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구제 신청 선두, 합의율은 꼴찌
협력업체 기술 중국 업체에 유출, 단가 납춰 납품 받아
경동나비엔과 열교환기 특허 분쟁도 표류
[포인트경제] 국내 보일러 산업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아온 귀뚜라미가 해외시장 공략과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사이, 보일러 본업 경쟁력 약화와 기술 유출·특허 분쟁이 잇달아 불거지며 '국민보일러' 타이틀이 무색해지고 있다. 실적 부진과 소비자 신뢰 하락까지 맞물려 내실 다지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귀뚜라미 김학수 대표 / 사진=뉴시스 ⓒ포인트경제CG
귀뚜라미는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해 지난 2023년 김학수 대표체제로 전환했다. 김 대표는 대우전자 유럽본부 최고재무책임자(CFO), 경동나비엔 미국 법인장과 중국법인 총경리를 거쳐 2021년 귀뚜라미 해외영업본부장을 지낸 해외 전문가다. 그는 현지 영업환경 이해와 데이터 기반 판단을 강조하며 "종합 냉난방 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해외·신사업 중심 재편...냉방·공조 계열사는 성장, 본업은 부진
그룹의 기조에 맞춰 냉방·공조 계열사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귀뚜라미범양냉방은 산업용 냉각탑 국내 선두를 달리며 신공법 개발과 해외시장 확대로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 중이다. 신성엔지니어링은 2차전지용 드라이룸 시스템 국내 1인자로 재작년 기준 해외매출 비중을 40%이상 끌어올렸다. 원전·특수선 냉동공조기기 회사인 센추리 또한 귀뚜라미 합류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며 안정적 재무 기반을 확보했다.
반면 본업은 부진이 심화되면서, 지난해 보일러 부문 매출이 줄고 영업이익도 적자를 기록했다. 종합 에너지 그룹 전환 자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본업 경쟁력까지 잃는 것은 다른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우려섞인 시각이다.
소비자 피해구제 신고 최다, 합의율은 최하
소비자 신뢰 측면에서도 부담이 커졌다. 최근 5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보일러 피해구제 신청 584건 중 귀뚜라미 제품이 182건(42.3%)으로 제조사 중 최다였다. 반면 합의율은 36.8%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피해 발생은 많고 사후 대응은 가장 낮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셈이다.
생산업체와 설치회사 별도 운영으로 피해 발생 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이 만연하다 하더라도, 경쟁사인 경동나비엔이 같은 기간 피해구제 합의율 50%대를 기록하며 적극적인 조정 성과를 낸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하도급사 기술 중국 업체에 빼돌리고, 경쟁사와 특허 분쟁
신뢰 훼손을 부추기는 사건도 잇따랐다. 귀뚜라미는 지난해 하도급 업체들의 센서·전동기 기술자료를 중국 경쟁사에 빼돌린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9억5천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고 검찰에 고발됐다.
회사는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협력사의 기술을 외부 경쟁사에 유출해 동일 부품을 조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협력사들은 거래 기반과 기술경쟁력 모두에 타격을 입게 됐다.
경동나비엔과의 열교환기 특허 분쟁도 불안 요소로 남아 있다. 경동나비엔은 2023년 12월 귀뚜라미가 자사 열교환기 특허기술을 무단 도용했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난해 법원이 경동나비엔 측 주장을 일부 인용해 귀뚜라미의 에코 콘덴싱 일부 제품 판매가 금지된 가운데, 양사는 특허법원으로 옮겨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귀뚜라미는 경동나비엔의 특허 자체가 무효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강력 대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냉난방 통합 시스템, 유럽·미국 공략"...신뢰 회복이 먼저
김학수 대표가 글로벌 사업 확장에 집중해 냉난방 통합 시스템 수요가 늘어나는 유럽·미국 시장 공략을 강화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소비자 대응 체계 미비와 기술 리스크 확대, 본업 수익성 악화 등 ‘발 아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확장만 강조하는 전략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글로벌화는 결국 브랜드 신뢰가 출발점이다. 소비자 피해 최다·합의율 최저라는 기록과 함께 협력사 기술 유출과 경쟁사와의 특허 분쟁까지 겹친 상황을 봤을 때, 귀뚜라미는 외형 확대보다 내실 강화와 신뢰 회복 회복이 더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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