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정부가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약가제도 개선방안'이 보건의료계 전에 거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개편이 신약개발 촉진,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약제비 관리 합리화를 골자로 하는 전면적인 제도 재정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변화의 방향성을 두고 이해관계자들의 온도차는 확연하다.
환자단체는 '치료 접근성 강화'라는 정책 취지를 환영하는 반면, 산업계는 "과도한 약가 조정이 투자 여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제네릭(복제약) 약가 조정이 포함된 만큼, 이번 개편의 파급 범위는 제약·의료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스락>은 약가제도 개편의 핵심 내용과 그 영향이 보건의료 현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들여다봤다.
정부, 제네릭 약가 산정률·다품목 등재 체계 등 전면 '손질' 나서
정부가 현행 약가 제도의 구조적 한계와 여러 실효성 문제를 지적하며, '메스'를 꺼내 들었다.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는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혁신 신약 가치 보상과 제네릭 약가 관리등을 담은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위원회는 현 보건의료 환경이 ▲환자 접근성 부족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정 ▲건강보험 재정 압박이라는 '삼중고'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제네릭 중심의 산업 생태계 고착화는 핵심 쟁점으로 꼽혔다. 제네릭(복제약)은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일한 성분·함량을 기반으로 제조되는 약품으로, 개발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 다수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
정부는 국내 개발 신약 건수가 2021년 5건에서 지난해 2건으로 줄어드는 등 혁신 동력이 약화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약품비 증가 역시 부담 요인으로 지적됐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약품비는 2017년 대비 62% 늘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압박을 주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평가다.
환자 접근성 측면의 문제도 이어졌다. 중증·희귀질환 치료제의 보험 등재가 지연되고, 필수의약품 생산 중단 사례가 반복되면서 공급 불안이 누적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중단 건수는 2023년 31건, 지난해 상반기에도 17건이 발생했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현행 오리지널 약가의 53.55%에서 40%대로 낮추는 것이다. 일본(40~50%), 프랑스(40%) 등 유사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식이다.
약가 산정 기준도 보다 명확해진다. 자체 생동성 자료 제출, 식약처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등 기준 요건을 충족하면 40%대 산정률을 적용하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인하율을 80% 수준까지 확대한다. 품질과 생산 기반을 갖춘 제네릭에는 합리적 보상을, 그렇지 않은 품목에는 더 낮은 약가를 부여하는 구조다.
제네릭 난립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도 강화된다. 동일 성분 제제가 11번째부터 등재되면 퍼스트 제네릭 약가에서 5%포인트 감액된 가격을 적용한다. 또, 10개 이상 제네릭이 동시에 등재될 경우 등재 1년 후 11번째 수준으로 약가를 일괄 정렬하는 '다품목 등재 관리' 기준도 새로 도입된다. 품목 수 중심의 시장 구조를 품질·경쟁력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취지다.
이외에도 기존 등재 의약품의 단계적 약가 재조정, 사용량–약가 연동 조정 방식 개편 등 다수의 제도 변화가 함께 추진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혁신 신약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보상체계도 강화할 계획이다. 연구개발(R&D) 기여도가 높은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해서는 최초 등재 시 약가 가산 기간을 확대하고, 사용량-약가 연동에 따른 인하율 감면 비율도 현행 30%에서 50%로 상향하는 등 정책적 우대를 강화한다. 산업 구조를 '제네릭 중심'에서 '혁신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치료 접근성과 약가 관리 체계를 개선하고, 혁신·보건안보를 뒷받침하는 보상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신약 접근성·필수의약품 공급 안정… 현장 체감 개선 기대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해 환자단체와 일부 보건의료계는 방향성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환자 접근성 지연,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 퇴장방지의약품 보상체계 미비 등에 대해 정부가 종합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환자 입장에서는 '골든타임' 회복에 대한 기대가 크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보험 등재 기간을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여기에 임상·경제적 가치를 반영하는 비용효과성 평가 고도화가 더해지면서, 중증·희귀질환 환자에게 보다 빠른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
신약의 임상 성과와 경제성이 일정 수준 이상 입증되면, 지금보다 덜 지연된 상태에서 보험 급여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셈이다.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화 방안 역시 환자 안전망 강화를 위한 기반 조치로 평가된다.
