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청탁과 함께 금품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통일교 2인자'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더불어민주당 정치인 15명에게 금전적 지원을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이미 지난 8월 민중기 특별검사팀에 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2022년 국민의힘 시도당 및 당협위원장 20명에게 통일교 자금 1억4400만 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로 기소된 윤영호 전 본부장은 지난 8월 민중기특검 조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수천 만 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지난 8월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금품 수수 수사가 본격화된 시기다. 국회에서 9월 체포동의안이 표결되기 직전까지 당사와 의원실 압수수색 등 국민의힘을 향한 전방위적 수사를 이어간 특검팀은 녹취를 통해 증거가 확보됐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금품 수수 의혹은 수사하지 않아 '선택적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의힘은 민중기특검을 향해 편파 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전면 재수사'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필요하다면 경위를 확인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만일 특검팀이 특정 정당 정치인에 대한 범죄 단서를 잡고도 수사하지 않았다면 특검법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과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어 수사의 공정성을 두고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영호 전 본부장 "2022 대선 때 양쪽에 자금 댔다" 진술
녹취록서 여권인사 거론…특검, 진술 확보하고도 수사 안 해
윤영호 전 본부장은 지난 5일 자신의 '업무상 횡령 등 혐의' 사건 공판에서 20대 대선 전인 2022년 2월 교단 행사인 '한반도 평화서밋'을 앞두고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해당 재판에서 윤 전 본부장이 2022년 1~2월 통일교 핵심 인사 이 모 씨와 3차례 통화한 녹음 파일을 푼 녹취록을 '정치자금법 위반'의 증거로 제출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녹음 파일은 총 43분 21초 분량이다.
특검이 제출한 녹취록에는 통일교가 2022년 2월 개최한 '한반도 평화서밋' 행사에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참석을 이끌어내기 위해 양쪽 핵심 인사들과 접촉하거나 접촉을 시도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담겼다.
윤 전 본부장과 이 모 씨는 통화에서 이미 접촉했거나 향후 접촉할 대상으로 양쪽 인사 10여 명씩 실명을 거론했고, 후원회장을 통해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 실제 '한반도 평화서밋' 행사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만 참석했으며 통일교는 대선 막바지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본부장은 법정에서 "권성동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했다. 한쪽에 치우쳤던 게 아니고 양쪽 모두 어프로치(접근)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7∼2021년에는 국민의힘보다 민주당과 가까웠다. 현 정부의 장관급 네 분에게 어프로치 했고, 이 중 두 분은 (한학자) 총재에게도 왔다 갔다"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윤 전 본부장은 이런 사실을 모두 지난 8월 특검팀과 면담하며 털어놓았으며 수사 보고서에도 적혔다고 주장하며 "특검에 국회의원 리스트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윤 전 본부장에 따르면 지난 이미 8월 특검 면담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전·현직 국회의원 2명에게 각 수천 만 원씩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통일교 내에서 정치후원금, 출판기념회 책 구매 등의 방식으로 지원한 민주당 정치인이 15명에 달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8월 특검 면담 당시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 의원 2명에게 수천 만 원을 줬다. 이들이 통일교 천정궁을 방문해 한학자 총재를 만나고 갔다"는 취지로 말했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민주당 영남권 중진, 다른 한 명은 전직 의원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직 의원에게 2018~2019년 사이 현금 4000만원과 1000만원 상당의 시계를, 전직 의원에게는 2020년 3000만원을 건넸다고 특검팀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윤 전 본부장의 민주당 후보 후원이 국민의힘 사례처럼 교단 차원의 조직적인 행동인지 불분명해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與조승래 "필요하다면 경위 확인하겠다" 말 아껴
민주당은 통일교 후원 파장이 확대될 수도 있는 만큼 정확한 진상 파악 전까지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조승래 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 7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당 소속의 전·현직 의원들이 통일교 측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전날 보도를 접해서 필요한 경우 경위가 어떤지 파악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사무총장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민주당 전현직 의원 2명에게 금품 수천만 원어치를 건넸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다만 그는 "특검이 불법적 요소를 확인하면 인지된 내용은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하게 돼 있다"며 "그 부분은 특검 측에 언론이 확인할 사항"이라고 말을 아꼈다.
민주당 "개인 후원은 합법, 국힘 조직적 동원과 달라"
민주당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정치공세로 '책임 회피'를 하고 있다는 반격도 나왔다.
