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정기국회가 끝까지 정쟁으로 마무리됐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쟁점 법안 강행을 막겠다며 비쟁점 법안까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를 강행하는 ‘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민주당은 ‘민생 인질극’이라며 강 대 강 대응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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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9일 본회의를 열고 62개 안건을 상정했으나 한국장학재단·공급망안정화기금·첨단전략산업기금 채권에 대한 국가 보증 동의안 3개를 제외한 나머지 59개 일반 법률안은 단 한 건도 의결하지 못했다. 2012년 필리버스터 제도가 도입된 이래 법안 수십 건에 대해 필리버스터가 신청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일방적인 입법을 막겠다며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실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내란 전담 재판부법 △법 왜곡죄(판사·검사가 법리를 왜곡해 판결·기소하면 형사처벌하는 제도) 신설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법원 판결도 헌법 소원 대상으로 삼는 제도) 도입 등을 ‘8대 악법’으로 꼽았다. 이 가운데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은 없지만 국민의힘은 위력 행사 차원에서 필리버스터를 강행했다.
이날 처음으로 상정된 법안은 가맹사업법 개정안이었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가맹 점주에게 본사에 대한 단체교섭권을 주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의힘은 가맹사업법에 관해서는 찬성의 입장을 말한다”면서 “민주당이 이렇게 무도하게 의회를 깔고 앉아서 8대 악법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8대 악법을 철회하라는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필리버스터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나 의원은 발언 대부분을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데 할애했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는 의안에 관한 사항만 말해야 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들어 마이크를 끄면서 여야 간에 고성이 오갔다.
일단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 안건당 최소 24시간 토론을 보장하는 현행 국회법에 따라 가맹사업법은 정기국회 중 처리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11일~14일 본회의를 소집할 예정인데 가맹사업법은 11일 자동 상정돼 처리될 예정이다. 민주당은 이때 다른 쟁점법안도 상정할 예정인데 국민의힘은 이때도 필리버스터로 맞설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12월 임시국회에서도 초강경 대치를 예고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의 민생 인질극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국회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여당을 규탄하기로 했다.
다만 필리버스터 요건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여당이 당장 추진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하려면 재적 의원 5분의 3이 찬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조국혁신당 등 소수 정당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혁신당은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려면 재적 의원 5분의 1 이상 재석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소수당의 발언권을 위축시킨다면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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