업 절차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업체에 따라 희비를 가를 수 있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양사 모두 말을 아끼는 분위기이지만 온도 차이가 감지된다. 대통령 발언 이후 내부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HD현대의 한 관계자는 “기존 입장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화오션도 군사 기밀을 유출한 이력이 있는 업체와 수의계약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한화오션의 공식 입장은 경쟁입찰이 원칙”이라면서 “정부가 공동계약 방안으로 결정해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 역시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방위산업에서는 경쟁입찰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지만, 함정 상세설계나 선도함 건조와 같이 기술 연속성과 일정 관리가 중요한 단계에서는 예외가 존재한다”며 “이 같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수의계약이 현실적으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통령이 수의계약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이를 채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결국 경쟁입찰이나 공동계약 가운데 하나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그중에서도 양사 간 이해관계를 절충할 수 있는 공동계약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며 “경쟁입찰의 경우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갈등, 별도의 준비기간 필요, 보안 감점 문제 등이 겹치면서 불협화음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 ‘원팀 건조’ 중재안…정치권 해법 제시
이처럼 장기간 표류해 온 KDDX 사업의 향방이 곧 결정될 예정인 가운데,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업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중재안을 제시했다. 유 의원은 무엇보다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 온 현재의 사업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1~2번함을 사실상 동시 발주하는 방식을 도입해, 경쟁을 최소화하고 ‘원팀 건조’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전력화 지연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개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계약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사업 일정이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계약 방안에 대해서는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양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만큼, 정부가 주도적으로 절충안을 마련해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사업 추진 과정 전반에서는 ‘KDDX 설계 협의체’를 통한 업체 간 소통을 제도화해 불필요한 갈등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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