퇴장방지의약품 지정 기준 상향과 원가 보전 현실화, 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한 약가 가산 확대는 수익성이 떨어져 시장에서 이탈 위험이 큰 품목을 붙잡아 두기 위한 장치다. 퇴장방지의약품이란 수익성은 낮으나 국민 보건을 위해 필요한 의약품을 의미한다.
공급 중단 시 대체재가 마땅치 않은 주사제·필수 약제의 경우, 일정 수준의 가격·보상 체계를 보장함으로써 '품절 공백'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은 이번 개편과 관련해 "이번 개선방안은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약가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려는 방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재정 측면에서도 일정 부분 '체질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정부는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53.55%에서 40%대로 조정하고, 계단식 인하와 다품목 등재 관리 강화 등을 통해 복제약 가격을 국제 기준에 가깝게 맞출 계획이다.
이러한 조치가 중장기적으로 약제비 증가 속도를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특히 OECD 평균 대비 2배를 웃도는 국내 제네릭 가격 수준을 조정하면, 고령화로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처방량을 감안하더라도 건강보험 재정의 '완충장치'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 약가검토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제네릭 약가는 OECD 평균의 약 2.17배로 나타났다.
다만 기대 효과를 실제 변화로 연결하려면, 환자와 의료현장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 마련이 필수적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번 개선방안이 환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시행 과정에서 세부 대책을 명확히 하고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 제약사 부담 가중·대기업 집중 심화… 부작용 우려도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연구개발·자체 생산 역량이 취약한 중견·중소 제약사의 부담을 키워, 결과적으로 일부 대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를 더욱 굳힐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핵심 쟁점인 제네릭·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기준을 현행 53.55%에서 40%대로 낮추는 조정안에 대해 산업계는 제약사들의 경영 환경을 고려할 때 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위탁개발생산(CDMO)과 비급여 의약품 비중이 높은 기업을 제외한 국내 제약기업 100곳의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에 불과하다.
이는 R&D, 설비 투자, 우수 인력 확보에 필요한 핵심 재원이 매우 부족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또한 국내 중견·중소 제약사의 재무 구조상 핵심 재원의 상당 부분이 제네릭 매출에서 발생하는 만큼, 제네릭 약가 조정의 영향은 더욱 직접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추가적인 약가 인하는 신약개발 속도 저하, 설비 투자 축소, 고용 위축, 글로벌 경쟁력 후퇴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수의약품 공급망에 대한 역효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약가가 원가 수준에 가까워질 경우 기업은 수익성이 낮은 저가 필수의약품 생산부터 줄일 공산이 커진다.
이로 인해 수입 의존도가 확대되고, 국민의 건강 및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 및 품절 리스크가 증가하는 등 의약품 공급망 안정성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평균 14% 수준의 일괄 약가 인하 사례에 대한 학계 분석 결과, 건강보험 재정이 단기적으로 절감됐으나 기업의 비급여 의약품 생산 비중 확대로 인해 국민 약값 부담은 13.8% 증가하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단순한 약가 인하만으로는 재정 건전성, 환자 부담 완화, 산업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교훈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의 골든타임인 지금 이 시점에서 추가적인 약가인하는 기업의 연구개발 및 인프라 투자, 우수 인력 확보 등 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것"이라며 "개선방안의 확정에 앞서 산업계의 합리적 의견 수렴과 면밀한 파급 효과 분석을 바탕으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약가 인하만으로는 재정 건전성, 환자 부담 완화,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며, 사후관리 제도와 R&D 지원체계를 함께 손질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안정훈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약가관리 체계의 예측 가능성이 확보돼야 기업이 안정적으로 개발 투자에 나설 수 있다"며 "합리적인 보상 구조가 마련돼야 R&D 재투자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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