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FFWPU) 윤영호(49) 전 세계본부장의 업무상 횡령 등 혐의 공판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정치적 관행인 이른바 ‘선거 보험’의 내부 설계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아내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의 샤넬 가방과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전달하려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그의 법정 진술의 초점은 개인의 부패가 아닌 조직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거 자금 집행에 맞춰져 있었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선물은 개인적인 이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며 "영부인과 원만한 관계로 통일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고 진술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뇌물이나 친목을 넘어, 이익 집단이 정권의 핵심 실세와 관계를 맺어 조직의 현안을 성사시키기 위한 '정책적 투자'로 자금을 해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윤 전 본부장이 금품 제공을 통해 성사시키려 했던 교단 현안들, 즉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개발사업 지원, YTN 인수 추진,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그리고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의 목표가 밝혀졌다.
이런 행위의 법적 쟁점은 조직 자금을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교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을 때,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하는가 하는 점이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교단 자금을 빼돌려 선물한 혐의에 대해 "개인적 목적이 아닌 교단의 발전을 위한 선물이었던 만큼 횡령이 성립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는 횡령죄 성립의 핵심 요건인 '불법영득의사'(조직의 재물을 사적으로 취득하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고도의 법적 방어 전략이다. 만약 법원이 이 주장을 수용한다면, 종교단체와 같은 비영리 조직의 자금은 '공익'이나 '교단 현안 성사'라는 명목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구매하는 데 사용되더라도 법적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규제 공백이 형성될 위험이 있다. 이는 조직의 자금을 사실상 추적이 어려운 '그림자 정치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통로가 될 수 있다.
여당 뿐 아니라 야당까지 포괄하는 이중 베팅: '선거 보험'의 실체
윤영호 전 본부장의 진술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통일교의 지원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강변이었다. 그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교단의 행사인 '한반도 평화서밋'을 준비하면서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들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부터 2021년까지는 오히려 "국민의힘보다 민주당과 가까웠다"고 언급하며, 평화서밋 행사를 앞두고도 현 정부 장관급 4명에게 접근했고 그 중 2명은 한학자 총재를 직접 만났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진술은 한국 이익 집단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선거 보험(Political Hedging)' 관행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선거 보험이란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비해 여야 양 진영 모두에게 자금을 지원하거나 우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조직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합리적인 위험 관리(Risk Management) 전략이다. 이는 정권의 색깔과 무관하게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보장받으려는 생존법이다. 과거 SK그룹 비자금 사건 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윤영호 전 본부장은 심지어 수사 당시 특별검사팀과의 면담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 중진 의원 2명에게 구체적인 금품을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한 현직 의원에게는 2018년에서 2019년 사이에 현금 4천만 원과 1천만 원 상당의 시계를, 다른 전직 의원에게는 2020년에 현금 3천만 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이들이 통일교의 성지인 경기도 가평군 천정궁을 방문해 한학자 총재를 만난 뒤 돈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이러한 지원 사실을 특검팀에 진술하면서 "(특검팀과) 면담할 때 수사보고서에 충분히 말했다. 한쪽에 치우친 게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자신의 행위가 한국 정치권 전반에 걸친 관행이었음을 드러내어 자신의 혐의를 희석시키고, 수사기관이 여야 모두를 조사해야 하는 정치적 딜레마를 유발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수사 비대칭성의 딜레마와 규제의 사각지대
통일교의 양쪽 진영 지원 폭로에서 심각하게 드러난 문제는 '수사 비대칭성'이다. 윤영호 전 본부장이 김건희 여사 측에 금품을 전달하려 한 혐의(청탁금지법 위반, 횡령)는 정식으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민주당 중진 의원 2명에 대한 금품 지원 진술은 공식적인 진술조서가 아닌, 수사보고서 형태로만 기록되었고 정식 수사로 이어지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특검팀은 이에 대해 "수사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으며, 관련 의원들 역시 금품 수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런 수사상의 차이는 '선거 보험' 관행의 전모를 밝히는 데 중대한 구조적 한계를 초래한다. 수사기관은 여야를 동시에 수사할 경우 발생하는 정치적 파장과 논란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결국 어느 한쪽도 뿌리 뽑지 못한 채 이 관행을 존속시키는 역설을 낳는다. 즉, 여야 모두에게 지원하는 이중 베팅이야말로 이익 집단이 가장 안전하게 '정치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방식인 셈이다.
자금 공여 방식의 진화 또한 법적 난이도를 높인다. 과거에는 대기업들이 대규모 현금 다발을 정치권에 조직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2002년 대선자금 스캔들 당시, 재벌인 SK그룹이 야당인 한나라당 측에 100억 원의 현금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 동시에 당시 여당인 민주당 측에도 다른 대기업들로부터 불법 자금을 수수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재벌들이 여야 양 진영에 거액의 '보험'을 들고 있었음이 공식적으로 확인됐었다.
오늘날 통일교 사례에서 보듯이, 지원 방식은 추적이 어렵고 법적 분류가 모호한 샤넬 가방이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같은 고가 물품이나 비공식 채널을 이용한 현금 전달 형태로 바뀌었다. 이러한 고가 물품은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으로 분류하기 모호하며, 공직자의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명확히 입증해야 하는 뇌물죄를 적용하기에도 복잡한 법적 해석이 요구된다. 이익 집단은 이처럼 교묘하게 법망을 회피하는 전략을 사용하며, 규제의 실효성을 무력화시킨다.
특히 종교단체와 같은 비영리 조직은 일반 기업과 달리 자금 운용의 투명성이 현저히 낮아, 이들이 '교단 발전'을 명목으로 정치권에 자금을 제공할 때 이를 불법 정치 자금으로 규율할 수 있는 외부 감사나 통제 시스템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정치자금법이 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정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 실질적인 규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선거 보험'의 은밀한 경제학을 근절하려면, 비영리 단체의 자금 사용에 대한 독립적인 공익 감사를 의무화하고, 고가 물품을 이용한 우회적 로비에 대해 정치자금법의 규제 범위를 확장하며, 수사기관이 여야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구조적 부패의 양쪽 고리를 동시에 철저히 조사할 수 있는 독립성과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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