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韓 성평등 수준, 법·제도 많이 개선됐으나 미진"
"女역량 발휘 사회, 대한민국 발전 도움…국회, '비동의 간음죄' 공론화 나서달라"
내년 부처 예산 첫 2조원 돌파…"고립·은둔 청소년, 더 꼼꼼히 살필 것"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오진송 기자 =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고통을 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국회와 시민사회, 정부 안에서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강조했다.
원 장관은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주권의 의미 안에 저는 평등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한국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묻는 말에 "법과 제도가 많이 개선됐음에도 아직 미진하다"고 평가하며 "여성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는 사회가 대한민국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 공감을 많이 얻고 싶다"고 했다.
원 장관은 성폭력 피해의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이제는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를 해 주기를 바란다"며 공론화 과정에서 국회의 역할을 당부했다.
다음은 원 장관과 일문일답.
--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성평등부 예산이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 이번 예산 증액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는데, 직원들도 애를 많이 쓰고 (국회) 의원님들도 많이 도와주셨다. 예산으로 부처의 힘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성평등부가) 2조를 넘었어도 우리가 (전체 예산의) 0.3%를 넘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예산보다 마음으로 일한다고 했지만, 그걸로는 안 되고, 좀 더 필요한 예산이 있었는데 확보하지 못했다. 청소년 관련 업무하시는 분들 처우가 개선돼야 하는데, 관련 예산이 마련되지 않아서 제일 속이 상했다.
-- 장관 취임 이후 소회가 궁금하다. 현장 행보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 현장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 현장에서 우리를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전남 현장을 갔을 때 한 국장님이 '저는 30년 공직생활 중에 장관님이 현장에 내려오신 건 처음이다'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내년까지는 좀 더 많은 현장을 직접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국이 우리 성평등가족부가 함께해야 할 현장인데, 실제 업무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괴리된 느낌을 가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요즘 2030 성평등 토크콘서트 '소다팝'을 통해 역차별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남성 청년들도 만났다. 역차별 상황을 확인한 게 있는가. 성평등부에 해결 방안이 있는가.
▲ 저는 역차별이라는 용어보다는 한쪽 성(性)이 불이익으로 느끼는 문제, 성별 인식 격차라고 본다. 성별 인식 격차를 확인하고, 그 격차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청년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콘서트 때 오신 분들과 짧은 만남에서도 서로 작게나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별 인식격차는)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 기저에는 소통이 있다. 청년 세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전하고, 1∼2년 이내에 해결하겠다는 조급함보다 모든 세대가 공통된 문제로 받아들일 때까지 꾸준함을 보인다면 해결하는 시점도 빨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 장관 취임할 때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다만, 이재명 정부가 법 제정과 관련해 적극적이기보다는 약간 신중한 스탠스로 보인다. 임기 내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능한가.
▲ 국민 주권의 의미 안에 평등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취임할 때부터, 또 출근길 소감에서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고통을 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성정이 그렇다'고 했다. 그런(평등의) 가치가 헌법에 있고, 헌법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현하는 데는 그동안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현재 국민 의식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하고, 이제 국회와 시민사회, 정부 안에서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한다.
-- 성평등부는 부처 폐지까지 얘기됐던 여성가족부를 확대 개편해 출범했고, 그 초대 장관으로 취임했다. 첫 번째 장관인만큼 앞으로 조직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 재임 중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 성평등부 단독 노력으로는 불가한, 타 부처와 협력이 우리 부처의 '성공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성평등부로 확대 개편의 의미는 제대로 성평등 총괄 조정 역할을 하는 데 있다고 본다. (부처 간) 협력 강화를 통해서 성평등 정책이 정부 부처 안으로 퍼져 나가고, 또 전국으로 확산해 나가는 게 가장 큰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성평등부가) 폐지를 딛고 좀 더 역할을 해 냈다는 것만으로 기억된다면, 장관의 이름은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 대한민국 성평등 수준을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크고, 여성 임원 비율은 낮은 등 유리천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전과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 한국 사회에서 성평등 수준은 '법과 제도가 사실은 많이 개선되고 있으나 아직 많이 미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에 공감을 많이 받고 싶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더불어 일할 때 좋은 성과를 내는 조직이 또 다른 조직에도 이런 문화를 확산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인사청문회 때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에서 관련 업무를 이관받았는데, 현재 어떤 식으로 준비되고 있는가. 정책을 체감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쯤일까.
▲ 성평등의 가치를 가지고 노동시장을 들여다봤을 때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업무가 (성평등부에) 오게 됐다. 여성계, 노동계에서 나온 여러 우려를 딛고, 전문가들과 노동 현장과 만남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전문가들과 한 달 동안 거의 네차례 회의를 하며 열띤 토론을 했다. (그 자리에서) 기업의 공감을 얻어내면서 (제도를) 확산하겠다고 했다. 내년 중에는 아마 법제화를 거쳐서 내후년에는 제도가 시행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공시제를 하는 기업의 부담, 심리적 장벽을 깨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의 성평등만이 아니라 기업 안에서, 조직 안에서 성평등 실현이 조직의 존속, 성과를 담보해낸다는 생각을 같이 해야 한다고 본다.
-- 청소년 자살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여성가족부 때 '고립은둔 청소년' 실태조사가 시작됐다. 장관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움직인다면 부처도 이 사안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봤다.
▲ '고립 은둔 청소년'의 어려움은 청소년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해당한다. 이 청소년이 또 청년이 되기 때문에 더 초기 단계인 청소년을 만나고 사회로 손잡고 걸어 나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려고 하고 있다. 대통령께서도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계속 말씀을 하신다. 국무회의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여러 번 말씀하셨다.
--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 사각지대에 놓인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형법 개정 사안으로, 제도 도입이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가.
▲ 저희가 법무부와 협의를 하지만, 국회 중심으로 논의를 해주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렸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 의원님들이 많으셨다. 내년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 그 공론화 과정의 중심은 국회가 돼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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