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과 100년 동맹을 다짐하고 사업적 협력 강화에 나서면서 UAE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 특히 국가 모든 중대사를 쥐락펴락하는 UAE 권력의 핵심 '알 나흐얀' 가문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대형 국부펀드를 운용하며 UAE의 국가 프로젝트와 초대형 자본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이 가문의 행보가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 전략에 직접적인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의 중동 진출은 한국 경제의 운명과 직결돼 있는 만큼 가문의 역사부터 구성원까지 모든 사안이 관심사로 자리매김한 모습이다.
UAE 권력의 심장 아부다비 알 나흐얀 가문…대통령 50년 독점 체제의 정점 자리매김
UAE는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즈만, 움 알 쿠와인, 라스 알 카이마, 푸자이라 등 7개의 토호국(에미레이트)이 모인 연방국가다. 7개 토호국의 통치자들은 연방 최고 의사기구인 최고연방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통령을 선출한다. 명목상 민주적 합의 구조이지만 실질적 영향력은 단연 수도 아부다비를 거점으로 둔 '알 나흐얀' 가문이 압도적이다. 아부다비는 UAE 전체 면적의 85% 가량을 차지하는 가장 큰 토호국이다. 석유·가스 자원을 기반으로 한 경제력은 물론 외교·안보·정치 모든 분야에서 UAE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
자연스레 1971년 초대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직은 줄곧 아부다비 통치자인 알 나흐얀 가문이 독점해 왔다. 알 나흐얀 가문은 과거 아부다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부족 연합체인 바니 야스(Bani Yas) 시절부터 지배자의 입지를 지켜왔다. 1700년대 알 나흐얀 가문은 바니 야스의 지배 계층으로 자리 잡았고 1761년부터 아부다비 지역을 통치해왔다. 가문의 시조격인 '세이크 디야브 빈 이사 알 나흐얀'이 1816년 그의 아들 '셰이크 샤크하트 빈 디야브 알 나흐얀'에게 통치권을 이양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아부다비 기반 왕가 체제가 형성됐다.
1950년대 아부다비에서 석유가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알 나흐얀 가문은 UAE 7개의 토호국 중 최고 경제력을 가진 왕실 가문으로 자리매김했다. UAE가 연간 국가 운영금의 대부분을 아부다비 지역에서 발생하는 석유 판매 수익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 보호령 시절부터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경제적·정치적 기반을 다져온 알 나흐얀 가문은 1968년 UAE 독립 이후 지금까지 연방정부에 독점적인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직 역시 알 나흐얀 가문이 독식하고 있다.
1971년 UAE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1966~2004년)을 시작으로 2대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2004~2022년), 3대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2022~현재) 등은 모두 알 나흐얀 가문 출신이다. 초대 대통령 세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은 석유 판매 수익으로 병원, 학교 등을 설립해 국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교육·보건·인프라 구축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그는 주변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비 무슬림 성전의 건축을 허용하고 여성 노동권을 인정하는 등 비교적 자유주의적 통치를 해 높은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세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 전 대통령은 8명의 부인 사이에서 30명이 넘는 자식을 둔 것으로 전해지지만 실제 부인과 자식의 정확한 수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째 부인 '하싸 빈트 무함마드 알 나흐얀', 둘째 부인 '파티마 빈트 무바라크 알 나흐얀', 셋째 부인 '무자 빈트 수하일 알 카일리' 등만 알려진 상태다. 이들 중 첫째 부인은 같은 알 나흐얀 가문 출신으로 혈통 유지를 위해 동성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직은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인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나흐얀'에게 물려줬다.
