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인연이 멀어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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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인연이 멀어지는 시간

메디먼트뉴스 2025-12-08 15:46:09 신고

*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초속 5센티미터(5 Centimeters Per Second, 2007)' 포스터
영화 '초속 5센티미터(5 Centimeters Per Second, 2007)' 포스터

[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기 걸작으로 불리는 2007년 작품 <초속 5센티미터> 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인 거리와 상실을 가장 순수하고도 고통스럽게 그려낸 작품이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처럼 인연이 천천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이 멀어지는 과정을 세 개의 단편적인 이야기로 구성하여 관객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토노 타카키와 시노하라 아카리, 두 소년 소녀의 풋풋하고 애틋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교감으로 시작한다. 전학으로 인해 멀리 떨어지게 된 두 사람은 폭설이 내리던 밤, 기차역에서 재회한다. 이 짧은 재회는 그들의 유일한 현실적인 접점이자, 시간과 공간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놓인 어린 사랑의 절정을 이룬다. 신카이 감독은 이 장면에서 빛과 풍경을 통한 감정 묘사의 정수를 보여준다. 눈 덮인 기차역의 고요함, 난로의 따뜻한 빛, 그리고 길어진 기차 대기 시간은 그들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한지를 역설하며 관객의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두 번째 이야기는 타카키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를 짝사랑하는 같은 반 친구 스미다 카나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카나에는 늘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타카키의 옆자리를 지키지만 그의 시선이 결코 자신에게 닿지 않음을 절감한다. 이 파트는 타카키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그리움과 고독을 외부에서 관찰하게 한다. 타카키는 물리적으로는 카나에 옆에 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아카리에게 묶여 수많은 시간과 편지 속에 머물러 있다. 카나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은, 타카키 자신이 아카리에게 느끼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거울이 된다.

마지막 이야기는 성인이 된 타카키의 씁쓸한 현재를 보여준다. 그는 과거의 인연을 놓지 못한 채 공허하고 무기력한 삶을 이어간다. 그는 여전히 아카리에게 편지를 쓰지만 보내지 못하며, 그의 관계들은 과거의 그림자에 가려 실패한다. 영화는 타카키가 벚꽃이 흩날리는 철길 건널목에서 아카리로 추정되는 여성과 스쳐 지나가는 순간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멈추지만, 반대편으로 지나가는 기차 때문에 시야가 가로막힌다. 기차가 지나간 후, 타카키의 옆에는 아무도 없다. 타카키는 미소 지으며 과거의 환영을 마침내 놓아주고 현재를 받아들이는 해방감을 느끼는 듯하다.

<초속 5센티미터> 는 드라마틱한 재회나 해피엔딩을 거부하고, 그리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삶을 지배할 때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가장 슬픈 현실을 담아내며 인연과 거리, 그리고 상실을 겪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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