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분노 미끼(rage bait)'와 '변동불거(變動不居)'. 전자는 영국 옥스퍼드 사전(OED)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이고, 후자는 전국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다. 분노 미끼가 현재 디지털 환경을 설명하는 신조어(新造語)라면, 변동불거는 올해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고전어(古典語)다. 두 표현은 시대 기류를 압축하고 있다. 동·서양의 관점이 다르지만,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감정·질서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분노 미끼의 확산은 오늘의 디지털 생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넷에선 분노를 자극해 관심과 조회수를 끌어내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알고리즘은 그 분노를 반복적으로 증폭시킨다. 특히 현재 온라인 세계는 이성보다는 감정을 기반으로 한 시장(市場)으로 전환되고 있다. 인터넷 공론장은 합리적 토론의 장이라기보다, 감정을 배설하는 하수처리장으로 변모했다. 그중에서도 분노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분노 미끼는 단순한 인터넷 유행을 넘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감정이 어떻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예고하는 경고음이다. 감정은 개인의 것이지만 그 소비 방식은 이제 플랫폼의 경제 논리 속에 편입되고 있다.
변동불거는 <주역(易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구절로 세계의 만물과 질서는 항상 변화하며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격동하는 한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난 1년간 계엄령 선포,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급류처럼 흘러가고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변화는 일상화됐고, 안정은 예외가 됐다. 변동불거가 올해 가장 많은 교수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변화 자체만을 드러낸 게 아니라 그 변화의 속도와 불확실성이 사회 구성원의 심리까지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짚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집단적 균형감각이 필요한 상황이다.
두 표현은 각각 미시·거시적 영역을 다루지만, 시대 진단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분노 미끼가 개인의 감정이 자극과 소비의 논리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라면, 변동불거는 사회 구조 전체가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변화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디지털 속 분노와 정치적 격랑은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감정의 과열과 질서의 동요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룬다. 온라인에서 자극적 분노는 분열을 낳고, 사회 혼란은 다시 분노 기반의 콘텐츠 소비를 부추긴다.
분노 미끼는 역설적으로 감정의 주체성을 회복하라는 권고의 뜻을 담고 있다. 플랫폼이 설계한 구조에 휘둘리는 순간 우리는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소비되는 존재로 전락한다. 변동불거는 변화를 받아들이되 균형 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변화는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변화에 사회 전체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집단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에서 감정 관리와 사회에서 안정 추구는 개별 문제가 아니라 공동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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