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한국 유통 시장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물류 제국’이다. 창업자 김범석(47) 이사회 의장은 “마찰 없는 편리함(frictionless convenience)” 을 핵심 경영 철학으로 내세워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을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 전례 없는 편익을 제공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성장의 결과, 쿠팡의 모기업 쿠팡 Inc.는 연 매출 50조 원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이 매출의 대부분은 한국 국민의 소비를 통해 이룬 성과다.
그러나 이 혁신적인 성과 이면에는 심각한 노동자 과로사 문제, 열악한 근무 환경, 그리고 최근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윤리적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쿠팡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단순히 기업 운영상의 실책을 넘어,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김범석 의장 개인의 ‘경영 책임 회피 전략’과 ‘윤리적 판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집중되는 양상이다.
법적 책임으로부터의 전략적 격리
‘미국 국적’의 방패 뒤에 숨은 오너
김범석 의장에 대한 비난의 가장 핵심적인 축은, 그가 한국 내 사업에 대한 압도적인 지배력은 유지하면서도 법적 및 윤리적 책임만은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쿠팡 Inc.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미국 법인이며, 김 의장은 이 법인의 이사회 의장이다. 그는 쿠팡 클래스B 보통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주식은 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을 가진다. 이로 인해 김 의장의 지분율은 8.8%에 불과하더라도, 의결권을 기준으로 하면 73.7%에 달하는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 차등의결권 구조는 외부 간섭 없이 김 의장이 추구하는 ‘초집중 경영’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최고 경영자의 독단적 의사 결정이 법적·윤리적 위험을 키울 가능성을 극도로 높인다.
동일인(총수) 지정 회피 논란
김범석 의장은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동일인(총수) 지정’을 피했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사익편취 금지, 친·인척 자료 제출 등 국내 대기업 집단 총수에게 부과되는 각종 공시 및 규제 의무를 지게 된다. 김 의장은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와 특정 예외 규정을 활용하여 이 지정을 회피했고, 동일인 판단 기준이 개정된 이후에도 총수로 지정되지 않아 규제와 의무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행태를 두고 그를 “기업가 아닌 로비스트” 라고 맹비난하며 한국의 규제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로 간주했다. 이는 국내 소비자를 기반으로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 한국 법적 시스템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규제와 의무조차 외면하는 ‘전략적 탈법’으로 받아들여져 국민적 공분을 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 '선제적 도피' 의혹
김범석 의장이 국내 법적 책임에서 멀어지려는 전략은 노동 안전 문제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2020년 10월 대구 물류센터에서 20대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 불과 두 달 뒤인 2020년 12월, 김범석 의장은 한국 법인 쿠팡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에는 한국 법인의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직마저 사임하며 사실상 국내에서의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미국 쿠팡 Inc.의 이사회 의장만 맡기로 했다.
쿠팡 측은 글로벌 경영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으나, 사임 시점은 경영 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1월)을 약 8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사임은 형사 처벌의 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꼼수’였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물류센터와 배달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랐으나, 김범석 의장은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 직접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로켓배송의 그림자: 노동자의 생명을 희생시키다
김범석 의장의 경영 방식이 혁신을 위해 노동자의 인권과 생명을 구조적으로 희생시켰다는 점은 ‘인간성’에 대한 비판을 가장 첨예하게 만든다.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은 노동자들에게 초장시간 야간 노동을 강요하는 구조적 과로를 내재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2020년부터 잇따른 배송 기사 사망 사고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 자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쿠팡 스스로 내세운 안전 시스템마저 현장에서 능동적으로 무력화되었다는 점이다. 택배노조의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쿠팡이 과로사 방지를 위해 약속했던 ‘7일 연속 로그인 제한’ 시스템을 회피하기 위해 대리점 관리자가 타인의 아이디를 사용하여 고(故) 오승용 기사에게 8일 연속 야간 배송을 강요한 구체적인 정황이 확인되었다. 노조는 “쿠팡의 7일 제한 시스템은 허울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는 단순한 관리 부실이 아니라, 효율 극대화를 위해 안전 시스템마저 조작하는 극도로 효율 지상주의적인 경영 태도를 반영한다.
