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략산업 육성을 목표로 한 국민성장펀드가 오는 10일 공식 출범한다. 이는 향후 5년간 150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정부·정책금융이 선위험을 부담하고 민간이 후순위로 참여하는 구조를 갖춘 만큼 기존 정책성 펀드보다 영향력이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증권 김재승 연구원이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펀드의 기대효과, 과거 정책성 펀드의 흐름, 장기 성과의 조건을 짚었다. 그는 정책이 단기 유동성은 자극할 수 있으나 장기 주가는 산업의 성장성과 실적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 150조 국민성장펀드 가동...첫 투자 업종에 쏠린 기대
국민성장펀드는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이 선위험을 부담하고 민간이 후순위로 참여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총 150조원 중 75조원은 정부보증기반 기금채 발행과 산업은행 출연으로 마련되며, 나머지 75조원은 금융권·연기금·특수은행·일반 국민 공모 등 민간 자금으로 채워진다. 김 연구원은 "정책금융이 위험을 먼저 떠안는 만큼 민간 자금의 참여 유인이 높아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기존 정책 펀드가 단기·개별 산업 지원에 머물렀던 반면, 국민성장펀드는 지분투자·인프라·융자·초저리대출·간접투자까지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으로 설계돼 산업 생태계를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운영 체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은행 내 사무국이 프로젝트 접수·예비검토·자금 집행·사후관리를 총괄하고, 민간 전문가 9인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심의회가 투자 적정성을 최종 판단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포함된 전략위원회는 정책 방향을 조언하며, 범부처 지원단은 부처 간 조율을 맡는다.
시장 관심은 10일 발표될 1호 투자 프로젝트에 집중되고 있다. AI·반도체·바이오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첫 투자 업종은 향후 자금 흐름을 결정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정책 이슈가 단기 수급과 심리에 큰 영향을 주는 우리 증시 특성상 관련 업종의 투자심리 개선도 예상된다. 김 연구원은 이에 대해 "국민성장펀드의 1호 투자는 상징성과 유동성 유입 기대감 때문에 시장 심리에 즉각적인 긍정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시대별 정책성 펀드, 반복되는 탄생과 한계
김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정책성 펀드가 한국 경제정책의 전환기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해왔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후반 녹색성장 정책과 함께 녹색 펀드가 조성됐고, 한반도 정세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던 시기에는 통일 펀드가 잇따라 출시됐다. 이후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한 코스닥 벤처펀드, 일본 수출규제 국면의 소부장 펀드, 디지털·그린 뉴딜 정책 아래 등장한 뉴딜 펀드까지 정책과 금융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 같은 펀드들은 초기에는 정책 이슈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며 빠르게 자금이 모였고 관련 업종의 주가 강세로 이어졌지만 장기성과는 산업별 여건에 따라 크게 갈렸다. 녹색 펀드는 3개월간 코스피를 아웃퍼폼했지만 산업 경쟁력이 받쳐주지 못해 수익률이 둔화됐고, 통일 펀드는 남북 관계 경색 이후 급속히 약화됐다. 뉴딜 펀드 역시 수익률 부진으로 관심이 빠르게 식었다. 반면 코스닥 벤처펀드와 소부장 펀드는 정책과 산업 수요가 맞물리며 장기간 성과를 이어갔다.
김 연구원은 "이러한 사례들이 장기성과를 결정짓는 힘은 결국 산업의 구조적 성장성과 기업 실적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하며 "정책이 초기 모멘텀을 만들 수는 있지만 산업 경쟁력이 부족하면 지속 가능한 투자처로 자리 잡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정책 모멘텀은 단기 호재지만, 장기 주가는 실적이 결정
정책성 펀드는 대체로 출범 초기 강한 주가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정책 기대감이 투자 수요를 자극하고, 대규모 펀드 조성 자체가 시장 유동성을 단기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녹색 펀드는 출시 직후 약 3개월간 코스피를 큰 폭으로 상회했고, 통일 펀드 역시 정세 개선 기대가 유지될 때까지 자금 유입과 성과가 긍정적으로 이어졌다. 소부장 펀드는 정책 대응과 산업 성장세가 맞물리며 비교적 장기간 성과를 냈다. 반면 뉴딜 펀드는 초기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산업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수익률이 빠르게 둔화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국민성장펀드에도 동일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150조원이라는 규모는 단기적으로 정책 모멘텀과 유동성을 크게 자극할 수 있고, 첫 투자 발표가 AI·반도체 등 인기 업종으로 향할 경우 수급 개선과 심리 반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올해 강세를 기록한 반도체·조선·기계·방산·화장품 업종 역시 정책이 아니라 수출과 실적 개선이 주가를 이끌었다는 점을 설명하며 "정책이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불씨' 역할은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힘은 산업이 성장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수출과 실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리뉴스 권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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