제2대 대통령인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이름의 실제 주인공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부친 사망 이후 대통령직과 아부다비 통치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는 석유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금융, 관광, 항공, 첨단 기술 분야 투자를 확대했다. 2009년에는 한국과 협력해 UAE 바카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기술이 적용된 첫 해외 원전 사업으로 UAE가 원자력 발전을 통해 에너지 다각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제3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이하 무함마드) 현 대통령은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의 이복동생이다. 2014년 이복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사실상 국정을 주관하다 2022년 공식적으로 UAE 대통령에 취임했다. 무함마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방력 강화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꾸준히 국방력을 길러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2028년까지 국방에 1293억달러(원화 약 190조 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혀 글로벌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과 정상회담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UAE 스타게이트'를 강조하며 첨단 군사력 확충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한국 기업들도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국가 핵심요직도 알 나흐얀 가문 일원들이 장악…만수르·타눈 등 세계 최고 부자들 즐비
올해 상반기 기준 UAE의 투자자산'(SOI) 총액은 약 2조4900억달러(원화 약 3600조)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UAE의 투자자산은 석유 수익을 기반으로 한 거대 국부펀드를 통해 운영된다. 주요 기관으로는 무바달라 투자회사(이하 무바달라), 아부다비투자청(ADIA), 아부다비개발지주(ADQ), UAE 국영기술투자회사(MGX) 등이 있다. 이들 기관의 고위직 역시 알 나흐얀 가문 구성원들이 맡고 있다. 사실상 알 나흐얀 가문이 투자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모든 과정을 도맡고 있는 셈이다.
무바달라 회장은 영국 프로축구 리그(EPL)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로 유명한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이하 만수르)이다. 만수르는 무함마드 대통령의 여섯째 동생으로 현재 부통령과 대통령 집무처 장관을 동시 역임하고 있다. 만수르가 이끄는 무바달라는 글로벌 기업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글로벌파운드리(GF) 지분 81.5%를 소유하고 있으며 알파벳의 자율주행 사업 자회사인 웨이모(Waymo), 미국의 글로벌 테크 투자 중심의 사모펀드 실버레이크(Silver lake) 등의 지분도 갖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기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LG화학의 수처리사업부 멤브레인 경영권 인수를 위해 싱가포르투자청과 함께 6000억원 규모의 공동 펀드를 조성했다. 앞서 5월에는 카카오모빌리티에 5800억원을 투자해 지분 40% 이상 인수를 시도했으나 최종 단계에서 무산됐다.
ADIA의 회장 '셰이크 타눈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이하 타눈)은 무함마드 대통령의 다섯째 동생이다. ADQ 회장과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겸임하고 있다. ADIA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 중 하나로 최근 싱가포르 GLP그룹, 미국 피셔 인베스트먼트, 인도 릴라이언스 리테일 등 해외 기업 투자를 진행했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 사례도 있다. 국내 자율주행 벤처기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ADIA와 협력을 체결하고 중동 시장에 진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ADQ 산하 제약사 알쎄라는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 아리바이오와 올해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AR1001 독점 판매권 계약 및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다.
UAE 현지에서는 무함마드 대통령과 만수르 부통령, 타눈 ADIA 회장 등을 '권력 톱3'로 꼽고 있다. 특히 타눈 회장은 최근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UAE의 실질적인 2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국부펀드의 실질적인 권한을 전부 가지고 있어서다. 타눈 회장은 ADIA는 물론, ADQ, MGX 회장직을 동시 겸임하며 국가 주요 투자 및 산업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UAE가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AI, 첨단기술 산업 등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 중인 가운데 타눈 회장이 UAE 미래 경제를 책임지는 중책을 맡고 있다는 평가다. 또한 무함마드 대통령의 국방력 강화 청사진 실현 과정에서 그가 맡고 있는 국가안보보좌관 직책에도 상당한 권한이 부여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랍 지역 역사학자 프라우케 허드베이(Frauke Heard-Bey) 교수는 "알 나흐얀 가문은 단순한 왕실을 넘어 오랜 기간 UAE 지역을 다스려 온 지역 사회의 조정자이다"며 "UAE가 연방 국가로 형성되는 과정에서도 이 가문은 정치적 안정과 국가 통합을 이끌어낸 핵심 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날의 UAE의 경제·외교·안보 전략 역시 이들의 역사적 연속성 위에서 작동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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