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충실의무'와 '성공보수'의 경계는?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에서 열린 법무법인 바른과 효성가 둘째인 조현문(56) 전 효성중공업 부사장(미 뉴욕주 변호사·법무법인 현 대표) 간의 약 43억 원 규모 약정금 소송 변론은 단순한 금전 분쟁을 넘어 한국 대형 로펌의 '업무 윤리'와 '보수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시험대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원고인 바른 측은 조현문 전 부사장의 "상상하기 어려운 배신적 행위와 원고에 대한 폄훼·비난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 소송에 임했다"며 위임 관계 신뢰 파탄을 주장했다. 이에 맞선 피고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바른이 의뢰인의 이익을 본질적으로 침해했다"며 로펌 측이 자신의 이익을 후순위로 밀어냈다는 정면 반박을 제기했다. 이처럼 감정적 대립이 최고조에 달한 법정 공방은, 수십 년간 지속된 효성가 상속 분쟁의 마지막 법적 잔해이자, 변호사 보수 산정의 투명성을 가늠할 주요 선례가 될 전망이다.
성공 보수의 허와 실: 859억 원 상속과 공익 출연의 딜레마
이 사건의 근본적인 복잡성은 고 조석래 명예회장의 유산 상속 과정에서 발생한 법률 자문 업무의 '성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바른이 약정금 청구의 근거로 내세우는 핵심 성과는 조현문 전 부사장이 부친의 유언에 따라 859억 원 규모의 효성 계열사 지분을 상속받은 사실이다. 이는 형식적으로 대규모 경제적 이익이 의뢰인에게 귀속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상속받은 지분 전액을 100% 공익재단인 단빛재단에 출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공동 상속인들의 동의를 얻어 상속 절차를 마무리했다. 공익법인 설립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상속세 절감 요건과 연결되는 특수성을 가진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상속재산을 개인의 순자산 증가가 아닌 사회 환원에 사용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특수한 상황이 법원의 보수 감액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한다. 대법원 판례는 변호사 보수를 산정할 때 단순히 다룬 재산의 규모를 넘어 '의뢰인이 실제로 얻은 경제적 이익'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재산이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고 공익재단 출연으로 이어진 경우, 바른이 주장하는 성공 보수 43억 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부당하게 과다한' 보수로 판단되어 대폭 감액될 가능성이 크다.
'시간제 보수'의 투명성 논란: 누가, 무엇을 했나
바른 측은 약정금 청구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누가, 어떤 업무를 했는지 일자별로 기록된 시간제 보수(Time Charge) 내역을 법원에 제출했다. 바른 측은 "18명의 변호사가 1,414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며 성실한 업무 수행을 강조했다.
그러나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이 시간제 보수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원고가 낸 타임 차지 자료는 누가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 불분명하게 기재되어 있는 데다 의뢰인 의사에 반해 변호사가 추가되었고, 심지어 계산 오류까지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앞선 과거 변론에서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회의 4시간", "서면 작성 4시간"처럼 업무의 실질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기록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로펌이 주로 사용하는 시간제 보수 방식이 실질적인 업무 효율성과 의뢰인 이익 기여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법원에서 엄격한 심사를 피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특히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이 "바른은 양식 제공 수준의 업무를 한 것에 불과하고, 공익재단 설립은 다른 법무법인이 진행했다"고 주장한 만큼, 바른이 청구한 보수 43억 원에 대한 실질적 기여도 입증이 최대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충실 의무 위반 의혹: 대형 로펌의 윤리적 책임
금전적 쟁점을 넘어 이 사건의 가장 첨예한 대립각은 변호사의 '충실 의무(Duty of Loyalty)' 위반 여부다.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바른이 의뢰인의 이익을 본질적으로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바른이 위임 계약의 본질적 우선순위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의 위임 목표는 계열 분리, 형사 문제 해결, 그리고 공익재단 설립 순이었다. 그러나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바른이 "의뢰인의 이익에 반해 성공보수를 확보하기 용이한 재단 설립을 우선으로 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바른이 상속 문제로 갈등을 겪던 친형 조현준 회장 측(법무법인 화우 대리)이 제시한 합의서를 그대로 수용하도록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는 등 변호사의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은 바른이 "효성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자고 압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국내 대형 로펌들이 효성그룹과의 이해충돌 문제로 사건 수임을 거절하는 상황을 바른이 이용해 우월적 지위에서 부당한 요구를 했다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변호사는 전문적인 지식에 기초해 성실하게 의뢰인의 권리를 옹호해야 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지닌다. 만약 바른이 로펌의 이익을 우선하거나 상대방에 유리한 합의를 종용했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는 단순한 계약 불이행을 넘어 변호사법이 금지하는 '실질적 이해 충돌'에 해당할 수 있으며, 바른의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
징계 진정과 증거 확보: 법정 밖의 압력
조현문 전 부사장이 법무법인 YK에 법률 대리를 맡긴 후, 바른을 상대로 대한변호사협회에 품위유지 위배, 성실 위배, 비밀유지 의무 위배 등을 이유로 징계 진정서를 제출한 것은 이 분쟁의 압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바른 측이 법정에서 "대형 로펌인 원고가 분쟁에 노출되는 상황을 꺼릴 것으로 판단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언급한 것은, 조현문 전 부사장 측의 윤리적 공방 제기가 실제적인 평판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변론에서 재판부가 내린 결정 역시 핵심 증거 확보에 초점이 맞춰졌다. 재판부는 바른 측에 자료 추가 제출을, 조현문 전 부사장 측에는 고 조석래 명예회장 유언 집행 관련 업무 내역과 '회의록' 등에 대한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라고 요청했다.
특히 '회의록'은 바른 측 변호사들이 조현문 전 부사장에게 합의를 압박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핵심적인 증거가 될 전망이다. 이 문서들이 공개될 경우, 조현문 전 부사장의 충실 의무 위반 주장의 진위와 바른의 업무 태도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재판부가 양측의 증거 확보를 위해 변론을 2026년 3월 27일로 장기 속행한 것은 이 사건이 단순 계약 해석을 넘어 변호사 직업 윤리 문제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중점을 둘 것임을 예고한다.
이번 소송은 결국 로펌의 성공 보수 청구권이 투입된 '시간'이 아니라 의뢰인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된 '이익'과 변호사가 보여준 '충실한 윤리'를 기준으로 삼아 재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줄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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