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흰빛을 띠고 넓게 퍼진 주걱 모양 부리를 가진 새가 있다. 갯벌을 천천히 걸으며 부리를 좌우로 흔들어 먹이를 찾는 행동이 특징적인 이 새가 국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저어새’다. 주로 서해 무인도에서 번식하고 겨울이면 중국 남부와 대만으로 이동해 살아가는데, 남해안에서 둥지를 틀었다는 기록은 거의 없었다. 그동안 한반도에서는 서해 갯벌에서 관찰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고 남쪽 지역은 잠시 들르는 정도로 여겨져 왔다.
이런 ‘저어새’가 지난달 24일 전남 순천만의 외딴섬에서 번식 중인 모습이 포착됐다. 매년 약 30마리가 순천만에 나타났지만, 둥지가 확인된 사례는 없었다. 접근이 쉽지 않은 지형에서 번식지 전체가 영상으로 기록되며, 이 지역이 잠깐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실제 번식지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순천만 외딴섬에서 포착된 첫 번식 장면
지난달 24일 전남 순천시와 (재)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 추진단은 올해 실시한 ‘한국의 갯벌 물새류 정밀 번식 모니터링 용역’ 과정에서 저어새 서식지를 순천만 별량면 일원 무인도에서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지역은 곰솔·칡·누리장나무 등이 뒤섞여 자라는 울창한 지형으로, 인위적 접근이 거의 없어 번식기 새들이 방해받지 않는 환경이 유지된다.
왜가리·중대백로·민물가마우지가 함께 번식하는 지역으로 알려졌는데, 이러한 조건은 저어새가 둥지를 고를 때 중요한 요소와 맞아떨어진다. 현장 조사에서 촬영된 드론 영상에는 둥지에 자리한 개체의 모습이 또렷하게 담겼고, 지형 정보와 관찰 기록까지 확보되며 이곳이 단순 체류지가 아닌 실제 번식지임이 확인됐다.
서해에 번식지가 집중된 기존 구조와 달리, 남해안에서 번식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어새의 특징과 머물기 좋은 환경 조건
저어새는 몸길이 75~90cm 정도의 중형 조류다. 넓게 펼쳐진 부리가 특징이며, 이 부리를 좌우로 흔들어 갯벌 속 먹잇감을 찾는 행동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몸을 덮은 흰 깃은 햇빛을 받으면 은빛처럼 보이고, 번식기에는 머리 뒤로 얇은 볏이 자란다. 날개를 펼치고 비행할 때는 목을 곧게 편 상태로 이동하며, 전체적인 형태는 백로류와 비슷하지만, 부리 모양에서 명확한 차이가 나타난다.
저어새는 갯벌과 하구의 얕은 물가를 주 활동 공간으로 삼는다. 작은 물고기, 갑각류, 수서곤충 등을 먹이로 삼으며, 이동 과정에서도 안정된 먹이터가 확보돼야 둥지를 마련할 수 있다.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덜 받는 외딴 지형을 선호하며, 사람 접근이 거의 없는 환경일수록 번식 성공률이 높다. 순천만 지역이 번식지로 확인된 이유도 주변 환경이 장기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개체수 감소의 원인과 보호의 중요성
저어새 개체수는 1995년 약 400마리 수준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갯벌 매립이 이어지며 먹이터가 줄고, 도로 조성과 주거지 확장으로 하고 지형이 변해 서식 공간이 빠르게 사라졌다.
특히 번식지는 접근 제한이 중요하다. 사람이나 포식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정도의 작은 방해만 있어도 번식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번식지가 한곳에 집중되는 특성상 특정 지역이 훼손되면 전체 개체군에도 큰 타격이 갔다.
한국·홍콩·대만 등에서 보호가 강화되며 개체수는 약 7000마리까지 회복됐지만, 서식 기반이 충분히 넓은 상태는 아니다. 저어새는 서식 환경의 품질이 개체 유지의 핵심이기 때문에, 번식지 보전이 없으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