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 더봄] 존재가 먼저일까, 행동이 먼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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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더봄] 존재가 먼저일까, 행동이 먼저일까?

여성경제신문 2025-12-09 10:00:00 신고

팀이 가진 역량을 숫자 100이라고 가정해 보자. 어떤 리더는 이 숫자를 50 이하로 떨어뜨린다. 구성원의 기를 꺾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마이너스 리더(Diminisher)다. 어떤 리더는 정확히 100만큼의 결과만 낸다.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관리형 리더(Maintainer)다.

하지만 어떤 리더는 100을 200으로, 때로는 1000으로 폭발시킨다. 구성원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을 깨우는 증폭형 리더(Multiplier)다. 무엇이 이토록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드는가? 그 비밀은 리더의 시선에 달려 있다.

리더가 구성원을 바라볼 때 무엇을 먼저 보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자신의 기준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잘못된 점을 기어이 찾아내는 리더가 있다. 이들은 끊임없는 지적(指摘)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오류를 잡아내는 것이 곧 리더의 역할이라 착각한다.

반면, 겉으로 드러난 표면 너머를 응시하는 리더가 있다. 남들은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잠재력을 지목(指目)하여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리더다.

어떤 리더는 100을 200으로, 때로는 1000으로 폭발시킨다. 구성원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을 깨우는 증폭형 리더(Multiplier)다. /나노바나나
어떤 리더는 100을 200으로, 때로는 1000으로 폭발시킨다. 구성원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을 깨우는 증폭형 리더(Multiplier)다. /나노바나나

최근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의 주인공 김낙수 부장을 떠올려 보자. 그는 직원들 등 뒤에 서서 모니터를 감시하며 폰트 크기나 줄 간격 같은 사소한 실수를 집요하게 찾아낸다.

물론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다소 과장된 캐릭터이긴 하다. 현장에는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훌륭한 부장들이 훨씬 더 많기에, 미디어가 그려내는 '꼰대 리더'의 전형적인 모습이 다소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김 부장의 모습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자신의 우월한 기준을 증명하기 위해 쏟아내는 사소한 '지적'들이, 결국 구성원을 수동적인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고 만다는 사실이다.

반면, 가능성을 지목하는 리더는 다르다. 직장인들의 교과서라 불리는 드라마 <미생> 의 오상식 차장이 보여준 리더십이 좋은 예다. 고졸 낙하산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회사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던 장그래에게, 오 차장은 다른 팀 상사와 다투며 이렇게 소리친다. "우리 애라고!"

그 순간 장그래는 단순한 계약직 사원이 아니라 '오상식의 사람', '영업 3팀의 일원'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리더가 그의 표면(스펙 부족)이 아닌 본질(동료애)을 꿰뚫어 보고 그를 ‘지목’한 순간, 위축되어 있던 미운 오리 새끼는 비로소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제4부 ‘리더가 돼라’에 소개된 7번째 원칙, "상대방에게 훌륭한 평판을 부여하라(Give the other person a fine reputation to live up to)"는 바로 이 '지목하는 리더'가 해야 할 행동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지적하는 리더가 과거의 실수를 들춰낸다면, 지목하는 리더는 상대가 감당해야 할 훌륭한 평판을 미리 부여함으로써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로 소환한다. 

존재가 먼저일까? 행동이 먼저일까?

사람이 변해서 행동이 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사람이 변하는 것인가? 마크 트웨인의 명작 소설 <왕자와 거지> 는 이 질문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단서를 던진다. 소설 속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 쌍둥이처럼 닮은 왕세자 에드워드와 빈민가 소년 톰은 장난삼아 옷을 바꿔 입었다가 운명이 뒤바뀐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이 변해서 행동이 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사람이 변하는 것인가? 마크 트웨인의 명작 소설 <왕자와 거지>는 이 질문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단서를 던진다. /나노바나나
사람이 변해서 행동이 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사람이 변하는 것인가? 마크 트웨인의 명작 소설 <왕자와 거지> 는 이 질문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단서를 던진다. /나노바나나

진짜 왕자, 에드워드는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나 누더기를 걸치고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심지어 거지들에게 조롱과 매질을 당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환경에 굴복하여 비굴해질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달랐다.

