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2026년 인사가 국내 대기업의 ‘기술 중심 체질 전환’을 가속하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삼성은 반도체·모바일·패키징·클라우드·OLED 등 핵심 사업의 기술 리더를 전면 배치하며 미래사업 정비에 나섰고, SK는 전 계열사에 걸쳐 AI 기반 조직 구조와 현장 실행력 강화를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LG 역시 세대교체와 기술 기반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우며 AI·클린테크 중심의 미래 성장축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경쟁 압력이 한층 거세진 가운데 3대 그룹이 동시에 기술·조직·인재 구조를 재정렬한 이번 인사는 향후 국내 산업 전반의 투자 방향과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에도 적지 않은 파급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 기술 리더십 중심으로 새판···미래사업 중심 조직 재구성
삼성이 2026년 인사를 계기로 주요 계열사에서 기술 중심의 조직 개편을 가속하고 있다. 반도체·모바일·패키징·클라우드·OLED 등 핵심 사업에 역량이 검증된 인물을 전면 배치하며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초점을 맞춘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에서는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이 공동대표로 올라섰다. 반도체(DS)와 모바일·가전(DX)을 각각 이끌어 온 두 인물이 투톱 체제로 복귀한 것은 AI·반도체·모바일을 잇는 사업 축을 기술 리더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선행 기술 조직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휴머노이드 개발을 담당하는 미래로봇추진단은 손·보행·매니퓰레이션 AI 등 핵심 직군 채용을 확대했고, 엔비디아와 AI-RAN 기술 협력을 이끌어 온 네트워크사업부는 관련 연구 인력을 추가 배치했다. 디지털트윈 기반 자동화 기술을 연구하는 생산기술연구소도 조직을 확대한 상태다.
패키징 경쟁력 강화는 삼성전기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이번 인사에서 유리기판 R&D를 이끌어 온 주혁 부사장을 패키지솔루션사업부장으로 임명, 차세대 기판 사업을 공식 성장축으로 올렸다. 인텔에서 17년간 패키징을 담당한 강 두안 부사장 영입, 스미토모화학과의 ‘글라스 코어’ 합작사 설립도 같은 전략의 연장이다. 세종사업장에는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한 파일럿 라인이 가동 중이며, 일부 글로벌 고객사와 샘플링이 진행되고 있다.
기업 IT 전환 시장에서는 삼성SDS가 인사 축을 맞췄다. SAP에서 영업·대형 고객을 담당해 온 전 구글클라우드 코리아 대표 지기성 부사장을 ERP 부문 책임자로 선임했다. 온프레미스 ERP(ECC 6.0) 지원 종료로 S/4HANA 전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자체 클라우드 플랫폼(SCP) 위에 컨설팅·구축·운영을 통합 제공하는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인사라는 해석이다. 앞서 AWS·메타·MS 출신 인재들을 클라우드·MSP 조직에 영입한 조치와도 맞물린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OLED 중심 재편이 강조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IT OLED 개발을 총괄하는 조직을 조정하고, 손동일 부사장을 대형사업부장 겸 IT사업팀장으로 임명했다. 내년 양산을 앞둔 8.6세대 OLED 라인을 비롯해 태블릿·노트북 등 IT용 고사양 패널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이다.
올해 삼성의 조직 개편은 계열사별로 다른 형태로 나타났지만, 공통으로 미래 기술을 중심에 두고 경쟁력을 재정비한다는 점에서 방향성이 일관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변화가 향후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중장기 투자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AI 전환이 인사 기준으로···SK, ‘실행 중심 체질’로 재정비
SK그룹은 2026년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에서 현장 실행력 강화와 AI 중심 체질 전환을 핵심 기준으로 제시했다. 세대교체 폭을 넓히고 조직을 슬림화하며, 계열사별 전략 사업에 맞춘 책임 조직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지난 4일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각 사의 인사·조직개편 결과를 공유하며 그룹 차원의 ‘실행 중심 경영’ 기조를 재확인했다.
신규 임원은 총 85명으로 이 가운데 17명이 1980년대생, 전체의 60% 이상이 40대로 채워졌다. 여성 신규 임원 8명 중 6명이 1980년대생으로, 기술·경영 전반에서 젊은 리더 비중이 많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룹 차원에서 최근 2~3년간 이어온 ‘성과 기반 발탁’ 기조가 이번 인사에서도 강화된 셈이다.
이런 인사 구조를 두고 SK는 “조직 강소화와 실행력 강화를 위한 리더십 재정비”라고 설명, 빠르게 변하는 기술 사업 환경에 맞춰 의사결정 속도와 현장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경쟁 심화에 맞춰 기술·생산 중심의 인사를 단행했다. 신규 임원 37명을 선임하고, 제조·기술 책임자인 이병기 담당을 양산총괄(CPO)로 승진시켰다. 수율·품질 전문가 권재순 담당, eSSD 개발을 주도한 김천성 담당 등 기술 리더들도 주요 보직으로 이동했다.