비인간적 공감 능력 부재와 침묵의 전략
반복되는 노동 사고와 과로사 의혹 속에서도 김범석 의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거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점은 비정한 대응으로 간주된다. 특히 장례를 치른 직후 단 하루만 쉬고 다시 새벽 배송에 투입되었다가 사망한 기사의 사례는 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쿠팡 경영진의 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때도 김범석 의장은 일관된 침묵과 책임 회피 전략을 고수했다. 그 대신 한국 법인 대표들이 대신 사과하고 국회 국정감사 등에 출석하는 대리인 체제가 운영되고 있다. 2025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현안 질의에서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직접 국민께 정중히 사과하길 원하고 있어요. 사과할 의향이 없는 겁니까, 그럼?”이라고 질문하자 ,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는 “제가 지금 현재 이 사건에 대해서 전체 책임을 지고 있다”고 답하며 김범석 의장의 책임론에는 선을 그었다. 이는 김범석 의장이 미국 국적과 본사 중심의 지배구조 뒤에 숨어 법적 및 도덕적 책임을 차단하려는 ‘침묵의 전략적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소비자 신뢰 붕괴: 3,370만 건 정보 유출의 재앙
최근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김범석 의장에 대한 비난이 정점에 달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쿠팡에서 3,370만 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태는 대한민국 국민 3분의 2의 정보가 위험에 노출된, 전례 없는 규모의 보안 재앙으로 평가된다.
이 사태는 단순히 정보 유출에 그치지 않고, “쿠팡만 쓴 카드, 14만 원 결제 시도 알림이 왔어요” 와 같은 2차 피해로 이어져 소비자들의 집단행동과 불매운동 경고까지 촉발했다. 정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 대통령이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하며 “징벌적 손해배상 필요”를 언급할 정도였다.
쿠팡은 연간 약 890억 원의 보안 예산과 214명의 보안 전담 인력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이번 사고는 퇴사자 ‘정보접근 열쇠’를 미회수하는 등 보안 관리의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높은 성장 속도와 효율만을 강조하는 경영 문화가 기본적인 프로세스 준수를 경시한 결과로 진단하며, 의사 결정이 외국인 임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적 특성이 보안 실패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는 김범석 의장의 초집중 경영 방식이 결국 소비자의 신뢰와 안전을 보장하는 근본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책임 회피 구조가 한국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이유
김범석 의장의 경영 방식이 이토록 강도 높은 비난을 받는 근원적인 이유는, 그가 한국 시장의 막대한 이익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면서도, 정작 한국 사회의 법적 책임과 윤리적 의무를 철저히 외면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경영 철학인 고객 중심의 ‘마찰 없는 편리함’은 법적 책임, 노동자 안전, 정보 보안이라는 필수적인 사회적 ‘마찰’을 구조적으로 제거하거나 회피하는 방식 위에서 구현되었다. 그는 차등의결권을 통해 한국 사업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한 ‘내부자’이면서도, 미국 국적과 책임 회피 전략을 통해 한국 법적 의무를 면하는 ‘외부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이러한 이중적 지위는 국민 감정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특히 김 의장이 보유 주식을 처분하여 약 5천억 원 (4,846억 원) 가까이 되는 금액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자선 기금에 증여한 주식 대부분이 미국에 쓰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 한국을 ‘사업을 영위하는 시장’으로만 보고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공동체’로는 여기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러한 노동 문제와 사회적 책임 회피 전략은 외신으로부터도 지속가능성의 관건으로 지적받았다. 파이낸셜 타임즈를 포함한 외신들조차 쿠팡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노동 환경과 사회적 책임 이슈가 향후 쿠팡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핵심적인 관건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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