그는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도 결코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왕자의 언어로 호통치며 기품을 잃지 않았다. 왜일까? 비록 겉모습은 거지였을지언정,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정체성(Being)은 여전히 ‘존귀한 왕자’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기에, 그는 거지 옷을 입고도 왕자답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정체성은 환경을 뛰어넘어 행동을 지배한다. 물론 왕자의 옷을 입은 거지 톰이 사람들의 대우를 받으며 점차 왕자처럼 변해갔듯, 행동과 환경이 정체성을 만들기도 한다. 이 둘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하지만 타인의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리더의 입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단순히 상벌(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구성원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증폭형 리더가 될 수 없다. 진정한 변화의 시작점은 행동 이전에 정체성에 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의 구절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법이다.

데일 카네기의 원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잔소리로 행동을 교정하려 들지 않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멋진 이름을 먼저 불러줌으로써 정체성의 뿌리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일치를 견디지 못한다

심리학의 거장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정립한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은 카네기 원칙의 작동 원리를 강력하게 설명한다. 이 이론의 핵심은 인간은 자신의 신념(Belief)과 행동(Behavior)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극심한 심리적 고통(부조화)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이러한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둘 중 하나를 변화시키려 한다.

예를 들어보자. 평소 자신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이 상황에 떠밀려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고 치자. 이때 그의 내면에서는 "나는 정직하다(신념)"와 "나는 거짓말을 했다(행동)"는 두 가지 사실이 충돌하며 불쾌한 긴장감이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은 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의의 거짓말이었어"라며 신념을 합리화하거나, 다음부터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행동을 수정한다.

카네기의 원칙은 바로 이 메커니즘을 리더십에 활용하는 것이다. 리더가 부하 직원에게 "자네는 우리 팀의 신뢰 아이콘이야. 나는 자네의 정직함을 믿네"라고 선언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중요한 것은 직원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리더와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상태에서 만약 직원이 요령을 피우거나 실수를 숨기려 한다면, 그는 즉시 강렬한 인지 부조화에 빠지게 된다. '리더가 믿어주는 신뢰의 아이콘인 나'와 '요령을 피우는 나'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이 내적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일까? 리더의 기대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자신의 행동을 '신뢰의 아이콘'이라는 평판에 걸맞게 수정하여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즉, 훌륭한 평판은 직원에게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그 기준에 도달하도록 등을 떠미는 강력한 '심리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상대가 보는 나를, 나라고 믿는다

사회학자 찰스 쿨리(Charles Cooley)의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 이론 역시 카네기 원칙이 작동하는 원리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인간의 자아 정체성은 무인도에서 홀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인식하며 자아를 만들어간다.

이론에 따르면 자아 형성은 3단계를 거친다. 첫째,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상상하고, 둘째, 그 모습에 대해 타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상상하며, 셋째, 그에 따른 자부심이나 굴욕감을 느끼는 과정이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 타인이 똑같은 영향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이라고 부른다. 부모, 선생님, 그리고 직장인에게는 인사권을 가진 상사나 존경하는 리더가 바로 이 중요한 타인이다.

만약 나에게 가장 중요한 타인인 리더가 나를 볼 때마다 ‘자네는 잠재력이 넘치는 차세대 리더야’라는 눈빛으로 대한다면 어떨까? 직원은 그 거울(리더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면화(Internalization)하기 시작한다. "저렇게 훌륭한 분이 나를 그렇게 인정한다면, 내 안에 진짜 그런 모습이 있는 게 아닐까?"

처음에는 그저 리더의 기대였을 뿐이지만, 상호작용이 반복될수록 그것은 직원의 진짜 정체성으로 굳어진다. 이것이 바로 리더가 던지는 지목의 힘이다. 좋은 리더는 직원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가장 깨끗하고 멋진 거울을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말썽꾸러기 토미를 바꾼 한마디

잠시 시곗바늘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보자. 누구나 크고 작은 말썽을 피워 어른들의 속을 썩였던 기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실수투성이였던 시절 나조차 나를 한심해할 때 “너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믿어주었던 부모님, 혹은 나의 치기 어린 반항을 “에너지가 넘치는구나”라며 감싸주었던 은사님이 계셨기 때문은 아닐까?