미주 지역에는 HBM 전담 기술조직, 패키징 수율·품질 대응을 위한 커스텀 HBM 조직을 신설했다. 미국·중국·일본에는 글로벌 AI 리서치 센터를 세우고 안현 개발총괄(CDO)이 총괄하며 빅테크 협력과 시스템 아키텍처 연구를 확대할 방침이다. 글로벌 생산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글로벌 인프라’ 조직은 김춘환 담당이 이끌며 미국 패키징 팹과 국내 생산기지를 연결하는 체계도 구축할 예정이다.
ICT 계열사 SK AX는 조직을 AI 중심으로 개편하며 그룹 내 디지털 전환 역할을 강화했다. CEO 직속에 최고AI책임자(CAIO)를 신설해 차지원 AT서비스1본부장이 맡았고, 고객 대응을 총괄하는 손건일 부문장(CCO)을 선임해 사업 현장의 실행력을 높였다.
AX 상품의 기획–가격–제공(PPO) 체계를 마련하고, 미래 핵심과제를 전담하는 성장 스쿼드, 부문별 CoE(Center of Excellence)를 배치하는 등 AI 기술·상품·서비스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사업 체계를 만들 계획이다. 신규 임원 6명도 발탁하며 AX 기반 사업 확장을 가속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SK 인사를 두고 “현장 중심·기술 중심으로 체질을 정비하는 인사”라고 평가하며 “세대교체, 조직 강소화, 기술 중심 보직 재편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중장기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분석했다.
◇AI·클린테크 중심 재편···LG, 기술 기반 세대교체로 미래 축 가속
LG그룹은 올해 정기 인사에서 세대교체와 기술 기반 리더십 강화라는 두 축을 전면에 내세웠다. 글로벌 공급망 변동성, 중국의 저가 공세, 미국의 규제 환경이 동시에 거세지는 가운데 사업 포트폴리오를 미래 성장축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구광모 회장의 의지가 조직 전반에 깊게 반영됐다는 평가다.
첫 흐름은 세대교체와 역량 중심 인사다. 올해 승진 임원 98명 가운데 21명이 AI·바이오·클린테크 등 그룹 미래 축을 담당하는 인재였고, 1980년대생 상무가 잇따라 발탁됐다. 여성 신규 임원 3명, 첫 여성 CFO 선임 등 조직 다양성도 넓혔다. 전반적으로 ‘기술기반 리더십’이 인사의 중심에 섰다는 것이 산업계 분석이다.
LG전자는 이런 흐름 중심에 서 있다. 생활가전에서 글로벌 1위를 공고히 한 류재철 사장을 새 최고경영자(CEO)로 선임, ‘기술 기반 사업 운영’ 모델을 전사적으로 확장하는 그림을 그렸다. 전장(VS)과 냉난방공조(ES) 분야를 이끌어 온 은석현·이재성 본부장이 나란히 사장으로 올라서면서 B2B 사업 성장축 강화도 뚜렷해졌다.
부품·소재 계열사인 LG이노텍에서도 미래 사업을 주도한 문혁수 대표가 사장으로 승진했다. 광학솔루션·자율주행 센서·로봇용 부품 등 신사업 확장에 기여한 성과가 반영됐다는 평가로, AI 기반 수율 혁신을 이끈 젊은 연구개발(R&D) 인재들도 다수 임원으로 발탁됐다. ‘기술이 곧 경쟁력’이라는 그룹 공통의 메시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IT서비스 계열인 LG CNS는 올해 인사에서 AX·AI·클라우드 기반 사업 구조 고도화에 집중했다. AI클라우드사업부와 Entrue 컨설팅 조직 책임자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기술·전략 조직을 양축으로 강화했고, 스마트물류·피지컬AI 등 성장 분야에서 성과를 낸 인물이 전무로 올라섰다. AI데이터센터 설계·운영에서 빠르게 성과를 낸 30대 인재를 상무로 발탁한 것도 주요 특징이다.
LG디스플레이는 OLED 중심의 기술 리더십 강화에 집중했다. 생산기술 혁신을 이끈 최영석 부사장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았고, 중·대형 OLED 개발을 주도한 박상윤·이태림 조직 책임자가 전무로 승진했다. OLED 신제품·선행기술을 담당하던 다수의 실무 R&D 인력도 상무로 올라서며, 중국 추격 속 기술 격차를 넓히는 쪽으로 인사 방향이 정교하게 맞춰졌다.
이번 LG 인사는 핵심사업의 수익성 강화와 미래 포트폴리오 전환을 동시에 밀어붙이기 위한 구조적 신호로 해석된다. 계열사별로 기술 기반 리더십을 전면에 세우고, AI·클린테크 등 그룹이 제시한 미래 성장축을 중심으로 인재 구성을 재편해 장기 전략 실행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 그룹 모두 기술·AI 중심으로 조직과 리더십 체계를 재설계한 것이 공통점”이라며 “글로벌 공급망 경쟁, AI 확산, 에너지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번 인사는 단순한 승진·배치가 아닌 미래 사업 구조를 다시 짜는 ‘전략적 리셋’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각 그룹이 기술·조직·인재 삼 축을 동시에 정비한 만큼 내년 이후 투자 우선순위와 성장 포트폴리오가 한층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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