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15년 만에 비대면진료가 제도권에 편입된 가운데 의료·플랫폼 산업계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대면진료 원칙·재진 중심’이라는 강한 안전장치 속 법적 기반이 마련됐으나, 플랫폼 규제 법안까지 병행되면서 산업 성장 동력은 오히려 제약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도화가 곧 안정일지, 새로운 제한의 시작일지 갈림길에 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비대면진료 플랫폼 중개 건수는 772만 건으로, 이 중 99%가 의원급에서의 경증·만성질환 관리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진료가 주로 일차의료 중심의 보완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향후 제도 시행 과정에서도 서비스 범위 확대보다 안전성과 의료 기반 유지가 우선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비대면진료 제도화는 5년 9개월 시범사업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한국 원격의료의 첫 공식 장을 연 조치로 평가된다. 2010년 첫 의료법 개정 시도 후 15년을 끌어온 논쟁이 일단락되면서 대면진료 보완 수단으로서의 법적 지위가 부여. 정부는 의료 접근성 강화와 안전성 확보의 균형을 강조했지만, 실제 제도는 안전 중심에 방점이 찍힌 구성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개정안은 재진 중심, 의원급 중심, 초진 제한, 전담 기관 금지 등 네 가지 원칙을 축으로 설계됐다. 일정 기간 내 동일 증상으로 대면진료 이력이 있는 환자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며, 병원급은 희귀질환자·제1형 당뇨병 환자 등 특수 환자군으로 제한됐다. 초진은 지역 일치 시에만 처방 약품과 일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허용돼 사실상 ‘통제된 초진 시장’이라는 의견이다.
처방 규칙도 강화됐다. 마약류·향정신성 의약품 등 오남용 우려 약물은 비대면 처방이 금지됐고, 시각 정보가 필수인 질환은 화상진료가 의무다. 비대면진료의 한계를 설명하고 환자 동의를 받도록 한 절차도 법적 의무가 됐다.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을 도입해 위·변조 방지 장치를 더한 점도 이번 법안의 특징이다.
민간 플랫폼 규제 근거가 처음 마련된 것도 산업계에 구조적 변화를 예고한다. 일정 규모 플랫폼은 복지부 인증을 받아야 하며, 의료기관 추천·유도, 과도한 광고, 오남용 조장 행위가 금지된다. 약 배송 역시 기존 시범사업 체계와 동일하게 취약계층 중심으로 유지돼 서비스 확장성은 크지 않다. 새롭게 구축될 공공 플랫폼은 환자 정보 연계 기반을 맡게 된다.
업계는 이 같은 규제를 제도적 안정이 아닌 ‘높아진 장벽’으로 해석한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인증제와 각종 금지 조항이 신규 사업자 진입을 사실상 봉쇄할 수 있다고 우려. 실제로 2020년 이후 비대면 플랫폼 중개 건수 772만 건 중 99%가 의원급 경증·만성질환 중심이었던 만큼, 플랫폼이 의료 접근성을 보완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업 확장성 논의가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갈등은 약사법 개정안,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을 둘러싸고 형성됐다. 해당 개정안은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의약품 도매업을 운영하거나 약국 개설자와 금전적 거래를 맺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협회와 보건의료단체는 해당 개정안이 플랫폼의 리베이트 가능성과 의약품 오남용 위험이 있다며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플랫폼 업체마다 의약품 도매상을 하나씩 운영하고 상업적 기능 확장에만 몰두한다면 비대면진료 환경이 크게 왜곡될 수 있다”며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은 품질 보장과 오남용 방지를 위해 유통 전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스타트업 업계는 ‘타다 사태의 반복”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번 법안 추진을 ‘벤처 생태계 30년의 현실을 드러낸 단면’으로 규정. 특정 직역단체의 주장만 반영된 불균형적 논의 구조, 정부 부처의 기존 판단 번복 등을 문제 삼으며 제도 설계 과정 자체가 혁신 역량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플랫폼 기반의 약국 재고 정보 제공·조제 가능성 안내가 금지되면 국민 불편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해외 사례와의 격차는 구조적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의 ‘아마존 원 메디컬’, ‘힘스 & 허즈’ 등은 진료·약 배송 통합 모델을 이미 표준처럼 운영하고, 있고 일본도 고령층 중심 원격의료 확산을 병행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은 원격의료 시장이 2028년 3조4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지만, 국내는 규제가 먼저 논의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비대면진료의 필요성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전북 남원의 16개 농촌 마을은 디지털 장비와 화상 시스템을 갖춘 경로당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고령층은 악천후와 이동 불편 없이 만성질환을 관리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지만, 참여 의료기관은 전체 57곳 중 7곳에 그쳤다. 근골격계·치과·안과 등 필수 진료 과목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방문간호사 3명이 16개 마을을 맡는 등 인력 체계도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비대면진료의 제도화는 새로운 출발점이지만 산업이 성장궤도에 오를지는 하위법령과 추가 규제 논의에 달렸다는 분석이 많다. 의료법·약사법이 연달아 규제 중심으로 정비되면 플랫폼 산업 확장성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공 기반과 민간 기술 접점을 조정해 균형을 찾는다면 고령층·취약지 중심으로 의료 접근성 개선 효과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 디지털헬스 업계 관계자는 “비대면진료 제도화는 의료계와 산업계 모두가 원하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안전장치를 이유로 시장 전반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결국 제도만 있고 산업은 없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핵심은 기술이 아닌 설계 방식이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 보호와 혁신 사이에서 정부가 어떤 균형점을 잡느냐에 따라 향후 10년의 의료 플랫폼 산업 지형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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