카네기의 책에 소개된 브루클린의 4학년 담임, 루스 홉킨스 선생님의 이야기가 유독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바로 이런 공통된 추억의 힘 때문이다. 새 학기, 그녀의 반에는 전교생이 다 아는 악명 높은 말썽꾸러기 토미가 배정되었다.

보통의 교사라면 토미의 과거 행적을 지적하며 "내 반에서는 얌전히 있으라"고 엄포부터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루스 선생님은 학생들과 처음 인사하는 날,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칭찬하다가 토미의 차례가 되자 눈을 맞추고 이렇게 말했다.

“토미, 내가 듣기로 너는 타고난 리더라더구나. 금년에 우리 학교 4학년 학급 중에서 우리 반을 최고로 만드는 데 네가 도와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선생님은 토미를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타고난 리더’라고 지목했다. 그 순간 토미의 내면에서는 강력한 인지 부조화와 거울 자아 효과가 동시에 작동했을 것이다. “선생님이 나를 리더라고 믿고 계셔. 나는 이제 더 이상 말썽꾸러기가 아니야.”

선생님은 며칠 뒤 그에게 진짜 리더다운 과제를 맡기며 그 평판을 강화했고, 토미는 그 기대에 부응하여 모범적인 학생으로 변모했다. 루스 선생님이 토미에게 보여준 것은 단순한 교육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었을 때 발휘되는 기적 같은 변화의 힘이었다.

만약 나에게 가장 중요한 타인인 리더가 나를 볼 때마다 ‘자네는 잠재력이 넘치는 차세대 리더야’라는 눈빛으로 대한다면 어떨까? 직원은 그 거울(리더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면화(Internalization)하기 시작한다. /copilot
만약 나에게 가장 중요한 타인인 리더가 나를 볼 때마다 ‘자네는 잠재력이 넘치는 차세대 리더야’라는 눈빛으로 대한다면 어떨까? 직원은 그 거울(리더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내면화(Internalization)하기 시작한다. /copilot

과학의 눈으로 발견하고, 애정의 눈으로 지목하라

그렇다면 현실의 리더들은 이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당장 내일 출근하여 팀원에게 "너는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뜬금없이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성 있는 지목(指目)을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이름을 찾아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검증된 심리 진단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다. 갤럽의 강점 검사(CliftonStrengths)나 VIA 성격 강점 검사, 혹은 대중적인 MBTI도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 검사들은 우리가 무심코 단점이라 여겼던 기질을 강점의 언어로 번역해 준다.

가령, 행동이 느리고 답답해 보이는 직원을 보자. 리더가 이를 "굼뜨다"고 지적하면 그는 무능한 직원이 된다. 하지만 강점 진단을 통해 그가 '심사숙고(Deliberative)' 테마나 '분석형' 기질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면, 리더는 그에게 새로운 평판을 부여할 수 있다.

"자네는 남들이 놓치는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하는 탁월한 신중함을 가졌어. 우리 프로젝트의 안전판 역할은 자네가 맡아주게." 이처럼 심리 검사는 막연한 칭찬이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강점으로 명명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하지만 도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리더의 관심과 관찰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라고 했다. 사람을 이끄는 리더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팀원의 눈빛이 언제 반짝이는지, 그가 어떤 업무를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는지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숨겨진 잠재력은 오직 관심 있는 리더의 눈에만 포착되는 법이다.

구성원의 부족한 면을 찾아내어 날카롭게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수리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의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찾아내어 훌륭한 이름으로 지목해 주는 건축가가 될 것인가? 사람은 자신이 믿는 대로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의 기대대로 성장한다. 당신의 팀원들은 지금, 당신이 불러줄 그 이름을 기다리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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