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뿌리를 찾아서] 꿩이 남긴 말의 상처, 까치가 얻은 예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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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토리 뿌리를 찾아서] 꿩이 남긴 말의 상처, 까치가 얻은 예절의 힘

뉴스컬처 2025-12-07 18:59: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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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겨울 숲속의 예절과 관계를 다루는 설화 '꿩과 비둘기와 까치'는 짧은 이야기 구조 안에서 태도와 언행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배고픔이 극심해진 계절, 새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타인의 도움을 청하며 보여주는 모습은 오래된 설화임에도 현재의 사회적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야기는 눈이 깊게 쌓인 숲에서 먹을 것이 줄어들자, 꿩은 양식을 넉넉히 준비한 쥐 부부의 집을 가장 먼저 찾으며 시작된다. 그러나 꿩은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상대를 깔보는 투로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처지를 망각했다. 쥐 부부는 그 무례함을 참지 않았고, 꿩은 꾸지람과 함께 매질을 당해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꿩의 붉은 뺨이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은 전승 과정에서 교훈을 시각적으로 고정시키는 장치가 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다음으로 찾아간 비둘기 역시 말을 다듬지 못했다. 비둘기는 억지스러운 명령을 퍼부으며 마치 상대가 빚이라도 진 듯한 태도를 취했다. 결과는 꿩과 다르지 않았다. 비둘기 역시 부지깽이의 세찬 내리침을 피할 수 없었고, 머리색이 푸르게 된 연유가 이 사건에서 기인한다는 민속적 해석이 더해졌다. 자연의 형질에 이야기를 덧씌워 기억을 강화하는 전통적 특징이 잘 드러난다.

두 차례의 실패를 곁눈질하며 지켜본 까치는 달리 행동했다. 까치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뒤 상대의 형편을 먼저 묻고, 추운 날씨 속에서 고생이 많았을 것이라며 마음을 헤아리는 말을 전했다. 쥐 부부는 까치의 태도에 호감을 느끼고 양식을 넉넉히 내어주었다. 같은 어려움에 닥쳤지만 태도가 만들어낸 차이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설화의 저변에는 예절을 중시하던 공동체적 가치가 깔려 있다. 과거 농경사회는 자연환경에 크게 의존했고, 어려운 계절에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생존과 직접 연결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언행은 사회적 미덕이 아니라 인간 관계의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도구였다. 예의를 지킨 까치가 도움을 얻는 결말은 당시 공동체가 이상적으로 여긴 질서와 윤리를 보여준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설화는 ‘호혜적 관계’에 대한 관념을 반영한다. 도움을 요청할 때의 언어는 상대에게 있어 하나의 시험처럼 작동하며,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는 태도가 신뢰를 형성하는 기준이 된다. 쥐 부부가 양식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태도를 우선시한 점은, 교환의 가치보다 관계의 질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전통 윤리를 드러낸다.

설화가 동물을 등장시킨 이유도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다. 사람 대신 동물을 내세워 사회적 규범을 설명하는 방식은 조선 후기 민담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널리 발견된다. 동물이 가진 이미지적 성격을 빌려 인간의 성향을 더 뚜렷이 대비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꿩의 호기심과 허영, 비둘기의 성급함, 까치의 재빠른 판단은 실제 자연에서의 이미지와 겹쳐 청중의 이해를 돕는다.

지역 전승의 차이도 흥미롭다. 일부 전승에서는 쥐 대신 다람쥐가 등장하거나, 벌을 내리는 도구가 부지깽이에서 돌멩이나 나뭇가지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핵심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예의 바른 언행이 곧 관계를 여는 문이라는 메시지는 여러 지역을 거치며 반복적으로 변주된다. 이는 시대가 달라져도 중요하게 다루어진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서 ‘신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방식은 민속문학의 중요한 특징이다. 자연물이나 동물의 외형에 특정한 이유를 부여해 기억과 교훈을 결합시키는 서사 기술이다. 꿩의 붉은 뺨과 비둘기의 푸른 머리는 설화가 재미를 전달하는 장치를 넘어 사회적 규범을 시각화하는 도구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외형을 볼 때마다 교훈을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의미가 확장된다. 소통 방식이 복잡해지고 관계가 다양해졌지만, 말의 온도와 태도의 무게가 관계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메시지의 핵심은 ‘상황이 어떠하든 상대를 대하는 태도는 선택 가능하다’는 점이며, 그 선택이 관계의 결과를 바꾼다는 사실이다.

서로가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는 시대일수록 설화가 전하는 관점은 더욱 중요해진다. 어려움을 나누는 과정에서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말투로 요구하거나 호소하는지가 관계의 지속성을 결정한다. 꿩과 비둘기가 남긴 실패와 까치가 얻은 성취는 사회적 관계의 기본 구조를 다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이야기에는 인간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공동체적 감각이 깃들어 있다. 풍요와 결핍이 반복되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그 관계를 지탱하는 바탕을 중요하게 여겼다. 설화는 그 바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태도였음을 말없이 보여준다. 고요한 겨울 숲에서 새들 사이에 벌어진 일은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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