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의 AI 기술 활용은 단순히 주거 서비스 개선에 멈춰 있지 않고 건설 현장으로 확산하고 있다. 인력난·고령화, 공사기간 단축, 안전 확보를 위해 건설사들은 AI 기술을 ‘생존 전략’처럼 도입하고 있다.
|
◇ 건설사, AI 실험 넘어 ‘실무 적용’으로 진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토목건축업종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를 대상으로 2020년부터 올해까지 언론에 공개된 AI 서비스 사례 44건을 분석한 결과 최근 2년간 AI 도입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AI 도입이 실험 단계를 넘어 건설현장 실무 적용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물산 반포3주구 재건축 현장에는 자율주행 지게차, 자재 이동 로봇이 야간 시간대 현장에 쌓여 있는 나무판 등을 아파트 동별 지정 장소로 옮겨준다. 자동화 로봇이 철골 볼트를 조여주기도 한다. 대우건설은 의정부 탑석 푸르지오 파크7의 조경 설계를 AI에 맡기고 이를 형상화했다. 기존 설계자의 아이디어를 협력사에 구두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겼던 오류 등이 해결됐다.
DL이앤씨는 모든 주택 건설 현장을 디지털 트윈화(Digital Twin·현실 세계의 사물을 가상 세계에 구현)했다. 공사 기간·공정별 현장 상황이 한 눈에 3D로 들어와 토공량(공사에서 다루는 흙의 양)이 자동 산출돼 오차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롯데건설은 전국 공사현장의 CCTV를 AI로 분석해 사고 가능성이 높은 현장을 사전에 걸러내고 있다.
이밖에 AI는 설계자 및 엔지니어가 수행하는 설계·시공·운영 업무를 보조하거나 대용량 기술 메뉴얼과 법규 등을 검색·분석하거나 외국인 근로자의 실시간 번역을 지원한다. 레미콘 품질 판정, 벽지·외벽 하자 탐지 등도 AI가 검증한다. 공사비 예측, 부동산 시장 분석도 마찬가지다.
|
민간 건설사들이 전사적으로 AI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난 해소, 안전사고 위험 축소, 공사 기간 단축 등을 위해서다. 한국기술인협회에 따르면 건설전문인력 중 30대 이하는 2013년 36%에서 2023년 16%로 급감했을 뿐 아니라 숙련 노동자도 줄어들고 있다. 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건설사 명운이 달라질 정도의 과징금 등 엄중한 제재가 내려지는 만큼 노동집약적인 생산 방식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AI기술을 건설 현장에 투입하려는 수요는 증가할 전망이다.
원지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 수석연구원은 “건설사 입장에선 수익이 중요하다”며 “AI를 활용해 안전 관리, 수주 계약서 상 독소 조항을 파악하는 일 등 위험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검증해왔기 때문에 적극적인 도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
◇ “신기술 있어도 비용부담·제도 등에 도입 한계”
건설사가 향후 건설 현장에 AI기술을 활용하려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건설 현장이 아닌 외부 공장에서 부재를 미리 생산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의 오프사이트 콘스트럭션(OSC·Off-Site Construction)과 OSC로 빼낼 수 없는 공법에 대해선 자동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를 실제 건설 현장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토목공사에서 흙을 잡고 들어내는 MG(Micro Gripper)와 흙을 잘라내며 굴착하는 MC공법은 OSC를 적용하기 어려워 무인 드론 측량, 디지털 맵핑((Digital Mapping·지형, 물체 등을 지도처럼 표현), 정비관제시스템 등을 활용해 리모트(Remote)로 제어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김규환 현대건설 RX연구팀 팀장은 지난 2일 한미글로벌 ‘2025 HG 테크포럼’에서 “기술이 발달해 있음에도 왜 시공사들이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러한 기술을 현장에서 적용하기 위해선 기존에 빌딩정보모델링(BIM)이 갖춰져 있어야 쓸 수 있다”고 밝혔다. BIM은 건설 프로젝트를 3D로 만들고 그 안에 모든 정보를 담아 관리하는 기술이다. 주요 건설사 대부분이 ‘BIM’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상당한 비용 부담으로 기술 개발이 이뤄진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현장에 제대로 투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인 굴착기 등 새로운 건설 기계가 개발됐다고 해도 건설 현장에 즉각적으로 투입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의 ‘스마트 건설 표준시방서’에 반영돼야 한다. 표준시방서는 건축·토목·전기·기계 등 각 분야에서 어떤 재료, 기계, 공법으로 시공하는지에 대한 기본 원칙을 말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표준시방서에 특정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건설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며 “실증하는 과정 등 시방서에 한 줄 넣는 것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미국은 신기술이 도입될 경우 네거티브(Negative·금지된 목록 빼고 다 허용) 방식인 반면 우리나라는 포지티브(Positive·허용된 목록에 있어야만 가능) 방식으로 접근해 신기술에 대한 안전점검을 중요시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와 HD현대는 무인 굴착기의 표준시방서 반영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다른 건설사도 해당 기계를 건설 현장에 투입해 활용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도 스마트 건설 협의체(얼라이언스·Alliance)를 만들어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연말에 굴착기 등 토목 다짐과 관련해 표준시방서를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