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6일 서면 브리핑에서 "국민의힘처럼 조직적 동원에 따른 불법 후원은 전혀 아니었기에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것"이라며 "이는 법과 증거에 따른 판단이지 정치적 고려나 편파 수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치자금법 제31조는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있다. 제45조는 법인·단체 자금 수수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민주당은 통일교 인사의 '개인적' 후원은 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 대변인은 "김건희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지구장들에게 자금을 내려 보내고, 이를 다시 국민의힘 시·도당과 당협위원장들에게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전달한 조직적 범죄 구조를 확인해 기소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판단의 전제는 외면한 채 '선택적 수사', '정치 특검'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며 책임을 회피하려 들고 있다"며 "자신들의 잘못에는 입을 닫고, 특검에는 목소리를 높이는 태도는 국민의힘이 '내란당'이라는 비판을 받는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특검의 수사 대상과 범위는 오직 법과 증거가 정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책임 회피용 정치 공세를 멈추고, 법의 판단 앞에 겸허히 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힘 "여당무죄·야당무죄…與 전용 특검" 비판
국민의힘은 "말만 하지 말고 수사를 통해 입증하라"고 압박하며 특검을 향해서도 "민주당 전용 특검"이라고 날을 세웠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중기 특검은 통일교가 민주당 의원 2명에게 수천 만 원 금품을 제공하고 15명이 금품 수수에 연루됐다는 구체적 진술이 있는데도 이를 수사하지 않고 덮었다"며 "이것이 노골적 선택적 수사이고, 야당 탄압 정치적 수사라는 걸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 원내대표는 "진술이 나왔으면 수사해야 한다. 특검법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범죄행위는 수사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며 "야당은 범죄혐의가 작더라도 인지되면 무조건 수사로 파헤치고, 여당은 범죄혐의가 아무리 크고 인지해도 수사조차 하지 않고 묻어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혹에 대해 재수사하지 않으면 훗날 민중기 특검을 수사 대상으로 한 특검을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수사가 진행돼야 할 사안이다. (합법이라고)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고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8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만든 '정치 특검'이자 '민주당 하명 특검'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다"며 "민주당의 죄는 덮고, 국민의힘은 탈탈 털겠다는 더러운 속내가 여과 없이 까발려졌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사실상 통일교 해산 검토를 지시했다"면서 "정교분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속내는 민주당이 받은 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증거 차단용 지시'라는 강한 의심마저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대통령에게 민중기 특검의 즉각 해산을 강력히 요구한다. 왜 민중기 특검이 민주당 관련 의혹만 철저히 배제했는지 진실을 끝까지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야당우죄·여당무죄식 선택적 기소"라며 "이 정도면 사실상 민주당 전용 특검"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에 준 후원은 합법이고, 국민의힘에 준 건 불법인가"라며 "통일교 후원 내역을 '수사범위 밖'이라며 특정 정당 편에서 수사했다. 특검을 위한 특검이 필요할 판"이라며 민중기 특검을 겨냥했다.
주진우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통일교라는 자금 출처, 금품 전달자, 공여한 목적은 모두 동일했다. 금품을 받았다는 사람이 여야로 갈렸을 뿐"이라며 "민주당은 성역이라서 불법 자금 받아도 문제없나"고 반문했다.
주 의원은 "민중기 특검의 직무유기 혐의를 형사 고발하겠다. 통일교 금품을 받은 민주당 인사들을 뇌물죄 및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함께 고발한다"며 "권력형 사건 무마 비리다. 특검을 특검하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8일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이 며칠 전 뜬금없이 사실상 통일교를 타깃으로 종교단체 해산 검토를 지시하는 폭탄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당시 대통령이 왜 저런 무리한 소리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야 퍼즐이 맞춰진다"며 "이 대통령의 종교단체 해산 운운 발언은 통일교가 민주당 돈 준 것을 발설하지 못하게 하려는 '입틀막' 경고였던 것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종교의 정치 개입 사례를 지적하면서 '종교재단 해산 명령' 여부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참여연대 "특검, 통일교-민주당 정치자금 즉각 수사해야"
참여연대는 이번 논란을 두고 "여당 연루 의혹에 대해서만 수사하지 않은 것은 특검 스스로 국민적 신뢰를 깬 것으로 비판 받아 마땅하다"며 "즉각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8일 논평을 통해 "특검은 왜 이 사안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는지 해명하고, 민주당 정치인에게 제공된 정치자금 의혹에 대해 즉각 수사해야 한다"며 "특검은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을 당시 조사에 착수하거나 별건이라고 판단했다면 이를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윤영호가 재판에서 이 같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전까지 침묵한 것은 여당 관련 의혹은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특검을 직격했다.
그러면서 "윤영호는 재판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민의힘보다 민주당과 가까웠다'고 진술했다. 통일교가 보험성으로 장기간에 걸쳐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과 유착해 정치자금을 줬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며 "장기간에 걸친 통일교와 정치권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만큼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며 전방위 수사를 촉구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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