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복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점차 자조·체념으로 뒤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쿠팡, SKT, KT, 롯데카드 등 업계를 불문하고 잇따라 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해당 기업들의 제품·서비스 구매·이용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내 개인정보는 이미 공공재가 됐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자조·체념의 태도는 개인의 피해 확대와 기업의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개인정보 유출을 국가적 재난 수준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쿠팡·롯데카드 대규모 정보 유출에도 소비자들 무덤덤…전문가들 "가장 심각한 반응"
올해 들어 주요 기업에서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쿠팡에서 고객계정 약 3370만개가 무단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유출된 정보에는 고객 이름·이메일·전화번호·주소 등이 포함돼 있었다. KT에서도 올해 들어 두 차례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초 1200만명의 정보가 유출된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초소형기지국(펨토셀)을 통해 KT망에 침입한 해커에 의해 2만2000여명의 정보가 탈취 당했다. 지난 4월에는 SK텔레콤에서 2696만건의 유심 정보가 유출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금전 거래 서비스가 주력인 금융 기업에서도 해킹 사고가 빈번했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내 금융업권 해킹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아이엠뱅크(2월28일) ▲케이비라이프생명(5월16일) ▲노무라금융투자(5월16일) ▲한국스탠다드차다드은행(5월18일) ▲하나카드(6월17일) ▲서울보증보험(7월14일) ▲악사손해보험(8월3일) ▲롯데카드(8월12일) 등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롯데카드에서는 전체 회원의 30%가 넘는 297만명의 신용정보가 유출됐다. 카드 비밀번호와 CVC(카드 뒷면 보안코드) 정보 등이 유출된 인원 수도 28만명이나 됐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의 반응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불매운동 등의 움직임이 일부 있었지만 이제는 해당 기업의 제품·서비스 구매·이용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같은 사고가 반복적으로 생기면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점차 무감각해진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7월까지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451건의 보안사고가 발생했고 8854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카드를 사용한다는 직장인 박은지 씨(28·여)는 "롯데카드에서 내 정보가 유출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기존에 생활비 결제 대부분을 이 카드로 해왔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다른 카드로 바꾸는 것도 번거롭고 어차피 이미 내 정보가 여기저기 유출된 상태라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평소 쿠팡을 자주 이용한다는 김현우 씨(29·남)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새벽배송으로 바로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아무리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쿠팡을 안 쓸 수가 없다"며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뉴스에 나와도 결국 편리함이 우선이라 계속 이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내 개인정보는 이미 오래전부터 퍼져있다고 생각한다"며 "약간 기분이 찜찜하긴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약화된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같은 일을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반응 또한 적응 또는 체념으로 뒤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애석하게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국민이 크게 심각하지 않게 여기는 게 사실이다"며 "사회 전반에 걸쳐 개인정보 보호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현상이 생기면 2차, 3차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온라인 상의 개인정보는 단순한 사생활 보호를 넘어 개인의 핵심 자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반복적인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여전히 기존 플랫폼을 이용하는 모습은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낮아졌다는 방증이다"며 "이런 사회적 무감각은 개인의 2차 피해를 키울 뿐만 아니라 기업에게도 보안 관리에 대한 책임감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개인정보 유출은 금융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재난 수준의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국민과 기업 모두 보안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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