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의 핵심으로 꼽히는 ‘유리 기판(Glass Substrate)’ 시장을 둘러싸고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전자 부품 3사 삼성전기, SKC, LG이노텍이 유리 기판 사업의 양산 전환 시점을 2026~2027년으로 잡고 기술 확보와 생산라인 구축, 인력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9일 업계에선 “이르면 1~2년 내 유리 기판 시장이 본격 개화할 것”이라며 “선점 기업이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생태계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 삼성전기, 조직 개편으로 ‘본게임’ 준비
삼성전기는 올해 인사를 통해 유리 기판 관련 조직과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연구개발센터 내 ‘첨단 패키지 기판 개발그룹’의 기능을 확대한 데 이어 패키징 소재 및 공정 연구 인력을 대거 충원하며 시제품 양산 체제를 준비 중이다. 경기도 수원과 부산 사업장을 중심으로 파일럿 라인(시범 생산 라인)을 완비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공정 변수 검증을 마칠 계획이다.
삼성전기가 유리 기판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기존 ABF(애이비에프) 유기 기판의 한계 때문이다. 유리 소재는 열 팽창율이 낮고 표면 평탄도가 높아 미세패턴 회로 구현에 유리하다. 이로 인해 AI 반도체와 고대역 메모리(HBM), 고성능 연산용 칩(칩렛) 패키지에 필수적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가 기판 사업을 넘어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신호”라며 “삼성전자와의 시너지도 본격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SKC, 범용화 전략으로 ‘퀀텀 점프’ 노려
SKC는 계열사 앱솔릭스(Absolics)를 통해 유리 기판 상용화의 첨병 역할을 맡았다. 미국 조지아주에 구축 중인 상업용 생산라인은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하며 이미 주요 글로벌 반도체 고객사와 평가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C는 유리 소재 가공부터 패키징 적용까지 풀 밸류체인(Full Value Chain)을 확보한 점이 강점이다. 최근 단행된 2026년도 정기 인사에서도 유리 기판 조직의 독립성과 연구·영업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졌다.
SKC 관계자는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공정 단가와 수율 경쟁력 확보가 관건”이라며 “글로벌 패키징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시점에 맞춰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앱솔릭스는 반도체용 유리 기판의 두께 50㎛ 이하 미세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한 바 있으며 업계에서는 SKC가 향후 ‘유리 기판 표준화’를 주도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 LG이노텍, 고성능 기판 기술로 추격전
LG이노텍도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본격적인 유리 기판 사업 진입을 선언했다. 기존 반도체 기판 조직을 확대 재편하면서 ‘신소재 기반 차세대 기판 개발팀’을 신설해 연구개발 중심의 전담 조직을 마련했다. LG이노텍이 축적해온 카메라 모듈 및 반도체 패키징용 기판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밀도 회로 구현과 고평탄 글라스 표면 처리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LG이노텍은 향후 고성능 컴퓨팅(HPC)과 AI 연산용 반도체용 유리 기판 적용 기술 확보를 목표로 한다. 업계에서는 “LG이노텍은 애플 등 글로벌 팹리스 고객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제품 신뢰성 평가와 솔루션 제안형 영업에 강점을 가진다”며 “삼성전기·SKC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사업화 속도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 유리 기판, ‘AI 반도체 시대의 배경판’
유리 기판이 차세대 먹거리로 각광받는 이유는 AI 반도체의 진화와 직결돼 있다. 최근 엔비디아와 AMD, 인텔 등 글로벌 칩메이커들이 패키징 미세화를 가속화하면서 기존 유기 기판(PCB)보다 더 높은 전기적 신뢰성·열 안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유리 기판은 미세 배선(1㎛ 이하) 공정이 가능해 신호 지연과 발열을 대폭 줄일 수 있다.
9일 시장조사업체 욜 디벨롭먼트(Yole)는 2028년 유리 기판 시장 규모를 약 20억 달러로 추정하며 “2026년을 기점으로 주요 고객사가 도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시점이 바로 삼성전기, SKC, LG이노텍이 양산을 목표로 두는 시기와 일치해 그 경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현재 삼성전기는 내재화 중심의 기술 고도화, SKC는 글로벌 진출 중심의 양산 투자, LG이노텍은 고부가 제품 특화 전략으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초기 시장인 만큼 대규모 설비 투자와 장기간 기술 검증이 필요한 등 진입 장벽도 높다. 유리 기판 가공은 절단·연마·도금·세정 등 수십 단계의 공정이 필요한데 균열 방지와 수율 유지가 최대 난제로 꼽힌다.
3사 모두 2026년을 양산의 분기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생산라인 구축·고객 평가·시제품 수율 안정화가 이뤄지는 시점이 겹치는 만큼 2026년은 유리 기판 상용화 경쟁의 원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AI 반도체가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진입하는 그 해에 국내 전자 부품 3사 역시 글로벌 패키징 지형을 새로 그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유리 기판은 단순 신소재가 아니라 반도체 패키징 방식 자체를 바꾸는 혁신”이라며 “삼성전기와 SKC, LG이노텍 중 누가 먼저 상용화에 성공하느냐가 ‘포스트-ABF 시대’의 주도권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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