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 촉진·SK하이닉스 '손자회사 제약' 벗는다…이르면 이번 주 발표
"경제력 집중 견제 장치 붕괴" 우려도…기술 급변 속 시장 선점에 무게
(세종=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첨단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주회사가 적은 지분으로 경제력을 확대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전략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자금 공급의 걸림돌을 제도적으로 해소할 계획이다.
대규모 기업집단 견제가 느슨해진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정부는 산업 경쟁력 강화가 급선무라고 판단해 조만간 제한적 완화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 '증손회사 지분 100% 보유'→50%로 완화·지주회사 금융리스 허용
7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산업통상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부처는 지주회사 및 금산분리와 관련한 규제 변경 방안을 이르면 이번 주 발표하는 일정을 염두에 두고 마무리 작업 중이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자회사(지주회사의 증손회사)를 두려면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한 규정을 50% 이상이면 허용하도록 기준을 완화하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율 규정을 100%에서 50%로 낮추면 손자회사는 신규 사업에서 자금 마련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100% 규정은 기업집단 총수 일가 등이 적은 지분으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의 단계로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견제하는 장치다. 하지만 이 때문에 첨단 산업의 자금 마련이 어렵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일반지주회사가 금융리스 회사를 보유하는 길도 열어 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금산 분리 원칙을 적용하는 방식에 일부 변화를 줄 것으로 관측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은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업이나 보험업을 영위하지 않는 국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과 일반지주회사가 금융업 혹은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두고 있다. 금융리스업은 표준산업분류에서 금융 및 보험업으로 돼 있다.
금융리스가 허용되면 첨단 산업을 영위하는 지주회사 계열사는 설비·시설을 빌려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초기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수목적법인(SPC)을 증손회사 두고 투자를 유치하거나 시설을 빌려 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게 될 전망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5일 "여러 차례 관계 장관 회의를 했으며 각각의 입장을 두고 심층적 논의를 많이 했다"며 "정부 내에서 상당히 많은 의견 접근이 있었다"고 첨단산업 촉진을 위한 규제 완화 발표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 대규모 투자로 첨단산업 우위 선점 노린다…SK하이닉스[000660] 수혜 논란도
규제 완화는 자금 부담을 덜어 전략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로 추진된다.
첨단 분야에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지분 투자 방식으로 시설을 늘리거나 신사업을 하는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주회사의 손자회사인 경우 지분 100% 규정 때문에 자금을 전액 마련해야 하므로 신규 사업을 담당할 자회사를 두기가 쉽지 않다.
첨단산업 분야의 손자회사로는 SK하이닉스가 있다. SK는 SK스퀘어[402340]의 주식의 약 32%를,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의 지분 약 20%를 보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국내에서 회사를 새로 설립하거나 인수하려면 지분 100% 기준을 지켜야 한다. 반도체는 워낙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할 때 투자금 규모를 120조원 수준으로 전망했으나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 사업에 약 600조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자금 마련이 과제로 부상했다.
AI·반도체·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에 향후 5년간 15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 등이 주목받고 있지만 지분 100% 규정이 유지되면 SK하이닉스의 사업에 지분 투자 형식으로 참여하기는 어렵다.
지분 규정을 50%로 낮추면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국민성장펀드를 투입하는 방안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LG화학[051910]의 자회사이며 LG의 손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지분 100% 규정의 적용을 받고 있다.
규제 완화 계획은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을 견제하는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논란도 낳고 있다.
이 법은 총수일가가 통상 손자회사까지 3단계로만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증손회사까지 둘 경우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규제 완화로 이런 원칙이 허물어지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SK 측이 앞서 정부에 제출한 제도 개선 아이디어가 규제 완화 방안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SK를 위한 맞춤형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지난달 20일 대한상의 등이 경제단체와 함께 개최한 기업성장포럼에서 "저희는 금산분리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며 "(대규모 AI) 투자를 감당할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게 제 생각"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논란 속에서도 정부가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기술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크다는 판단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접견하며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는 범위에서, 또 다른 영역으로 규제 완화가 번지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 AI 분야 금산분리 일부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 당국자는 "반도체 분야에서 외부 자금을 투자받는 제도가 조금 더 개선되어야 한다"며 "(규제가 완화되면) 반도체 기업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진다"고 예상되는 효과를 설명했다.
정부는 제반 상황을 고려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 반도체 첨단 전략 산업 선정 ▲ 투자 계획에 대한 정부의 사전 심사·승인 ▲ 지방 투자 등의 요건을 설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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