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올해 연말 인사를 통해 조직 전반의 체질 개선과 리더십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CEO 교체와 각자대표 체제 도입, 2030세대 임원 전진 배치, 방사성의약품(RPT) 등 신사업 중심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내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선제 투자' 기조를 분명히 했다.
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해 인사 흐름을 두고 "회사의 과거 실적·리스크에 대한 책임 경영과 동시에, 새로운 시장 기회를 잡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 가장 큰 변화는 HLB의 수장 교체다. 진양곤 회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김홍철 HLB이노베이션 대표가 새 대표로 선임되면서 회사는 사실상 전면 쇄신을 선언했다. 최근 리보세라닙 병용요법이 미국 FDA에서 연이어 허가 불발된 데다 글로벌 임상 지연과 주가 변동성이 겹치면서 리더십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번 인사는 책임경영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새 대표는 신약 파이프라인 재정비와 글로벌 파트너십 재구축을 중심으로 내년 간암·담관암 치료제의 상업화 재도전에 집중할 계획이다.
JW중외제약과 광동제약은 각각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하며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JW중외제약은 함은경 대표를 선임해 신영섭 대표와 역할을 분담하고 R&D와 영업·마케팅을 각각의 전문 영역에서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광동제약 역시 박상영 사장을 대표로 앉히고 최성원 회장과 투트랙 체제를 구축했다. 전략·신사업·R&D와 조직 운영·재무·영업을 분리하는 구조로 글로벌 제약사와의 경쟁 속에서 전문성과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대교체 흐름도 뚜렷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0대·40대 여성 임원을 발탁하며 핵심 직군에 젊은 리더를 전진 배치했다. 글로벌 규제 대응, 공정·품질 관리 등 조직의 민첩성이 중요한 분야에서 젊은 세대의 의사결정 비중을 높인 것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임원진 다수를 3040세대로 채우며 유럽·미국 등 주요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역시 신동빈 롯데 회장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이 각자대표로 선임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 2세 중심의 바이오 사업 확대가 본격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SK바이오팜도 공격적인 조직 개편을 진행했다. 회사는 방사성의약품(RPT) 본부를 새로 신설하며 신약 '세노바메이트' 이후의 성장동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신설된 RPT 본부는 동위원소 공급망과 원료 확보, 타깃 발굴, 전임상, 글로벌 사업개발까지 신사업 전 주기를 아우르는 대규모 조직으로 운영된다. 또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 최윤정이 전략본부장에 오르며 SK의 차세대 리더십 라인도 더욱 분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6년 인사 흐름을 두고 △리더십 교체를 통한 책임경영 강화 △전문성 중심의 조직 운영 △젊은 리더의 공격적 전진 배치 △신약·RPT·CDMO 중심의 신사업 가속 등 공통된 특징이 있다고 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내년을 기점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임상, CDMO 경쟁, 방사성의약품시장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만큼, 이번 연말 인사가 단순한 승진 발표를 넘어 기업 전략의 방향성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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