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혁신 엔진’ 멈추나···AI 전환 실패 속 핵심 두뇌 이탈 확산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애플이 최대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애플이 주도권을 잃은 가운데, 오랜 기간 애플을 지탱해 온 핵심 임원과 엔지니어들의 대규모 이탈이 이어지며 ‘혁신 엔진’이 사실상 정지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의 자체칩 전략을 총괄해 온 조니 스루지 수석부사장이 팀 쿡 최고경영자(CEO)에게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2008년 애플에 합류한 스루지는 1세대 아이폰용 A4 칩 개발을 진두지휘한 핵심 인물로, 쿡 CEO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쿡 CEO가 고액 보수와 권한 확대를 제시하며 설득에 나섰지만, 스루지 부사장이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인력 유출은 최근 몇 달 새 애플 전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쿡 CEO의 후계자로 꼽히던 제프 윌리엄스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지난달 공식 은퇴했고, 애플 AI 조직을 7년 넘게 이끌었던 존 지아난드레아 수석부사장도 회사를 떠났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총괄해 온 앨런 다이, 2017년부터 법무부서를 책임져온 케이트 애덤스, 환경·정책·사회 이니셔티브 담당 리사 잭슨 부사장도 잇따라 퇴任을 발표했다.

여기에 중간 관리자 및 핵심 실무진 이탈까지 겹치면서 내부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링크트인에는 최근 오픈AI·메타 등 경쟁사로 이직한 애플 엔지니어·디자이너 사례가 잇따라 공유되고 있다. 시리 개편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로비 워커가 떠난 데 이어 후임 케 양은 메타 슈퍼인텔리전스랩으로 옮겼고, AI 모델을 총괄하던 루밍 팡도 팀원들과 함께 메타로 이동했다. 비전 프로 관련 핵심 인력과 로봇 개발 인력 일부는 오픈AI로 자리를 옮겼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의 출발점에 ‘AI 전환 실패’가 있다고 분석한다. 애플이 대대적 개편을 약속했던 음성비서 시리 업그레이드는 약 1년 반 이상 지연됐고, 자체 AI 시스템 ‘애플 인텔리전스’도 출시가 늦어지며 경쟁사 대비 뒤처졌다는 평가가 많다. 오픈AI를 앞세운 마이크로소프트(MS), 자체 모델 ‘제미나이’로 존재감을 되찾은 구글과의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

제품 경쟁력도 흔들리고 있다. 초슬림 디자인을 내세운 ‘아이폰 에어’는 성능 저하 논란으로 부진한 판매를 보였고, 중국 시장에서는 비보(vivo)에 점유율 1위를 내줬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애플의 중국 점유율이 3분기 약 13%로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경영진 고령화가 동반되는 것도 애플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60대 초중반에 접어든 법무·정책 라인의 수장이 퇴진했고, CFO 루카 마에스트리도 역할이 축소되며 은퇴설이 나온다. 애플의 2인자로 불렸던 제프 윌리엄스 COO의 은퇴 이후, 후임 CEO로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총괄 존 터너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은 수십 년간 혁신을 이끌었던 인재들을 잃고 있으며, 경쟁사는 이들을 흡수하며 디지털 기기 시장의 패권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이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