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경호 변호사 페이스북
김경호 변호사는 "한국 사회는 지금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소한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이상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일갈했다.
며칠 사이 배우 조진웅의 오래된 과거사가 들춰지며 뉴스의 상단을 차지했다. 지금의 삶에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는, 성장 과정의 굴곡 정도에 불과한 일을 두고 언론은 마치 국가적 관심사라도 된 듯 소란을 벌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중은 또다시 누군가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값싼 관음증의 소비자로 동원된다.
그러나 진짜 묻고 검증해야 할 과거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대한민국 사법부의 정점에 서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젊은 시절이다.
1989년의 ‘인노회’ 사건은 지금도 선명한 질문을 남긴다. 당시 백영엽 판사가 “이적단체가 아닌 노동운동 단체”라며 기각했던 영장을, 검찰은 다시 청구했고 마침 당직이던 조희대 판사는 5명 전원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의 서명 하나로 누군가는 갇혔고,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리고 35년이 흐른 2024년 3월, 그들은 재심에서 완전한 무죄를 선고받았다. 너무 늦었고, 너무 무거운 시간이 지나갔다.
이 사건을 두고 단순한 법리 판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시 권력의 공기를 그대로 삼킨 사법 결정은 아니었을까.
피해자들이 평생 감당해야 했던 낙인과 상처 앞에서, 그 판단을 가벼운 ‘실수’로 분류하는 것은 폭력에 또 다른 폭력을 더하는 일이다. 이는 사법의 이름을 빌린 국가 권력의 오남용이었고, 법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사법부 내부의 굴종이었다.
그럼에도 묘하게도 우리 언론은 배우의 과거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도, 사법부 수뇌부의 과거 판결은 거의 묻지 않는다. 대중이 쉽게 소비하는 가십에는 적극적인데, 구조적 책임을 겨냥해야 할 때는 침묵한다.
하지만 판사의 과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가 어떤 시대 인식을 가졌고, 어떤 방식으로 권력과 거리를 조정했는지를 보여주는 법 철학의 궤적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대한민국의 판결에 어떤 관점이 투영될지 예고하는 중요한 단서다.
사법 시스템이 신뢰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던 자가 사법부의 꼭대기에 앉아 있을 때 시민은 법원을 신뢰하기 어렵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 판단 뒤에 숨어 있던 책임을 시민이 대신 묻지 않는다면, 사법은 언제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배우의 과거는 가십이지만, 대법원장의 과거는 역사다. 35년 만의 무죄 앞에서, 그때 발부된 영장이 가져온 상처와 책임은 지금도 유효하다. 정의의 유통기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 또한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질문해야 한다. 그때 왜 그랬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책임지려 하는지.
그 질문을 던지는 일이야말로 이 사회가 정의를 유지하는 가장 최소한의 방식일 것이다.
2025년 12월 6일
김경호 변호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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