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새 주인이 싱가포르 기반 글로벌 PEF 힐하우스 인베스트먼트로 사실상 굳어지면서, 가격 경쟁을 넘어 절차 공정성과 자본 성격 논란이 복합적으로 불붙고 있다. 힐하우스의 ‘중국 자본’ 논란과 흥국생명의 ‘주관사 약속 뒤집기’ 반발이 맞물리며, 단순 인수전을 넘어 금융시장 신뢰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지스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힐하우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연내 SPA(주식매매계약) 체결을 목표로 세부 조율에 들어갔다. 시장에서는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이 경합하며 국내 SI(전략적 투자자) 중심의 인수전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힐하우스가 약 1조1000억원 수준의 최고가를 제시하며 판세를 뒤집었다.
그러나 공식 발표 직후 흥국생명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이번 매각 절차는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았다”며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흥국생명은 입장문에서 “주주대표와 매각주간사는 본입찰을 앞두고 ‘프로그레시브 딜(재입찰 유도 방식)’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본입찰 이후 힐하우스에 사실상 가격 인상을 제안하며 이를 뒤집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본입찰 27일 만에 힐하우스가 우협으로 선정된 점을 두고 “흥국이 제시한 최고가가 힐하우스 측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의심된다”며 매각주간사의 행위를 “기만적이며 자본시장 신뢰를 훼손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흥국은 법적 대응을 포함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천명했고, 이로써 매각 절차 자체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절차적 문제 제기를 넘어, 이번 매각 과정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향후 금융당국 심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시장에서는 “가격으로 승부가 난 딜이라고 해도, 매각주관사가 약속한 절차를 뒤집었다는 주장 자체가 심리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지스가 국민연금·행정공제회·사학연금 등 공적 자금을 대규모로 위탁받아온 핵심 운용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매각은 특정 기업 간 이해관계 수준을 넘어 국가 금융 인프라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해외 PEF 역전 속…‘중국 자본’ DNA 논란에 시장 불안↑
흥국의 반발과 별개로, 힐하우스의 우협 선정이 발표된 직후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은 해당 사의 중국 기반 성장 이력이었다. 힐하우스는 예일대 기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글로벌 PEF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 초기 텐센트·징둥(JD.com) 등 중국 디지털 플랫폼 생태계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영향력을 키워온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러한 성장 환경 때문에 국내 금융권에서는 힐하우스를 “중국 경제권에서 출발한 자본”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다.
이 같은 인식은 창업자 장레이의 경력과 네트워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중국 허난성 출신인 장레이는 중국 내 투자 생태계에서 성장하던 과정 중 중국 고위층과의 연관 의혹이 해외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일부 외신은 장레이가 특정 중국 고위층 자녀의 해외 유학 과정에 관여했다는 보도를 내놓는 등 논란이 재점화된 사례도 존재한다. 힐하우스는 이러한 의혹에 공식적으로 반박하지 않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여백’ 자체가 잠재적 리스크로 간주된다.
한국이 중국계 자본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지정학·경제 구조상 이유가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부동산과 금융은 경제의 핵심 기반이며, 중국계 자본이 이들 분야에서 직접적인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갖게 될 경우 국내 시장 안정성과 정책 운용에 잠재적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공적 자금이 운용되는 이지스의 경우 그러한 경계심은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고비…절차적 논란 겹쳐 불확실성 확대
흥국생명의 절차적 문제 제기와 힐하우스를 둘러싼 중국계 자본 논란은 결과적으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가격 우위를 바탕으로 한 인수가 순조롭게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거래의 실질적 향방이 심사 과정에서 갈릴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자금 출처와 재무 건전성뿐만 아니라 지배구조 투명성, 최종 의사결정자의 실질적 영향력, 국가안보 및 금융질서 안정성, 공적 자금 운용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 등 다층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겉으로 싱가포르 법인 구조를 갖춘 글로벌 PEF라고 해도, 창업자 기반과 자본 형성 배경, 해외 언론 보도 등 정성적 검증 요소에서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 예단하기 어렵다.
여기에 흥국생명이 제기한 절차적 불공정 논란은 금융당국이 ‘거래 과정 자체의 투명성’까지 들여다보게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심사 결과는 조건 없는 승인부터 조건부 승인, 구조조정 요구, 심사 지연, 그리고 최악의 경우 불승인까지 폭넓은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한 금융정책 전문가는 “힐하우스의 외형은 글로벌 PEF에 가깝지만, 성장 과정과 시장 인식은 중국 경제권의 영향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평가가 꾸준히 있어왔다”며 “여기에 흥국생명이 제기한 절차적 신뢰 훼손 요인까지 더해지면 금융당국의 심사 강도는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시장 관계자는 “이번 우협 선정은 매각 절차의 1단계일 뿐이며, 거래의 실질적 성패는 금융당국의 판단에 달려 있다”며 “승인 여부뿐 아니라 어떤 조건이 붙느냐에 따라 이지스의 경영 전략뿐 아니라 국내 대체투자 시장 구조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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