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초강경 대책에도 사망 사고가 줄지 않자 "규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현장의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현행 산업안전 정책의 방향성 자체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올해 9월,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가 서울 신축 공사 현장을 찾아 합동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용노동부의 2025년 3분기 누적 산재사고 잠정 통계에 따르면 사망자는 45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명 늘었다. 사고 건수 역시 411건에서 440건으로 증가했으며, 특히 건설업에서만 210명이 목숨을 잃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정부는 매년 3명 이상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반복 위반 땐 건설사 등록을 말소하는 등의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제 현장의 사망률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지났음에도 추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산재 사망자는 2023년 2016명에서 지난해 2098명으로 증가했고, 건설업 사고가 전체의 약 40%를 차지했다. 공공기관에서도 수십건의 중대재해가 보고됐다.
대형 건설사들은 법 시행 이후 안전 조직 확대와 예산 증액 등 대응을 강화해 왔지만, 숙련 인력 부족과 고령·외국인 근로자 증가,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같은 구조적 요인이 여전히 사고를 부추긴다고 말한다. 안전 설비에 투자해도 작업자가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예방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도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과도한 '처벌 중심'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산업재해 발생 시 CEO 개인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현행법상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는 최대 7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지만, 미국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형에 그친다. 일본과 독일 등도 처벌 수위가 대체로 1~3년 내외로 한국보다 훨씬 낮다.
반복적인 사망사고 사업주에 대한 가중처벌도 한국과 미국만 운영하고 있으며, 이 역시 한국이 훨씬 강력한 수준이다. 또한 선진국이 원·하청의 책임을 구분해 분담시키는 것과 달리, 한국은 하청 노동자의 안전관리 책임을 원청이 전적으로 지게 해 부담이 집중된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자 수와 사고사망 만인율 추이. © 고용노동부
실제 노동부의 감독 결과,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적발되는 위반 사례는 보호구 미착용, 위험작업 시 작업중지권 미행사, 안전수칙을 무시한 공정 단축 등이 반복된다. 안전관리가 '기업의 의무'로만 작동하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수칙 준수 의무가 함께 작동하지 않다 보니 사고 예방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외 사례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싱가포르는 2004년 니콜고속도로 사고 이후 안전정책의 무게 중심을 '사후 처벌'에서 '사전 예방'으로 이동시켰다.
노동자에게도 안전수칙 준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이나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동시에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안전성과를 개선하면 정부가 포상하는 '안전성과 보상제도'를 운영하며 예방 중심 정책을 강화했다.
영국과 호주 역시 기업과 노동자를 법적 책임 주체로 명확히 규정하고, 처벌과 더불어 교육·참여 프로그램·인센티브를 결합해 사고 감소 효과를 끌어냈다.
업계에서는 한국도 이제 처벌 일변도에서 벗어나 설계·시공·관리 전 과정에서 안전을 시스템화하고, 숙련 인력을 양성하며, 인센티브와 지원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 강화만으로는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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